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11월4일)

2014. 11. 3. 오후 9:4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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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4일 오늘의 성인♡ =============== 성 가롤로 보로메오(Charles Borromeo) 축일 11월 4일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 (Carolus Borromeo, 또는 가롤로)는 1538년 10월 2일 이탈리아 북부 마죠레 호수 근처의 아로나 성(城)에서 지베르토(Giberto Borromeo) 백작과 교황 비오 4세(Pius IV)의 여동생 마르게리타(Margherita de Medici)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서 12살 때 산 그라시니아노(San Gratiniano) 수도원에서 삭발례를 받았다. 그 후 밀라노로 가서 알치아티(Alciati)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1552년 파비아(Pavia) 대학교에 진학하여 1559년에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559년 12월 25일 그의 외삼촌인 지안 안젤로 추기경이 비오 4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직을 계승하게 되었는데, 새 교황은 조카인 카롤루스 보로메오를 로마(Rome)로 불러들였다. 1560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보로메오가 가장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했던 분야는 교황청 국무성 장관으로서의 직무였다. 특히 그는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o) 제3회기 동안 그의 외삼촌인 교황에게 가장 열성적이고 믿음직한 협력자이자 지원자였다. 카롤루스는 공의회 운영의 훌륭한 지도자로서 임무를 수행했고, 마지막 회기에서 칙서들을 성문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562년 그의 형 페데리고(Federigo)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로메오 가(家)의 수장 직책을 거절하고 1563년 7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하려고 더욱 분발하였다. 그는 트렌토 공의회가 요청한 교리교육과 미사 전례 그리고 성무일도 작업들을 두루 감독하였으며,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하여 그가 대주교로서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밀라노 교구를 모범적인 주교좌로 만드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또한 그는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윤리와 생활 태도 개선을 위하여 유익한 기준을 마련하였으며, 성직자 교육을 위한 신학교 설립, 어린이들의 종교 교육을 위한 그리스도인 교리회 설립 및 자신의 교구 내에 거주하는 예수회를 격려하였다. 또한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였고,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계 대학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도 호의적이었으며,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에 11차례의 교구 시노드(Synod)와 6번의 관구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는 후보자들을 위한 단체의 성격을 지닌 ‘성 암브로시우스의 헌신회’ (지금은 성 카롤루스의 헌신회)를 설립하였고, 주로 설교 활동에 종사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침입을 저지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타락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데 정력을 기울였다. 1567년 그는 주교의 관할권에 대한 밀라노 의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사건의 발단은 그가 나쁜 생활에 물든 평신도 여러 명을 투옥시킨 것으로 주교좌가 시당국에 의하여 심한 공격을 받게 되자 그는 그들을 모두 단죄하였다. 재차 그의 주교직이 산타 마리아 델라스카라의 시의원들로부터 도전을 받자, 교황은 그를 후원하고 시의회는 그들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는 어느 자객으로부터 상처까지 입었다. 1576년 페스트와 기근으로 온 주민들이 큰 난리에 빠졌을 때, 그는 한 달 동안 매일 3천여 명의 주민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여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시의회와 교회 관할권 사이의 분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카롤루스는 그 때마다 현명하게 대처하였다. 그는 영국 선교 길에 오르는 수많은 젊은 사제들을 접견하고 지원하였으며, 1583년에는 스위스 교황사절이 되어 그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를 상대로 설교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1584년 11월 3일 밤에 밀라노에서 사망하여 주교좌성당의 중앙 제대 아래 묻혔다. 그는 가톨릭 개혁운동의 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학문과 예술의 수호자였다. 비록 그가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있었지만 항상 겸손하게 처신하고 성덕을 높임으로써 개혁의 반대자들로부터도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성직자나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권력을 남용한 적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카롤루스 보로메오는 1610년 11월 1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 성 니칸데르(Nicander) 성 헤르마스(Hermas) 축일 11월 4일 성 니칸데르 주교와 성 헤르마스(Hermas) 신부는 고대 소아시아 남서쪽 리키아(Lycia) 지방의 미라(Myra)에서 순교하였다. ================================ 성녀 모데스타(Modesta) 축일 11월 4일 성녀 모데스타는 독일 트리어의 주교 성 모도알두스(Modoaldus, 5월 12일)의 조카딸이다. 성 모도알두스는 자신이 트리어에 설립한 외렌(Oehren) 수도원의 초대원장으로 성녀 모데스타를 임명하였다. ================================ 성 비탈리스(Vitalis) 성 아그리콜라(Agricola) 축일 11월 4일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의 주교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성 비탈리스와 성 아그리콜라(Agricola)는 볼로냐의 유대인 묘지에 안장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유해를 발굴하여 이장할 때에 밀라노(Milano)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가 참석하여 성 비탈리스와 성 아그리콜라의 순교행적을 설명했다. 