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린 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하시고는 그 나귀에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잎이 많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깔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뒤따라가며 외쳤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그들은 예수님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메시아로 환영하면서 반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예수님을 환호하던 사람들은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렇게 마음이 쉽게 변하는 군중의 모습은 쉽게 끓고 쉽게 식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됨으로써 예수님을 환호하고 따르는 군중의 행렬에 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행렬이 예루살렘 사람들의 행렬과 똑같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환호로 시작된 행렬이 그분을 배척하고 배반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예수님은 말이 아니라 나귀를, 그것도 어린 나귀를 타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은 왕과 귀족들 그리고 군인들이 타는 것으로서 힘과 전쟁을 상징합니다. 반면 나귀는 서민들의 운송수단으로 사용되던 것으로서 평화와 겸손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가져오는 겸손한 메시아이십니다(즈카 9,9-10). 예수님은 무력과 폭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겸손으로 세상을 얻어 평화를 주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미움, 무력, 폭력, 복수 속에 산다면, 결국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지르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됩니다. 반면 그분처럼 겸손과 평화의 길을 간다면, 진정 그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 예루살렘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다 깔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는 왕을 영접하는 행동입니다(2열왕 9,13). 겉옷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체면과 위신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겉옷을 예수님이 오시는 길에 까는 행동은 체면과 위신보다는 예수님을 더 중하게 여기겠다는 각오의 표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예수님 보다는 우리의 체면과 위신을 더 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음식점에서 식사하지 전에 남이 볼까 염려되어 십자성호도 떳떳히 긋지 못합니다. 체면과 위신을 앞세우다 보면 슬그머니 예수님을 옆으로 밀어 놓기 쉽습니다. 체면과 위신, 가식 등을 벗어던지고 예수님 앞에 굻을 때 그분의 진정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셋째, 예루살렘 사람들은 잎이 많은 나무 가지를 꺾어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잎이 많은 나무 가지는 노아의 비둘기가 물고온 싱싱한 올리브 잎을 연상시킵니다(창세 8,11).이 올리브 잎은 사십일 간의 홍수가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기쁨과 희망의 상징입니다. 따라서 잎이 많은 나무 가지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행동은 그분에게 기쁨과 희망을 두겠다는 결심의 표시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재산과 지위,아름다움과 건강, 안락함과 쾌락에 기쁨과 희망을 두다보면 점점 더 예수님을 등지게 됩니다. 오직 그분에게 진정한 기쁨을 발견하고, 궁극적인 희망을 둘 때 그분의 진정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
행렬의 시작만이 아니라 그 끝에서도 예수님을 환영하고 환호하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초지일관의 신앙인이 많아져야 교회다운 교회가 될 것이고, 교회를 통해서 세상도 좀더 살기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 손희송 베네딕도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