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7.14) - 연중 제14주일 금요일

2006. 7. 14. 오전 8:20:57

글자
2006년 7월 14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제1독서
호세아 14,2-10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복음 마태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16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3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짖궃은 질문을 종종합니다. 아마 이런 질문을 어렸을 때 많이 듣지 않았습니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때 얼마나 난처했습니까? 엄마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반대로 아빠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 질문에 대해서 세가지 반응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다음 이야기를 한번 보세요.

이모가 와서 가만히 아이에게 물어 봅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그러면 아이는 아주 오랜 끝에, 이모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데요.

첫째. 순진한 아이: "아빠가 좋은데, 엄마는 더 좋아.. 그런데 이모! 비밀인 것 알지?"

바로 이때 삼촌이 아주 큰 장난감을 사들고 와서 누가 더 좋으냐고 묻습니다.

둘째. 영악한 아이: "삼촌이 더 좋아~~"

엄마, 아빠가 바로 옆에 계신데, 고모가 들어와서는 묻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셋째. 발칙한 아이: 아주 크고 당당한 목소리로.. "둘 다 그저 그래."

순진한 아이, 영악한 아이, 발칙한 아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한 글이었지요?

사실 우리들 안에는 이 3가지 모습이 다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순진한 모습을 할 때도 있고, 영악한 모습을 취할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발칙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그래도 순진한 모습과 영악한 모습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할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칙한 모습을 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지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즉, 세상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처리하는데 지혜로우면서도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이 세상의 발칙한 모습을 취할 때가 많지 않나요? 그리고는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옹호하곤 합니다.

"나는 너무 주관이 뚜렷해서 그래. 나는 거짓말을 하지 못해.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

그러나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또한 내가 남을 배려하지 않는데, 남에게서 배려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커다란 욕심일 뿐이지요.

발칙한 주님의 자녀가 되기보다는 지혜롭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하여 봅니다. 즉, 우리 모두가 나만을 드러내고 나만을 합리화시키려는 마음을 버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웃 사랑을 순수한 마음과 지혜로운 마음으로 실천할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취할 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주님 앞에서 발칙한 아이가 되지 맙시다.



버스기사의 선택(‘좋은 글’에서)

이 얘기는 스웨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는 어느날 아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고,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싣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버스는 횡단보도에 이르렀는데, 버스기사는 그때서야 브레이크가 고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미 때는 늦은 거죠. 그때 마침 조그만 유치원생 아이가 손을 들고 길을 건너는 것이 운전기사의 눈에 띄었고, 운전기사는 핸들을 잡고 절망적인 기분으로 고민을 했죠. 저 작은 아이를 피해 핸들을 꺾는다면 이 버스 안의 사람들은 크게 다치거나 죽는다.. 그러나...

저 아이의 희생으로 이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면.. 버스 운전기사는 곧바로 아이를 향해 차를 몰았고 그 버스에 부딪힌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죠. 밖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운전기사를 향해 욕지거리를 하며 몰아세웠죠.

승객들 역시 피도 눈물도 없는 작자라고 욕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죠. 버스 운전기사는 조용히 버스에서 내려 죽은 아이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미안하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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