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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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돔노(Domnus)
축일 11월 3일
성 돔누스(또는 돔노)는 주교 주교자인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를 계승하여
프랑스 비엔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끊임없이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에 전쟁으로 인해 포로가 된
이들을 속량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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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이네리오(Raynerius)
축일 11월 3일
라이네리우스(Rainerius, 또는 라이네리오)는
아레초 출신으로 마리아니 가문의 후손이다.
그는 세속생활을 포기한 후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고, 아레초의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일행이 되어 성 프란치스코의 명을 받아
실행에 옮겼다. 그는 사부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존경받던 인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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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룸왈드(Rumwald)
축일 11월 3일
성 룸왈드는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왕가
출신인데, 아마도 알크프리드와
성녀 치네부르가의 아들인 듯하다. 그는
노샘프턴셔(Northhamptonshire)의 브랙클리에서
6마일 떨어진 왕의 성에서 태어났고,
위데린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어린 아이일 때 그는 똑똑한 목소리로 신앙을
고백하였다고 한다. 그의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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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티노(Martin)
축일 11월 3일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페루의 리마(Lima) 태생으로 에스파냐계 기사인
후안 드 포레스(Juan de Porres)의 아들이다.
그는 열두 살이 되던 해 당시 외과의사를 겸하는
이발사 교육을 받았고, 3년 뒤에는 리마에 있는
도미니코 수도회 재속 3회원으로 입회하였다.
9년 뒤 도미니코회 수사가 되어 전생애를
수도원에서 보냈다. 그는 이발사, 외과의사,
의류수선, 진료소 등 여러 직책을 담당했지만
혼자서 그 많은 일들을 아무런 무리 없이 처리하였다.
그의 영혼 속에는 하느님이 함께 계신 것이
역력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그는 병자 치료를
그 도시의 모든 주민에게까지 확대하였고,
또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직책까지
맡았던 것이다.
그는 외국 선교사가 되어 순교하기를 자주
열망하였으나, 그는 자기 육체에 대한 순교로써
만족해야 하였다. 그 대신 그에게는 수많은
초자연적 은혜가 내려졌다. 그는 미물인 벌레조차
사랑하였으며 쥐조차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한번은 그의 원장이 빚에 몰려 곤경에 처한 적이
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그저 가련한 종이고, 수도원의 재산이니
저를 파십시오.”
성 마르티누스는 리마의 성녀 로사(Rosa)와
가까운 친구였고 복자 요한 마시아스
(Joannes Massias)와도 가까웠다. 그는
일개 평수사에 불과했으나 그의 장례식에는
고위 성직자와 귀족들이 그를 운구하였다.
그는 1837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
(Gregorius X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62년 5월 6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마르티누스는 사생아라는 모욕과
피부 색깔로 인한 갖가지 경멸을 받았지만
기도를 통하여 이를 극복하였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주보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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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말라키 오모르(Malachy)
축일 11월 3일
성 말라키 오모르
(Malachias O'More, 또는 말라기 오므르)는
어느 교사의 아들로서 아일랜드의 아마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는데, 부모의 사후에 그는
은수자이던 에마르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22세 때인 1132년에 성 켈수스(Celsus)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리즈모어(Lismore)의
성 말쿠스(Malchus) 주교의 지도하에 학업을
계속하였고, 1125년에 코너(Connor)의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는 즉시 교구민들에게
신앙심을 일깨우고 북돋우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1127년 비적들이 뱅거(Bangor)를 침략했을 때
그는 다른 수도자들과 리즈모어로 피했고,
거기서 또 수도원을 세웠다.
