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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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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히브리서 3,7-14 형제 여러분, 성령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유혹을 받고 반역하던 때처럼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마라. 너희 조상들은 사십 년 동안이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도 하느님을 시험 함아 떠보았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그 세대를 보시고, 노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언제나 마음이 빗나가서, 나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노하여 맹세한 대로, 그들은 결코 내 안식처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성서에 "오늘"이라고 한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니 날마다 서로 격려해서 아무도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고집 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켜 나가면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 마르코 1,40-45 그때에 나병 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손을 갖다 대시며 "그렇게 해 주겠다.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그는 곧 나병 증세가 사라지면서 깨끗이 나았다. 예수께서 곧 그를 보내시면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네가 깨끗해진 것을 그들에게 증명하여라." 하고 엄하게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물러가서 이 일을 널리 선전하며 퍼뜨렸기 때문에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드러나게 동네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동네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예수께 모여들었다.
어제는 중요한 모임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신부들의 모임인데, 이 모임은 신부 각자의 생활 반성과 함께 지역 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서로 나누는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어떤 신부님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이 신부님께서는 며칠 전 강원도에 갈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다 본 뒤에 인천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지요. 시간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약간의 눈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그래서 더욱 운전에 신경을 쓰면서 인천으로 오고 있는데요, 바로 앞에 가고 있던 승합차가 이상하더랍니다. 그리고 갑자기 영화 속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하네요.
그 차의 운전수가 졸음운전을 했는지, 가드레일(guardrail)에 부딪힌 뒤에 가드레일을 쭉 타고서 가더랍니다. 그리고 차가 전복되었고 전복된 상태로 상당한 거리를 앞으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바로 앞 차의 모습을 보고서 너무나 놀랐고 그 차를 피하느라 약간의 접촉 사고를 당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뒤의 일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사고가 난 그 승합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걱정되더랍니다. 승합차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 것 같았고 그래서 빨리 구출을 해야만 할 것 같았지요. 그래서 얼른 차에서 내려서 사고 차량을 향해서 가는데 다른 차들의 모습에 너무나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글쎄 차 한 대가 전복되어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그 어떤 사람도 차에서 내려서 도움을 주지 않더랍니다. 아니 그 자리를 그냥 지나가는 것은 그래도 양반이라고 하네요. 오히려 교통을 막히게 한다고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면서 지나가는 차도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그 승합차에 타고 있던 사람 중에서 크게 다친 사람이 없었답니다. 하지만 신부님께서는 이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의 무관심과 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소외당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관심이나 이기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소외당하는 사람 본인의 문제라고, 이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는 이상한 핑계로써 자신을 변호하려 합니다. 물론 그런 변호가 틀린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 우리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이기심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나병 환자 하나가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애원하며 "선생님은 하고자만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직접 손을 갖다 대시면서 치유를 해주시지요.
사실 그 당시에는 나병 환자 근처에도 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늘 혼자였고 가장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렇게 불쌍한 나병환자에게 힘이 되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나병환자 자체의 문제로, 즉 그가 큰 죄를 지어서 그런 것이라면서 소외 문제의 원인을 나병환자 자체에서 찾았고, 그를 향해서 돌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모습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손을 대시면서 나병환자가 가지고 있었던 문제점 자체를 제거해주십니다.
이 모습을 묵상하면서, 이 시대에서 소외당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문제들의 해결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그들의 손을 직접 잡으려고 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직접 손을 대시었습니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들은 직접 손을 대지 않고 말로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주님께서는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관심과 이기심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행복의 문을 여는 비밀번호(심미숙) 일상의 풍요로움은 욕심 그릇을 비워서 채우고 자신의 부족함은 차고 매운 가슴으로 다스리되 타인의 허물은 바람처럼 선들선들 흐르게 하라.
생각은 늘 희망으로 깨어있게 손질하고 어떤 경우에도 환경을 탓하지 말며 결코 남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라.
미움은 불과 같아 소중한 인연을 재로 만들고 교만은 독과 같아 스스로를 파멸케 하니 믿었던 사람이 배신했다면 조용히 침묵하라.
악한 일엔 눈과 귀와 입을 함부로 내몰지 말고 선한 일엔 몸과 마음을 아낌없이 탕진하여 삶의 은혜로움을 깊고 깊은 사랑으로 완성하여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