성 아그리콜라는 원래 볼로냐 사람으로 덕행이 뛰어난 명문가의 자녀이고, 성 비탈리스는 그의 종이었는데 아그리콜라의 표양을 본받고자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처음에 이들은 원형 극장에 던져졌으나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그 후 아그리콜라는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 성 아만시오(Amantius) 축일 11월 4일 아만두스(Amandus)로도 불리는 성 아만티우스 (또는 아만시오)는 프랑스 아비뇽의 주교였다. --------------------------------------------- 성 아만시오(Amantius) 축일 11월 4일 아만두스(Amandus)로도 불리는 성 아만티우스 (또는 아만시오)는 프랑스 남부 로데즈의 주교였다. ================================ 성 에메리코(Emeric) 축일 11월 4일 성 에메리쿠스(Emericus, 또는 에메리코)는 헝가리의 국왕인 성 스테파누스(Stephanus)가 자신의 후계자로서 왕위를 물려 줄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그에게 열렬한 신심과 아울러 왕위 계승자로서 지녀야 할 인격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냥하던 중에 피살되었다. 스체케스페르발(Szekesfehervar)에 있는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1083년에 그의 부친과 함께 시성되었다. ================================ 성 요안니치오(Joannicius) 축일 11월 4일 성 요안니키우스(또는 요안니치오)는 20여 년 동안 비잔틴 군대의 군인으로서 마가르인(Magar)을 대적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삶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40세 되던 해에 터키 북서부 브르사(Bursa) 교외의 어느 수도원에 들어갔고, 이어 올림푸스 산에 들어가 은수자가 되었다. 그 당시에는 성상 파괴주의자가 극성을 부리던 때였지만 그 자신은 이를 매우 싫어하였다. 성 요안니키우스는 90세의 일기로 안티디움(Antidium)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 성 요한 제다즈넬리(John Zedazneli) 축일 11월 4일 6세기경에 12명의 시리아계 수도자를 이끌고 이베리아(Iberia)로 들어온 성 요한 제다즈넬리 (Joannes Zedazneli)는 그 지역에서 최초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한때 그의 수하에는 2천여 명의 수도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위의 13명은 ‘이베리아 교회의 아버지들’로 불리고 있다. ================================ 성 클라로(Clarus) 축일 11월 4일 사제이며 순교자인 성 클라루스(또는 클라로)는 프랑스의 베네딕토 회원인 우수아르가 쓴 순교록에 나온다. 그 순교록에 의하면 성인은 9세기의 프랑스에서 널리 공경을 받았고 그의 축일을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영국 잉글랜드(England) 로체스터(Rochester) 태생으로 노르망디(Normandie)로 건너와서 은수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성인은 말과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개종시켜 많은 신자들이 그의 참 모습을 알게 만들었다. 그는 벡생(Vexin), 루앙 근교 나퀘빌(Naqueville) 등지에서 살았는데 일단의 부인들이 못살게 괴롭혀서 몇 번이나 숲 속으로 피신하였다. 결국은 앙심을 품은 어떤 부인이 그의 머리를 잘라 살해하였다고 한다. ================================ 성 필로로구스(Philologus) 성 파트로바(Patrobas) 축일 11월 4일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일원이었던 성 필로로구스(Philologus)와 성 파트로바는 사도 바오로(Paulus)에 의해 로마서 16장 14절과 15절에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언급되었다. ================================ 성 포르피리오(Porphyrius) 축일 11월 4일 성 포르피리우스(또는 포르피리오)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중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의 에페수스에서 순교하였다. ================================ 성녀 프란치스카 앙부아즈(Frances Amboise) 축일 11월 4일 프란치스카 앙부아즈 (Francisca Amboise, 또는 프란체스카)는 15세 때에 요한 공작의 둘째 아들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은 실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질투심이 강하고 음침하며 때로는 난폭하였다. 그녀는 이런 남편에게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고 큰 인내심으로 이겨냈으며, 그로인해 남편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러나 그들에겐 자녀가 없었다. 1450년 남편이 공작의 자리를 승계하자 그녀는 남편의 지위를 이용하여 하느님 사업을 계획하였다. 그녀는 프랑스 서부 낭트(Nantes)에 클라라회를 위한 수도원을 세웠고,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 (Vincentius Ferrerius)의 시성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금 모금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457년 남편이 죽은 뒤에 그녀는 낭트 수도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냈으며, 그 후에는 반(Vannes)의 카르멜 수녀원에서 생활하였다. 1468년 그녀는 반의 수도원에서 수녀가 되어 병자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고, 서원 후 4년 만에 원장으로 피선되었다. ================================ 성 프로쿨로(Proculus) 축일 11월 4일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 오툉의 주교인 성 프로쿨루스(또는 프로쿨로)는 훈족의 침략 중에 살해당하였다고 한다. ================================ 성 피에리오(Pierius) 축일 11월 4일 성 테오나스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을 때 성 피에리우스(또는 피에리오) 신부는 그곳의 신학 원장이었고 오리게네스(Origenes)의 옹호자인 성 팜필루스(Pamphilus)의 스승이었다. 피에리우스는 학문뿐만 아니라 활동을 극히 중요시 했는데, 시민을 상대로 하는 그의 설교는 지극히 대중적이어서 연일 군중들이 몰려들었다. 그는 ‘젊은 오리게네스’라는 칭호를 들었다. 카아사레아(Caesarea)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도 그를 극구 찬양했고, 포티우스(Photius)는 그의 기질, 청빈, 맑고 깨끗한 사상, 명백한 저술 등을 격찬하는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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