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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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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로마서 10,9-18 형제 여러분,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성서에도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유다인이나 이방인이나 아무런 구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만민의 주님이 되시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찾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복을 내리십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믿지 않는 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어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말씀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전도자로서 파견받지 않고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하는 말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그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주님, 우리가 일러 준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이사야도 한탄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어야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이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는 묻겠습니다. 그들이 그 말씀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까? 분명히 들었습니다. 성서의 말씀에도, "그들의 소리가 온 땅에 울려 퍼졌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하지 않았습니까?
복음 마태오 4,18-22 그때에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포드가 처음 차를 발명하여 사람들 앞에 선보였을 때, 그는 실수로 후진기어를 만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은 그를 보면서 답답한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포드가 다시 차를 개조해서 완성하였는데, 이번에는 그 차를 공장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공장 문이 차보다 작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포드는 벽을 허물고 자신의 발명품을 꺼내야만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친구들은 포드를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정말로 포드가 답답하고 불쌍한 사람일까요? 저도 이 글을 통해서 포드가 이런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지, 전에는 전혀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그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몇몇 사람들의 입에서만 오르내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에 있어서 금세 주눅이 들곤 하지요.
하지만 이 점을 한 번 생각해보죠.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들도 지독한 방귀 냄새를 풍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 황소보다 힘이 셀 것 같은 씨름 선수들도 감기 때문에 콧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는 것.
맞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은 하나를 잘하면 다른 하나는 실수를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 잘나고 싶지만, 또 잘난 것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 굳이 절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걱정하고 주눅들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11월의 마지막 날로 교회에서는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 안드레아 형제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그들은 잡고 있던 그물을 버리고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예수님 당시의 어부들은 그리 큰 대접을 받지 못했답니다. 특히 갈릴래아 지방의 어부는 더욱 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늘 못하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놀라운 기적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말씀으로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부르십니다. 그것도 제자로 쓰겠다고 말입니다. 이 말에 그들은 힘을 얻습니다.
‘내가 그렇게 못난 것이 아니었구나.’
그래서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큰 자부심과 자신감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렇게 주저하는지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무섭고요.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그 실수 때문에 왜 이렇게 절망을 많이 하는지요?
이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만 잘 봐주면 되니까요.
자신감을 가지고 오늘 하루 기쁘게 삽시다.
아름다운 관계 벌은 꽃에서 꿀을 따지만 꽃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매를 맺을 수있도록 꽃을 도와 줍니다.
사람들도 남으로부터 자기가 필요한 것을 취하면서 상처를 남기지 않으면얼마나 좋을까요.
내 것만 취하기 급급하여 남에게 상처를 내면 그 상처가 썩어결국 내가 취할 근원조차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꽃과 벌 같은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엔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온 세상 가득할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