1129년 성 켈수스는 아마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그 주교좌는 선임자 가문의 세습
관습 때문에 극심한 반발과 함께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므로 그는 아마를 떠나 데리 수도원으로
갔다가, 로마(Rome)에서 아마와 카셀 주교좌의
대주교 문장을 받았지만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
(Innocentius II)는 그를 아일랜드 교황 대사로
임명해버렸다. 이때 그는 아일랜드 최초의
시토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귀향하던 중 클레르보(Clairvaux)에서 병을 얻어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의 품에 안겨
운명하였다. 그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말라키와
꼭 같은 예언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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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발렌티노(Valentine)
성 힐라리우스(Hilarius)
축일 11월 3일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 신부와
그의 부제인 성 힐라리우스(Hilari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로마(Rome)
근교 비테르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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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베네프리다(Wenefrida)
축일 11월 3일
성녀 베네프리다는 웨일스(Wales) 지방
플린트셔(Flintshire)의 테인즈글에 살던
어느 부유한 사람의 딸이며, 성 베우노(Beuno)의
동생이다. 그녀는 오빠에게서 깊은 인상과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국왕 카라도그에게
복종하기를 거절함으로써 650년 6월 22일에
참수되었는데, 그녀의 머리가 성 베우노
(Beuno, 4월 21일)에 의하여 원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성녀 베네프리다는 덴비셔(Denbigshire)의
그위테린(Gwytherin) 수도원의 수녀가 되었다.
그녀는 테노이(Tenoi) 원장을 승계하였으며,
15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다가 운명하였다.
성녀 베네프리다의 머리가 떨어져 피가 흐른
곳에서는 맑은 샘물이 솟구치고 있는데, 이곳을
‘거룩한 우물’ 혹은 ‘성녀 베네프리다의 우물’
이라고 부르며, 세기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기적을 목격하였다. 그녀는
비네프리다(Winefrida), 비니프레드(Winifred),
바네프리다(Wanefrida), 그웬프레위(Gwenfrewi)
등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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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성 카이사리우스(Caesarius)
성 비탈리스(Vitalis)
축일 11월 3일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
성 카이사리우스(Caesarius)와 성 비탈리스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카파도키아(Cappadocia) 지방
카이사레아(Caesarea)에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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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몬 발라치(Simon Ballachi)
축일 11월 3일
시몬 발라치(Simon Ballachi)는 27세의 나이로
리미니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들어가서
평수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평수사의
일반적인 일들에 만족치 않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고 고행하여 가장 낮은 자가 되려고
노력하였는데, 특히 자신의 온몸을 쇠사슬로
묶고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끔씩 사탄의 출현이 있었다.
그의 주요 직책은 농장 일이었지만 어린이와
젊은이의 마음속에 주님의 땅을 일구는 작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57세 되던 해에
맹인이 되었다. 그는 이십 년 동안이나 맹인으로
지냈으나 전과 다름없이 모든 직책과 기도를
행하였고, 오히려 이런 고통을 통해 내적인 덕이
더욱 출중하게 드러났다. 그는 임종하는 날부터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왔다. 그는 1817년 복자로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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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실비아(Silvia)
축일 11월 3일
전설에 의하면 성녀 실비아는 시칠리아(Sicilia)에서
원로원 의원 가문에서 태어났고, 로마(Rome) 근교에서
태어난 그녀의 남편 구르디아누스(Gurdianus)는
성 펠릭스 3세(Felix III)와 성 아가피투스 1세
(Agapitus I) 교황을 배출한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 성녀 실비아는
성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교황의 어머니로
기록되어 있다. 574년경 남편 구르디아누스가
사망하자 아들 그레고리우스는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던 부모의 저택을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규율을 따르는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만들었는데,
오래 전부터 수도생활을 갈망해 왔던 실비아는
이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시칠리아에 있는 가족
토지에도 5개의 수도원을 더 세웠다고 한다.
성녀 실비아는 로마에서 작은 거처를 마련한 후
은둔생활을 하다가 592년 혹은 594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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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미코(Amicus)
축일 11월 3일
성 아미쿠스(또는 아미코)는 카메리노(Camerino)
출신으로 그 지방의 교구 사제가 되었다.
그러나 교구 사제직보다는 은수생활을 더
갈구하였으므로 그 후에 은수자가 되었는데,
그의 표양에 감명을 받은 그의 부모와 형제
그리고 조카들이 모두 수도생활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러나 성 아미쿠스는 잠시 몸담았던 회(會)
수도자들이 이완된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는
아브루치(Abruzzi)에서 독수생활을 재개하였다.
