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잃었던 탕자의 비유 - (루가 13, 11 - 32)
자기 삶을 살겠다고 생각한
둘째 아들이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정말로 삶을 마음껏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가진 돈을 전부 날리고,
이곳 저곳에서
심한 곤욕을 치르고서야
결국 아버지에게 돌아갈 결심을 한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으며
잔치를 베푼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들이 살아서 돌아오고
방황하던 아들이 비로소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매일 같이 자기 의무를 다한 맏아들은
잔치씩이나 열어 준 것을 보고 화를 낸다.
화를 냈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자기가 좋아서 일을 한 것이 아니고
보수를 바라고, 인정을 받고 싶어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맏아들은 일을 하면서도
무언가 꿍꿍이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을 해서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얻고자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공덕을 쌓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에 어떤 조건도 달지 않으셨다.
따라서
하느님으로부터
조건 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자유롭게 무언가를 할 수 있고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지 않는다.
일이 그냥 재미있어서,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일을 한다.
예수님은 무언가를 꼭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자유로우셨다.
이런 자유를 누리셨기에
도리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 예수께서 일으키신 운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이 운동에 동참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수께서 공적을 세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없으셨기에,
자유로우셨고
백 배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백 배의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공적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다.
믿음 때문에
나를 짓누르는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또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안에 내면의 샘이 솟는다.
공적을 쌓아
그 덕을 볼 생각을 하지 않으니
도도한 강물처럼 삶이 내 안에 흘러 들어와,
창의성과 상상력을 꽃피우고
위대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묵상 : 우리들의 반성
여러분들은 진정 자신의 공적으로 자신을 평가하나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하느님께도 능력을 발휘해서
인정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어떤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때,
직장에서 근무하거나 업무를 처리할 때,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신앙활동을 할 때,
여러분이 행동하는 동기는 무엇인가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나의 경우 :
누가 하라고 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마음에 평화로움을 얻고,
삶에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면서
그동안의 삶에서 많은 후회와 반성을 하며,
이 아름다운 세상의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기를 바라고,
이웃에 기쁨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런 글들을 찾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욕심과 별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전교의 의미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내 마음에서 솟구치는 열성에 밀려
글들을 찾아보고,
내 마음을 움직여 주는 글들을
옮겨드리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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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시는 분!/베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