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4일
점심 식사후 나자렛을 출발하여 카르멜 산으로 이동 하였다.
산에 오르니 카르멜 봉쇄수도원이 있었다.
수도원은 개방이 되지 않고 이즈리엘 평야가 내려다 보였다.
이곳은 예언자 엘리야가 희생제물을 바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티르왕의 딸인 사악한 왕후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혼인 이후 이스라엘 왕국에 바알 숭배를 도입하려고 시도 하였다. 엘리야는 왕후를 거슬러 일어나, 온 백성과 바알의 예언자들을 가르멜 산에 모이게 하도록 아합왕을 설득하였고, 그 곳에서 이들에게 도전을 펼치었다.(열왕상18,20-40)
바알 예언자들은 하늘로부터 제단 위에 불을 내리는 데 실패하였고, 엘리야가 승리를 거두게되니, 엘리야는 바알 예언자들 450명을 모두 잡아 키손천 개울가에서 죽였다.
칼르멜 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키손천을 바라보면서 그 당시의 끔직 했던 상황을 상상하며, 하느님의 존엄 하심을 다시금 느끼며 내려왔다.
무지무지 더운 날씨다. 40도는 충분히 될 것 간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가이사리아에 도착 하였다.
아무리 더워도 확 트인 바다를 보니 다들 바닷속으로 첨벙첨벙...........
밀가루 같이 고운 모래가 우리를 반겼다.
가이사리아는 BC20년에 헤로데 대왕이 세운 도시이다. 당대의 조각가들과 건축가들이 동원되어 12년간 걸쳐 완공된 이 도시는 팔레스타인의 가장 아름다운 도시중의 하나이자, 당시 가장 주목 받는 항구의 하나가 되었다.
이 도시는 화려한 궁전들과 공공건물, 시장, 웅장한 대리석 신전, 원형경기장으로 아름답게 꾸며졌다. (헤로데는 이 원형 경기장에서 설교한 뒤 죽었다 한다.)
필립보도 이 곳에 살면서 복음전파 하였고 사도바오로도 2년간 감옥살이를 하면서 높은 사람들에게 부활한 예수를 증거 했던 곳이다.
AD66년에 시리아 인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여 2만명의 유대인이 무참히 살욱당했던 곳이다.
이 곳은 1271년 이집트의 바이바르스에 의해 완전히 파괴 되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해변의 모래 언덕에 파묻혀 갔다.
1956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