그는 이 움막에서 30년을 홀로 살았는데,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공동체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12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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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알페(Alpais)
축일 11월 3일
알페는 오를레앙(Orleans) 교외 쿠도에서
어느 농사꾼의 딸로 태어나 중병을 앓아
자리에 눕기까지 농사일만 하였다.
그 병은 나병이었다. 그녀의 전기 작가인
어느 시토회 수도자는 그녀가 성모님의 환시를
보는 중에 나병에서 완전히 치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손가락을 모두 잃어버렸지만 다른 일을
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녀는 영성체 외에는 아무 것도 먹거나 마시지
않았다. 이 사실이 상스(Sens)의 빌리암(William)
대주교에게 알려지자, 그는 곧 이 단식의
진실 여부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밖에도 그녀에게는 수차례의 탈혼과 기적이
일어났는데 모두 진실로 판명되자
알페의 성덕과 명성이 널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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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다(Ida)
축일 11월 3일
이다는 토겐부르크의 백작인 헨리의 아내였으나
남편의 성격이 포악하고 참을성이 없어 많은
수모를 당하고 살다가 결국은 어느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17년 동안 홀로 지내던 중에
회개한 남편이 찾아 왔을 때, 그녀는 남편을
용서해 주었으나 집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이리하여 그녀의 남편은 이다를 위하여 수도원을
세워주었고, 그녀는 그곳에서 여생을
수덕생활에만 전념하다가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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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콰르토(Quartus)
축일 11월 3일
성 콰르투스(또는 콰르토, 과르도)는
사도들의 제자로 사도 바오로가
로마서 16장 23절에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잘 돌보아주는 교우로서 언급되었다.
일부 전승은 그를 루가 복음 10장 1절 이하에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72명의 제자 중
한 명으로 묘사하기도 하고, 다른 전승은 그가
독일 남부 바이로이트(Bayreuth)의 주교였다고
부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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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피르미노(Pirminus)
축일 11월 3일
성 피르미누스(또는 피르미노)는 남부 프랑스
지방 혹은 에스파냐 북동부 아라곤(Aragun)
출신인 듯하다. 어쨌든 그는 무어인들을 피하여
스위스 그리존(Grison)으로 와서 711년에
디센티스(Dissentis)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아바르족(Avar)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는 콘스탄츠(Konstanz)
인근 보덴(Boden) 호수의 라이헤나우 섬에 있는
수도원의 초대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남부 프랑코니아(Franconia)의
아모르바흐(Amorbach)에 베네딕토 수도원을 세웠다.
성 피르미누스는 지역 주교이나 모(Meaux)의
주교는 아니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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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헤르멘가우디오(Hermengaudius)
축일 11월 3일
성 헤르멘가우디우스(또는 헤르멘가우디오)는
1010년부터 1035년까지 에스파냐 쪽 피레네
산맥에 있는 우르겔의 주교로서 재임하였다.
그는 우르겔에 주교좌 성당을 건립하였고
그 지방 수도회들을 후원하였다.
그는 아르멘골(Armengol) 또는
에르멘골(Ermengol)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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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후베르토(Hubert)
축일 11월 3일
성 후베르투스(Hubertus, 또는 후베르토)는
프랑스 헤리스탈(Heristal)의 피핀 왕을
섬기던 신하였고 아내까지 있었는데 어떻게
성직자가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아내와 사별한 후에 수도생활부터
출발한 것은 사실이다. 그 후 그는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Maastricht)의 주교인
성 람베르투스(Lambertus, 9월 17일)의 지도를
받고 사제가 되었다. 성 람베르투스가
705년경에 리에주에서 살해당하였을 때
그는 스승을 계승하여 주교가 되었다.
그는 주교좌를 벨기에 남동부에 있는 리에주로
옮겨 그 교구의 초대주교가 되었는데, 그 주요
이유는 성 람베르투스를 위한 성당을 짓고
기념하기 위해서란 말도 있다. 그는 교구 내의
우상숭배를 철저히 퇴치하고 수많은 회개자를
얻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그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였으며 727년 5월 30일 브뤼셀(Brussel)
근교에서 운명하였다. 그는 사냥꾼들의 수호성인이다.
오늘의 성인(11월3일)
2014. 11. 1. 오후 1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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