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예레미야 1,1.4-10 1 벤야민 땅 아나톳에 살던 사제들 가운데 하나인 힐키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다. 4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5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6 내가 아뢰었다.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 7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저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라.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 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 8 그들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9 그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당신 손을 내미시어 내 입에 대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너의 입에 내 말을 담아 준다. 10 보라, 내가 오늘 민족들과 왕국들을 너에게 맡기니,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세우고 심으려는 것이다.” 복음 마태오 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학창 시절에 보면 인기를 끌어 모으는 친구들이 꼭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잘 춰서 오락시간에 무대를 완전히 휘어잡았던 친구, 싸움을 잘해서 약자의 편에 서던 멋진 친구, 운동을 잘하는 친구, 말 잘하는 친구, 글을 잘 쓰는 친구…….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많은 친구들이 그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득 ‘나는?’이라는 의문을 갖게 되네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그렇게 인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인기가 전혀 없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춤과 노래로 오락시간을 휘어잡지도, 싸움을 잘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운동이나 말을 잘하는 것도, 또 글을 잘 쓰지도 못했습니다.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없었던 저의 모습이었지요. 그래서 인기를 누리는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었고,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는 저의 모습에 스스로 한탄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인기(저 혼자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때보다는 분명히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요.)를 나름대로 느끼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저의 능력이 갑자기 생긴 것일까요? 신부가 된 뒤, 하느님께서 “너 그동안 재주 하나 없이 사느라 고생했으니, 이제 특별한 능력을 주마.” 하면서 저에게 새로운 능력을 주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생각해보니 지금도 여전히 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바뀐 것이 있다면, ‘신부’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즉, 저의 능력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가 ‘신부’이기 때문에 사랑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주님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저의 부족한 능력으로도 큰 효과를 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마치 제 능력이 특출해서 그런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질 때도 종종 있지 않았나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차별 없이 하느님 사랑의 씨앗이 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우리들 마음의 상태에 있다는 것이지요. 즉,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훌륭한 소출을 낼 수도 있고, 반대로 싹도 트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십니다.
그 하느님 사랑의 씨앗은 우리들의 작은 능력도 크게 만드는 아주 신기한 효과를 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씨앗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밭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시기심과 욕심,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가득한 밭은 나의 능력을 조그맣게 만들어 버립니다.
지금 나의 마음 밭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요?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우리 모두의 마음이 좋은 땅이 되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기 전에, 주님께 감사합시다.
사랑이란 씨앗을 심게하소서 (‘좋은 글’ 중에서) 내 마음이 메마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메마르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메마르고 차가운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불안할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안하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외로울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버리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외롭고 허전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불평이 쌓일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불만스럽게 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쌓이는 불평과 불만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을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내 기쁨을 빼앗아 가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나에게 기쁨과 평화가 없는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마음에서 희망이 사라질 때면 나는 늘 남을 보았습니다. 남이 나를 낙심시키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내가 낙심하고 좌절한 것은 남 때문이 아니라 내 속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