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삶과 나의 수필문학
최 춘 수
나에 있어 수필문학은 기도하며 살아가는 일상 삶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즐거움과 분노, 슬픔과 기쁨들로부터 뽑아낸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한 올 한 올의 실로 독특한 무늬의 수를 놓아 만들어진 생활 문학이다.
나는 책을 좋아하나 지금껏 양서를 그렇게 많이 읽은 편도 아니다. 또 문학적인 소양과 수준도 높다고 자부하진 못한다. 그러나 삶을 사랑하고, 또 매순간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와 관계 맺은 모든 사람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으며 살고 싶다. 뜨거운 태양과 아름다운 밤하늘의 달과 별들, 흘러가는 구름, 한 포기의 풀잎과 이슬, 꽃들,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 나무들, 나와 함께 존재하는 하느님이 창조한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나는 가끔 우리 아파트 우거진 숲 속 나무의자에 앉아 풀 냄새와 흙냄새를 맡기도 하고, 지저귀는 새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도 들으며 맨발로 걸어 다니기를 좋아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연과의 친화와 교감은 영혼을 맑게 하고 정서를 순화시킨다. 그리고 일상의 잡념에 묻혀 잊혀졌던 아름다운 기억들을 의식의 표면위로 끌어올린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한 손자와 양손을 맞잡고 걸음걸이 연습을 하는데 갑자기 가을 날씨답지 않게 훈풍이 몰아쳤다. 가지에 붙어있던 잎 새는 낙엽 되어 떨어지다 도로 하늘로 오르고, 땅에 떨어진 잎 새들도 바람 따라 떠올라 빙글빙글 춤을 추듯 회오리쳐 돌아간다.
이 순간 나도 모르는 새 흥이 일어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작은 무도회가 열렸다.
바람과 낙엽 재롱잔치 열렸네 / 바람 장단 맞추어/ 낙엽이 춤을 추네/ 노랑 잎은 노랑나비/ 빨간 잎은 빨간 나비/ 갈색 잎은 갈색 나비 되어/ 빙글빙글 춤을 추네/ 신명나게 춤을 추네/ 바람 낙엽 무도회가 열렸네/
나는 이렇게 혼자 흥얼거리며 어린 손자를 안고 돌았다.
생활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물, 자연 속에서 새로운 느낌과 발견을 필자의 문학적, 사상적 사유의 여과과정을 거쳐, 누에가 입에서 나오는 진액으로 고치를 짓듯이 글로 엮은 것이 수필문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글을 쓸 때면 언제나 촛불을 밝혀두고 성모님께 나의 부족함을 아뢰고 지혜를 청한다.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나면 마음이 비워지고 그 속으로 차분히 밀려들어오는 자유 같은 것을 느낀다.
천주교회에서 촛불은 자신을 태우는 희생의 봉헌과 하느님의 사랑인 성령의 빛을 상징한다. 그래서 미사 때마다 제대 양쪽에 촛불을 밝혀둔다. 부활절 전야미사에서 사제는 희랍으로 알파와 오메가라고 씌어진 (나는 시작이요 마침이라는 뜻)큰 초에 불을 밝히고 그 촛불에서 당긴 불을 전 신자들에게 나누어 붙여준다. 이것은 하느님 사랑의 빛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주어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라는 의미가 담겨진 의식이다.
나의 문학적 관심은 일기를 쓰면서부터 싹트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일기를 쓴다는 것은 지난 내 삶의 성찰이며, 지난 이루지 못한 일들의 내일을 향한 다짐이다. 하루의 일과가 지나가면 그 날 일어났던 일들과 느낌들을 실타래에서 감겼던 실을 풀어내듯이 차근차근 풀어낸다. 글을 쓰는 것은 말로 하기보다, 깊은 사유와 감정의 순화과정을 거쳤기에 보다 정갈하고 아름답다. 글을 쓰다보면 격한 감정도 사그라진다. 또 선행한 것, 자랑거리 등도 말로하면 오히려 남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도 있겠지만 글 쓰는 동안은 침묵 속에 이런 충동들을 잠재울 수 있어 더욱 좋다.
수필은 내 삶의 스냅 사진이라고도 한다. 오래 전에 긁적여두었던 글들을 읽노라면 흡사 옛날 찍은 스냅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어려웠던 젊은 시절 나를 고뇌에서 구원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은 나의 수필문학이 지향하는 불변의 지표이며 소재이기도 하다.
삼십대 초반 직장 일로 남편이 1년간 해외에 나가있던 때, 그 외로웠던 시절에 나는 성당 문을 들어섰다. 성당 저녁 종소리가 울릴 때면 나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성당 안 뜰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그때 환청같이 내 귓전에 부드럽게 속삭이는 여인의 목소리가 있었다. “아가야. 내 아가야. 모든 것 무릎 밑에 접어 넣고 꾹꾹 누르거라! 그래야 살아가기가 편안하단다.”
그 후 신앙은 내 삶의 중심 기둥이 되었고 일기를 비롯하여 내가 긁적이는 거의 모든 글들이 기도하는 듯한 신앙체험으로 이루어졌다. 작품에 어떤 특정한 종교적 체험을 주로 다루면 독자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그 한계성을 나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굳이 벗어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의 수필문학은 비록 표현범주가 좁다 해도 하느님과 성모님의 사랑을 전하는 데 온전히 바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200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