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7.15) -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2006. 7. 15. 오전 11:56:06

글자
2006년 7월 15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이사야 6,1-8
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
3 그리고 그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외쳤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분의 영광이 가득하다.” 4 그 외치는 소리에 문지방 바닥이 뒤흔들리고 성전은 연기로 가득 찼다.
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6 그러자 사랍들 가운데 하나가 제단에서 타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 7 그것을 내 입에 대고 말하였다. “자,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죄는 없어지고 너의 죄악은 사라졌다.”
8 그때에 나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하고 내가 아뢰었다.


복음 마태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저는 딱 한 가지의 운동만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한다는 숨쉬기 운동? 노출의 계절인 이 여름에 몸짱을 만들기 위해 헬스를 할까요? 아니면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운동인 수영을 할까요? 모두 아닙니다. 요즘 제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운동인 자전거 타는 것을 저만의 운동으로 정했지요. 그래서 새벽 방송을 마친 뒤에는 곧바로 자전거를 끌고서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20Km 정도의 거리를 다녀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의 운동을 마친 뒤에는 얼마나 몸이 개운해지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태풍과 장마로 인해서 계속해서 날씨가 좋지 않았었지요. 따라서 자전거를 탈 수 없었고, 이렇게 매일 하던 운동을 하지 않으니 온 몸이 뻐근하면서 기분도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어제도 새벽 방송을 마친 뒤,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약간 어두웠습니다. 하늘은 무엇인가를 쏟아 부을 것 같은 기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쉬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자전거를 끌고서 밖으로 나왔지요.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더욱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1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조금 더 멀리 가서 5분 정도 늦게 집에 도착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중간에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느라 5분이 늦었다면 또 어땠을까요? 하늘에서 쏟아지는 그 엄청난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비를 맞지 않게끔 집에 돌아왔던 것이지요.

주님의 특별한 보살핌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즉, 주님께 감사할 일인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의 특별한 보살핌은 비를 맞지 않게끔 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 새벽에 깨닫게 됩니다. 새벽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2시에 일어날 수 있도록 해주신 것, 맛있는 아침 식사로 하루 일과를 기분 좋게 할 수 있도록 해주신 것, 미사에 참석하신 순례객들이 많아서 기분 좋게 미사를 할 수 있었던 것, 원로 신부님의 방문으로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 생각해보면 은총 아닌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렇게 주님의 보살핌을 어제만 특별하게 받았던 것일까요? 아니지요. 하루도 빠짐없이 주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습니다. 단지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배척하듯이 제자들을 배척할 사람들의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 주님의 보살핌을 계속해서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두려움 없이 힘차게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보살핌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는 순간까지……. 단 한순간도 주님의 보살핌이 없었을 때가 있었을까요? 어쩌면 내가 가장 힘들다고 여겼던 그 순간에도 잘 생각해보니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나를 보살피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가득한 그 보살핌을 가슴에 가득 담아보세요. 아마 입가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을껄요?


나에 대한 주님의 특별한 보살핌을 따져봅시다.



불행의 원인은?(파스칼)

불행의 원인은 늘 내 자신이다.

몸이 굽으니 그림자도 굽다.

어찌 그림자 굽은 것을 한탄할 것인가?

나 이외에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료해 줄 사람은 없다.

불행은 내 마음이 만드는 것과 같이
내 자신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라.

그러면 그대의 표정도 평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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