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7.16) - 연중 제15주일 나해

2006. 7. 16. 오전 7:33:43

글자
2006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일 나해

제1독서
아모스 7,12-15
그 무렵 [베텔의 사제] 12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선견자야, 어서 유다 땅으로 달아나, 거기에서나 예언하며 밥을 벌어먹어라. 13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을 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14 그러자 아모스가 아마츠야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15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2독서
에페소 1,3-14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4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5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6 그리하여 사랑하시는 아드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은총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속량을, 곧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풍성한 은총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8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9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 주셨습니다.
10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
<11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습니다. 12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위한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게 되었을 때, 약속된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14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복음
마르코 6,7-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저의 인천교구 사제서품 동기는 총 11명입니다. 이 11명은 본당, 교구청, 특수사목에서, 그리고 유학 생활이라는 공간 안에서 열심히 생활하고 있지요. 그런데 본당신부를 하고 있는 4명 중에서도 3명이 현재 신설본당을 맡고 있으면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설 본당이라고 해서 뭐가 어렵겠냐고 말씀하시겠지만, 본당이라는 건물조차 없는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람을 모아야 하고, 조직을 구성해야 하고, 더군다나 가장 큰 일인 본당이라는 건물까지 지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저 역시 2004년에 아무 것도 없는 성지에 와서 생활해 보았기 때문에, 신설본당 신부가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하게 되네요. 그런데 만약 제가 이곳 성지를 오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요? 아무것도 갖추어있지 않은 이곳 성지의 체험이 없었다면, 신설본당을 맡은 동기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 누구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없이 ‘나만 힘들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 것 같네요.

같은 병 또는 같은 처지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끼리 서로 고통을 헤아리고 동정하는 마음이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저에게 생긴 것이지요. 즉, 제가 나름대로 어려운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그러한 생활을 하고 있는 동기들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저의 경험을 보면서, 사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어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요? 사실 어려움을 체험해보았던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어려움 안에서 사랑의 부족함을 더욱 더 많이 느꼈고, 그래서 사랑의 부족함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이 왜 필요한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그 파견 전에 하시는 말씀을 보면, 조금 치사하기도 합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사랑한다면 더욱 더 많이 챙겨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어려운 상황으로 만들어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제자들을 미워하기 때문에 고생 좀 하라고 이렇게 파견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의 나눔을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자신이 직접 어려움을 겪어야 남의 아픔도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없도록 제한을 두신 것입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들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픔을 더욱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처지를 한탄하시는 분을 종종 만납니다. 하지만 이는 그런 체험을 통해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주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아닐까요?

모든 것이 넉넉할 때 사랑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부족할 때 제대로 된 사랑의 실천을 할 수 있음을 잊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오늘을 만드세요.


어려움 속에 있는 분에게 따뜻한 위로와 기도를 전합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좋은 글' 중에서)

살아가면서 사랑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더없이 행복한 일입니다.

그 벅찬 감정이
인생에 희열을 안겨주며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꿈의 성질이 어떤 것이든
인간은 꿈을 꾸는 한
아름답습니다.

꿈은 팽팽한 현악기처럼
아름다운 음률을 내기 위해
삶을 긴장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작은 것까지
모두 아름다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사랑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욕심 내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벅찬 일인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인생은 문제의 시작과 끝을
되풀이하며 종착역에
이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의 골짜기를 지날 때도
험악한 바위틈에 피어 오른
한 송이 꽃을 볼 수 있음이
삶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리웠던 곳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마주보면
마음이 마냥 푸근해 집니다.

사람이 행복한 것은
그리운 곳과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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