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7.12) - 연중 제14주일 수요일

2006. 7. 12. 오전 8:13:51

글자
2006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제1독서
호세아 10,1-3.7-8.12
1 이스라엘은 가지가 무성한 포도나무, 열매를 잘 맺는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2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3 이제 그들은 말하리라.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임금이 없지만 임금이 있다 한들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리오?”
7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8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그때에 그들은 산들에게 “우리를 덮쳐 다오!”, 언덕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 하고 말하리라.
12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복음 마태오 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지난 5월 초에 손을 다쳐서 깁스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얼마나 불편했는지 몰라요.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깁스를 했던 팔의 가려움이었습니다. 깁스를 했으니 씻을 수 없는 것은 물론 긁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한 달 뒤 깁스를 풀었을 때 제가 얼마나 시원했을까요? 저는 깁스를 풀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욕실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손을 닦았지요. 손목에 닿는 물의 느낌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 느낌에 감사하면서 손목에 비누칠을 신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물론 한 달 동안 씻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때가 많을지는 몰랐습니다. 씻는데 5분도 걸리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5분이면 충분히 모든 때를 벗고 깨끗한 몸의 상태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5분은 불가능했습니다. 몸 전체에 비해서 적은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양 팔일 뿐이었지만, 10분... 15분... 20분. 20분이 조금 넘어서야 양 팔을 모두 깨끗이 씻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나오는 때가 더럽다고 차라리 씻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하면서 그대로 놔둔다면 어떨까요? 아마 계속해서 더러운 손의 모습을 간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비록 나오는 때가 더럽더라도 꾹 참고서 때를 밀어야 깨끗해진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지요.

우리들이 짓고 있는 죄의 모습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신의 죄가 너무나 크다고 하면서 그래서 성당에 가기가 힘들다고 말씀을 하시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성당을 나가요…….”

하지만 죄인일수록 하루빨리 성당에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마치 때를 하루 빨리 밀어야 손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죄 역시 하루 빨리 씻어야 깨끗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시지요. 그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더러운 영을 제어하는 권한을 주심으로써,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사람들의 힘듬을 하루 빨리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당신의 제자들까지도 세상에 파견하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양을 물가로 데려가기는 쉬어도 억지로 물을 먹이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물가까지는 데리고 오셨습니다. 이제 그 물을 마시는 몫은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주님의 의도대로 그 물을 열심히 마시고 있나요?

우리 몸에 나오는 때는 빨리 밀면 밀수록 하루 빨리 몸이 깨끗해집니다. 우리의 죄 역시 빨리 밀면 밀수록 하루 빨리 깨끗해진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목욕하세요. 육체의 몸이든, 마음의 몸이든... 깨끗하게 말이지요.



그러나 나는(‘가슴에 남는 느낌’에서)

어떤 이들은 “내일이 없다는 듯이 살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일을 기다리며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그래야 나의 소망이 높아지고 오늘 쌓는 작은 노력들이 더욱 소중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젊음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 몸의 젊음은 다시 찾아오지 않겠지만,
내 마음의 젊음은 내 푸른 생각으로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이 많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인생에는 한때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삶의 한때를 통해서 보는 나 자신보다 평생을 통해 보게 될 내 모습이 더 귀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속히 과일을 따서 빨리 익혀 먹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과일을 나무에서 익히기 위한 가을 햇살이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멈추지 말고 쉼 없이 달려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순결의 긴장은 늦추지 않겠지만 생활 속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며, 충분한 휴식으로 활기찬 생활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없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소망과 확신으로 이런 마음만 준비되면 시간은 언제라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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