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6.07.25) - 성 야고보 사도 축일

2006. 7. 25. 오전 7:18:36

글자
2006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제1독서
코린토 2서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제가 있는 갑곶성지를 싫어하십니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서워하시는 것 같습니다. 왜 이 성지를 무서워하실까요? 혹시 제가 잡아먹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 성지에 사람들이 무서워할 커다란 동물이 생겨서 그럴까요? 그것 역시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성지를 무서워할까요?

바로 모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닷가를 끼고 있는 섬 모기가 얼마나 독합니까? 그래서인지 이곳의 모기에게 한번 물리신 분들이 얼마나 힘들어하시는지 모릅니다. 순식간에 부어오르면서 심한 간지러움을 느끼게 되지요.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하시고 나면 제게 꼭 이야기를 하십니다.

“신부님, 모기 때문에 여기 못 오겠어요. 왜 이렇게 모기가 많아요. 저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 다섯 방 이상은 물린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모기에게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을 드리면서 말씀드리지요.

“저는 이곳에서 매일 다섯 방 이상 물리면서 살고 있어요.”

제 방에도 모기가 들어와 있는지, 어젯밤에도 몇 군데 물렸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자면서 저도 모르게 긁어서인지 두 군데가 퉁퉁 부어올랐네요. 사실 모기에게 물렸을 때, 재빠른 조치 사항은 만지지 않고 가만히 놔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지럽다고 손으로 박박 긁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은 시원하겠지만, 그것이 해결방안이 아니었음을 금방 느끼게 되지요. 더욱 더 가려워지는 것은 물론, 물린 부위가 더욱 더 부어오르거든요. 이렇게 부어오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도 긁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자주 잊는다는 것이지요. 특히 첫 번째 자리,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요? 부정적인 말, 그 사람의 지위를 깎아 내리는 말들……. 제일 재미있는 것이 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라고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면 자신의 마음이 편할까요? 그런 말들은 분열만을 가져올 뿐이며, 바로 이런 말들이 긁어서는 안 될 것들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만 해도 그렇지요.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특별히 청하지요. 자신의 아들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말이지요. 이 말을 들은 다른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흐뭇했을까요? 기분이 좋았을까요? 자신들도 앉고 싶은 자리는 바로 예수님이 옆자리였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분열을 일으키는 말을 너무나 자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힘주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맞습니다. 분열을 일으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분열이 아닌 일치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인 것입니다.

모기에 물려서 빨갛게 부풀어 오른 저의 손과 발을 보면서 이렇게 다짐을 해 봅니다.

“주님, 당신의 말씀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도록 합시다.



버려야 할 다섯 가지 마음(‘좋은 글’ 중에서)

1. 의심(疑心)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 자신이 가고 있는 길,
자신이 보고 있는 것, 자신이 듣고 있는 것,
자신의 생각, 자신의 판단력, 자신의 능력.
자신의 귀한 존재를 의심하지 말라.

2. 소심(小心)
마음을 대범하게 쓰는 자,
무엇이 두렵겠는가?
큰 사람이 되자, 큰 마음을 갖자.
당당함을 내 보이는 자가 되라.

3. 변심(變心)
끝은 처음과 꼭 같아야 한다.
견고한 믿음으로부터
목표를 향해 언제나 첫 마음으로 흔들리지 말자.
유혹으로부터 도전적 자세를 가지라.

4. 교심(驕心)
교만해지면 사람을 잃는다.
매사 도전적이되, 머리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
승부를 즐기되, 승리에 집착하지는 말라.

5. 원심(怨心)
원망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
소심하게 살아왔음도,
굳건하지 못했음 마져도 원망하지 말자.
옹졸한 마음을 버리면 앞이 보인다.
마음 안에 원(怨)이 없어야 바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댓글 2

  • 2006년 7월 25일 오전 9:07

    오늘도 한결같이 올려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봉의 날개님!

  • 2006년 7월 25일 오전 11:40

    우리들의 생활 가운데에서도 긁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자주 잊는다는 것이지요. 특히 첫 번째 자리,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지요?///마음뜨끔~.~

강론 묵상 좋은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