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5,01,14) - 연중 제1주간 금요일

2005. 1. 14. 오전 11: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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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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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4,1-5.11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 당신의 안식처에 들어가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살아 있으니 여러분 가운데 그 기회를 놓쳐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그 기쁜 소식을 듣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믿지 않았으므로 그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내가 노하여 맹세한 대로,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었기 때문에 그 안식처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도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에 일을 다 마치시고 쉬셨습니다. 이것은 일곱째 날에 관하여 성서 어디엔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다."고 기록된 말씀대로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은 결코 나의 안식처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 안식을 누리도록 힘써야겠습니다. 옛사람들처럼 순종하지 않다가 낭패를 보아서야 되겠습니까?


복음 마르꼬 2,1-11
며칠 뒤에 예수께서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셨다. 예수께서 집에 계시다는 말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마침내 문 앞에까지 빈틈없이 들어섰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셨다.
그때 어떤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들고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가 계신 바로 위에 지붕을 벗겨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예수 앞에 달아 내려 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거기 앉아 있던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속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감히 이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중얼거렸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네 요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하는 것과 어느 편이 쉽겠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중풍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곧 요를 걷어 가지고 나갔다. 그러자 모두들 몹시 놀라서 "이런 일은 정말 처음 보는 일이다." 하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한 마리의 어린 숭어가 수평선을 차지하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꿈꾸는 듯 뭉게뭉게 이는 수평선 위의 흰 구름, 사과 빛으로 물들어 가는 수평선에 보이는 저녁놀.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숭어는 아득한 서쪽 지평선에는 인어들이 노니는 동화의 나라, 산호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석 달이 넘는 기나긴 여행에도 불구하고 어린 숭어와 수평선간의 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어린 숭어는 점점 절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수평선은 또 그만큼 더 멀어져 가는 것 같았기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어느 날 숭어는 수평선 저쪽으로부터 힘차게 헤엄쳐 오는 젊은 다랑어 한 마리를 만납니다. 특히 그 젊은 다랑어의 눈빛은 희망과 동경에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숭어는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지요.

“서쪽 수평선에서 오시는 분! 그 파라다이스에는 무슨 아름다운 것들이 있나요?”

“뭐라고?”

숭어의 질문에 다랑어는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곧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습니다.

“네가 떠나온 동쪽 수평선에는 어떤 아름다운 것들이 있느냐고 내가 막 물어보려던 참인데...”

숭어나 다랑어나 상대가 살고 있었던 수평선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 역시 다를 것이 없지요. 왜냐하면 똑같은 바다일 뿐이니까요.

우리 역시 이 숭어나 다랑어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즉, 저쪽으로 가야만 진리가 있다고, 그곳에 가면 행복이 펼쳐질 것이라고 우리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또한 그러한 판단으로 커다란 절망감에 빠집니다. 결국 잘못된 판단 하나가 우리들을 불행의 길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는 이러한 부분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치유해주십니다. 하지만 그때 하신 말씀, 즉 “네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말씀에 사람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판단을 하지 않았을까요?

‘네가 뭔데 하느님께서 하시는 용서를 네가 할 수 있다는 거야? 이 놈 사기꾼 아냐?’

사람들은 하느님만이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용서는 하느님만이 가능하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분이 하느님이라는 생각, 하느님이 유한하고 부족한 사람이 되어 오실 수 없다는 그들의 고정관념. 그것이 바로 감히 하느님을 판단하는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크신 분이고, 이 세상 곳곳에 당신의 모습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만 주님을 찾는 어리석은 나는 아니었나를 반성하게 됩니다.

어느 곳에나 계시는 주님이시기에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깊은 하느님 체험과 더불어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남의 떡과 내 떡의 크기는 똑같습니다. 욕심 부리지 맙시다.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이해인)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내가 그렇게 했듯이
드러나지 않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이 깊고 참된 것일수록 말이 적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고
드러나지 않게 선을 베푸십시오
그리고 침묵하십시오

변명하지 말고
행여 마음이 상하더라도 맞서지 말며
그대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섬세한 사랑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사람들이 그대를 멀리할 때에도
도움을 거부할 때에도
오해를 받을 때에도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대의 사랑이 무시당하여
마음이 슬플 때에도 말없이 사랑하십시오

그대 주위에 기쁨을 뿌리며
행복을 심도록 마음을 쓰십시오

사람들의 말이나 태도가 그대를 괴롭히더라도
말없이 사랑하며 침묵하십시오

그리고 행여 그대의 마음에
원한이나 격한 분노와 판단이
끼어 들 틈을 주지 말고

언제나 이웃을 귀하게 여기며
묵묵히 사랑하도록 하십시오.

댓글 1

  • 2005년 1월 14일 오후 12:13

    욕심에 대해..묵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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