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 예수님, 다음 주는 그리스도 성체,성혈 대축일을 앞두고.....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의 기원은 1247년 '리에즈에서 몽 코르니용(Mont- Cornillon)의 쥴리앙' 이라는 수녀의 열성으로 처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1208년 환시중에 "주님이 제대의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연중 축일이 빠져있다고, 자신에게 알려주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리에즈의주교와 특히, 훗날, 교황 '우르바노 4세가 된 자크 판탈레옹 대부제'가 이 계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르비에토(Orvieto)' 근처 '볼세나(Bolsena)'에서 일어난 성체성사 기적에 감명을 받은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오르비에토에서 교서인 트란지투스'를 반포하는 가운데, 새 대축일을 재정하였습니다. 이 대축일은 성령 강림절 팔부 다음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기념하여 지내게 되었습니다. 쥴리앙은 몽 코르니용의 한 수사에게 새 축일 시간전례 기도문을 만들 것을 부탁하지만, 이것은 교황 교서에 함께 붙어 있고, 우리 시대까지 사용되는 전례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근대의 연구는 이 축일을 위한 미사와 시간전례 기도문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만들었다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교황이 새 축일을 서방교회 전체가 지키도록 자신의 권위로 명한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이 축일은 '새 대축일'이라고 불렀으며, 성체성사 축일, 하느님 축일, 지극히 고귀한 성사 축일, 그리스도의 몸과 피 대축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르바노 4세가 새 축일을 세운 지 두 달 만에 선종한 까닭에 그의 교서는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이 후, 클레멘스 5세(1311∼1312)와 요한 22세(1317)가 이 교서를 새로 확인한 다음에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대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이 축일을 진작시킨 세 교황 가운데 성체 행렬에 대해 언급한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는 파스카 아침 지성소의 그리스도 '무덤'에 빨마 가지를 든 채 성체를 모시고 행진하거나 또는 성대하게 성체를 옮겼습니다. 본래 의미의 성체행렬(성체거동)은 13세기 말 산발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풍습은 14·15세기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회는 15세기에 이를 받아들였고, 전례를 보면 1970년 미사에는 9개의 성서독서가 배당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멜키세덱의 제사(다해), 시나이산 아래에서 드린 계약의 제사(나해), 사막에서 만나를 먹은(가해) 기사를 뽑았습니다. 둘째 독서는 바오로가 고린토인 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0장과 11장(가해, 나해), 히브리서(다해)에서 뽑았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빵을 많게 한 기적(다해),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의 강론(가해), 최후의 만찬(나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감사송은 두 개가 마련되어 있는데 하나는 성목요일의 것이고, 또 하나는 새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시간전례에는 성체성사의 신비에 관한 여러 측면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2 저녁기도의 성모의 노래 후렴은 이 신비를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수난을 기념하고(성체성사에 대한 기념은 과거에 일어난 일과 관계된다.), 은총으로 충만되며(그 기념이 현실화된다.), 후세 영광의 보증을 받는도다(기념은 미래에 일어날 것을 맛보게 한다.)." 우리 모두는 움직이는 감실입니다. 늘 아버지 사랑안에서 머물게 하소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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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감실
2005. 11. 27. 오전 6: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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