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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1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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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2,5-12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 두시지는 않습니다. 성서에 어떤 이가 이렇게 증언한 대목이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잊지 않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돌보십니까? 주님은 그를 잠시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으나, 영광과 영예의 관을 씌우셨으며,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 이렇게 만물을 그에게 복종시키셨다는 것은 그의 지배 아래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보기에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심으로써,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되셨다가 마침내 영광과 영예의 관을 받아 쓰셨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의 소치입니다.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만물은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해서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된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당신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하겠습니다."
복음 마르코 1,21ㄴ-28 [가파르나움 마을에서,] 안식일에 예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사람들은 그 가르침을 듣고 놀랐다. 그 가르치시는 것이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가 회당에 있다가 큰 소리로 "나자렛 예수님, 어찌하여 우리를 간섭하시려는 것입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하고 외쳤다. 그래서 예수께서 "입을 다물고 이 사람에게서 나가거라."하고 꾸짖으시자 더러운 악령은 그 사람에게 발작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이것을 보고 모두들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이것은 권위 있는 새 교훈이다. 그의 명령에는 더러운 악령들도 굴복하는구나!"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예수의 소문은 삽시간에 온 갈릴래아와 그 근방에 두루 퍼졌다.
얼마 전, 어떤 신부님들과 함께 저녁 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뉴는 오리구이였지요. 그 신부님께서 이곳 음식이 맛있다고 추천을 하셨던 것이거든요. 그 음식점에 가보니 정말로 맛이 있는 곳인가 봅니다. 글쎄 그 넓은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음식점 안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저는 잔득 기대를 하면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메뉴판도 가져다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저는 물었지요.
“아주머니, 메뉴판 없어요?”
그러자 그 주위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이상한 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것이에요.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메뉴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오리구이 하나뿐…….
식사를 모두 마친 뒤에 저는 주인아주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이곳은 왜 메뉴가 오리구이 하나에요? 여러 가지를 팔아야 더 많이 남지 않겠어요?”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가 전에는 이것저것을 팔았었지. 내 사위도 요즘과 같은 경쟁사회에서 이기려면 여러 가지를 해야 한다고 하길래, 나도 더 음식 종류를 많이 해서 장사를 했어. 그런데 장사가 도대체 되지를 않는 거야. 그러던 중에 오리구이 하나만 잘하자 라는 생각으로 오리구이만 하게 되었지. 그랬더니 그때부터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는 거야.”
다양한 음식을 해야 장사가 될 것 같았지만, 오히려 특징 있는 하나의 요리가 더 나은 것이었지요. 하긴 메뉴판이 복잡한 곳일수록 장사가 잘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맛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즉, 하나의 음식이라도 잘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의 삶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이것도 잘해야 하고, 저것도 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나만 잘하는 것도 쉽지가 않은 법이지요. 그런데 이것저것 하느라고 결국은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법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요?
정말로 우리들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시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의 산만한 마음들이 정작 중요한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 안에 들어있는 더러운 악령을 쫓아내십니다. 그런데 그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철저히 지키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사람들에게도 권위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떠한가요? 예수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원하는 것들도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만 최선을 다합시다. 이것저것 하다가 아무것도 못합니다.
즉흥적인 일은 오래갈 수 없다(이규호의 ‘에세이 채근담’중에서)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있다. 봄에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서두르지 않으면 그 날 할 일을 못한다. 젊은 시절은 일 년으로 치면 봄이고, 하루로 치면 아침이다. 그러나 봄은 꽃이 만발하고 눈과 귀에 유혹이 많다. 눈과 귀의 향락을 쫓아 가느냐, 아니면 부지런히 땅을 가느냐에 일생의 운명이 결정된다."
공자가 한 말이다.
인간의 행복이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하는 것과 그 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축복에 있다.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지만 일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계획을 세워야 한다. 한번 세워진 계획을 끝까지 밀고 나갈 때 그 계획 자체가 곧 일이 될 수 있다.
감정이란 시시각각 변한다. 더군다나 즉흥적인 감정이란 바닷가에 쌓아올린 모래성과 같다. 단 한 차례의 폭풍우나 세찬 파도에도 그 모래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감정과 재치로 얻은 깨달음은 깨달았는가 하면 금방 흐려져버린다.
'사람이 오래면 지혜요, 물건이 오래면 귀신'이란 속담처럼 인생의 경험과 경륜이야말로 지혜의 보고일 수 있다. 거듭 생각하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