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7.19) - 연중 제15주일 수요일

2006. 7. 19. 오전 8:06:51

글자
2006년 7월 19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야 10,5-7.13-16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5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6 나는 그를 무도한 민족에게 보내고 나를 노엽게 한 백성을 거슬러 명령을 내렸으니, 약탈질을 하고 강탈질을 하며 그들을 길거리의 진흙처럼 짓밟게 하려는 것이었다. 7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러한 뜻을 마음에 품지도 않았다. 오로지 그의 마음속에는 멸망시키려는 생각과 적지 않은 수의 민족들을 파멸시키려는 생각뿐이었다.”
13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나는 민족들의 경계선을 치워 버렸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았으며, 왕좌에 앉은 자들을 힘센 장사처럼 끌어내렸다. 14 내 손이 민족들의 재물을 새 둥지인 양 움켜잡고, 버려진 알들을 거두어들이듯 내가 온 세상을 거두어들였지만, 날개를 치거나 입을 열거나 재잘거리는 자가 없었다.”
15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16 그러므로 주 만군의 주님께서는 그 비대한 자들에게 질병을 보내어 야위게 하시리라.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복음 마태오 11,25-27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어제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지요. 사실 저는 비가 오는 관계로 계속해서 운동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비만 오지 않으면 무조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했지요. 도중에 비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더군다나 어제는 성지에서 유일하게 쉬는 날인 화요일이거든요. 하지만 어제 역시 창밖으로 새벽부터 쉬지 않고 계속해서 비가 내리더군요. 이제는 비가 지긋지긋합니다. 그러면서 무엇이든 과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군요.

사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잘 듣는 노래에서도 ‘비’에 대한 노래가 많은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비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지요. 그러나 요즘처럼 계속해서 그리고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이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겨울에 내리는 눈도 그렇지요. 눈이 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 눈이 폭설로 이어지면 어떨까요? 더군다나 저처럼 넓은 지역에 내린 눈을 직접 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서 강아지처럼 좋아할까요? 이렇게 자연의 적당함뿐만이 아니라, 우리 삶 안에서도 적당함은 나를 더욱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많이 소유하는 것을 행복의 지름길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들만이 행복한 사람일까요? 전 세계의 행복지수를 보았을 때, 부자나라의 국민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가장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이 더 큰 행복지수를 보인다고 하지요. 또한 로또 복권에 맞은 사람들 중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기사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이처럼 행복은 과한 것에 있지 않습니다. 적당할 때, 오히려 부족함을 느꼈을 때, 행복이 부족함을 채우러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감사드립니다.”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치셨던 것이 아닐까요?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길 원하겠지요. 그리고 이 모습이 완벽한 모습처럼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철부지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니, 그렇다면 우리 모두 철부지 같이 못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말씀일까요?

그런 말씀이 아니지요. 인간 세상에서 완벽해 보이는 그 모습으로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자신이 완벽하지 못하는 철부지 같다면 스스로를 낮추고 주님 뜻에 온전히 자신을 의탁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으며, 행복도 그 곁에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을 지향하고 있었나요? 이 세상에서 완벽하다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을 지향하면서 교만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런 모습을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는 가장 못난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모습으로, 가장 낮은 자세를 지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의 모습이며, 가장 행복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의 완벽함보다는 하느님 나라에서의 완벽함을 추구합시다.



삶의 메세지('좋은 글' 중에서)

첫번째 메세지
남자는 여자의 생일을 기억하되 나이는 기억하지 말고, 여자는 남자의 용기는 기억하되 실수는 기억하지 말아야 한다.

두번째 메세지
내가 남한테 주는 것은 언젠가 내게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내가 남한테 던지는 것은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세번째 메세지
남편의 사랑이 클수록 아내의 소망은 작아지고, 아내의 사랑이 클수록 남편의 번뇌는 작아진다.

네번째 메세지
먹이가 있는 곳엔 틀림없이 적이 있다. 영광이 있는 곳엔 틀림없이 상처가 있다.

다섯번째 메세지
달릴 준비를 하는 마라톤 선수가 옷을 벗어던지고,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잡념을 벗어던져야 한다.

여섯번째 메세지
두 도둑이 저승에 갔다. 한 도둑은 남의 재물을 훔쳐 지옥엘 갔고, 한 도둑은 남의 슬픔을 훔쳐 천당에 갔다.

일곱번째 메세지
남을 좋은 쪽으로 이끄는 사람은 사다리와 같다. 자신의 두 발은 땅에 있지만 머리는 벌써 높은 곳에 있다.

여덟번째 메세지
행복의 모습은 불행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고, 죽음의 모습은 병든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아홉번째 메세지
웃음 소리가 나는 집엔 행복이 와서 들여다보고, 고함 소리가 나는 집엔 불행이 와서 들여다본다.

열번째 메세지
황금의 빛이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고, 애욕의 불이 마음에 검은 그을음을 만든다.

열한번째 메세지
어떤 이는 가난과 싸우고 어떤 이는 재물과 싸운다. 가난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많으나 재물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적다.

열두번째 메세지
느낌 없는 책 읽으나 마나, 깨달음 없는 종교 믿으나 마나, 진실 없는 친구 사귀나 마나, 자기 희생 없는 사람 하나 마나

열세번째 메세지
마음이 원래부터 없는 이는 바보이고, 가진 마음을 버리는 이는 성인이다. 비뚤어진 마음을 바로잡는 이는 똑똑한 사람이고, 비뚤어진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열네번째 메세지
누구나 다 성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성인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의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열다섯번째 메세지
돈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낮이 즐겁고, 육체로 결혼한 사람은 밤이 즐겁다. 그러나 마음으로 결혼한 사람은 밤낮이 즐겁다.

마지막 메세지
받는 기쁨은 짧고 주는 기쁨은 길다. 늘 기쁘게 사는 사람은 주는 기쁨을 가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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