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1,26) -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2004. 11. 26. 오전 10: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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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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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묵시록 20,1-4.11-21,2
나 요한은 한 천사가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늙은 뱀이며 악마이며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결박하여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 가둔 다음 그 위에다 봉인을 하여 천 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탄은 그 뒤에 잠시 동안 풀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예수께서 계시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했다고 해서 목을 잘린 사람들의 영혼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짐승이나 그의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을 하였습니다.
나는 또 크고 흰 옥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사라지고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닏.
나는 또 죽은 자들이 인물의 대소를 막론하고 모두 그 옥좌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책들이 펼쳐져 있고 또 다른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책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은 그 많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자기들의 행적을 따라 심판을 받았습니다.
바다는 자기 안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냈고 죽음과 지옥도 가지들 속에 있는 죽은 자들을 토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각각 자기 행적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죽음과 지옥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이 불바다가 둘째 죽음입니다. 이 생명의 책에 그 이름이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이 불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 뒤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장한 것처럼 차리고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복음 루가 21,29-33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저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들을 보아라.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벌써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없어지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의 한평생을 박물관에서 일해 온 아저씨는 언제나 기쁜 마음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이상하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어떤 관람객을 만나게 됩니다. 그 관람객은 박물관의 모든 진열품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세히 둘러보는데요. 특이한 것은 남들처럼 걸어가면서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쪼그려 앉은 앉은뱅이걸음을 하면서 자세를 낮추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앉은뱅이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지요.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박물관을 다 돌아보고 갈 때는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똑바로 걸어 나갔거든요.

바로 그 다음날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단체 관람을 왔습니다. 그런데 이 어린 학생들에게 진열품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는 담임선생님은 어제 앉은뱅이걸음을 하면서 관람했던 그 남자였던 것입니다. 즉, 이 선생님께서 어제 앉은뱅이걸음을 한 것은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진열품을 보아두었다가 어린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지요.

선생님의 앉은뱅이걸음. 바로 이 걸음에서 교사 중심이 아니라 제자들의 입장에서 제자들이 쉽고 바르게 배우게 하려는 사랑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도 바로 이런 사랑을 우리들에게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들의 입장에 서기 위해서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우리 인간들과 똑같은 삶을 사셨던 것이지요. 더군다나 편한 생활이 아니라 고통의 삶을 직접 사심으로써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각종 문제들과 고통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직접 선택을 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스승이신 분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따르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우리 역시 사랑을 간직하고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당연한 행동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 사람만큼은 제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이 제게 어떻게 했는데요.”

“에구, 제가 그렇게 사랑을 실천한다면 제가 신이지 사람입니까?”

“신부님,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사랑만 하면서 삽니까?”

그러면 주님께서도 모르는 소리를 하시고, 또 그런 실천을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안 된다는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앉은뱅이걸음처럼 우리들의 입장에 서서 그런 노력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그 앉은뱅이걸음처럼 겸손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네요.

“나무에 잎이 돋으면 그것을 보아 여름이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온 줄 알아라.”

나무에 잎이 돋는다는 것은 일상의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일상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의 눈앞에 무엇인가가 가려져서 제대로 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 눈앞을 가리고 있는 것을 치우기 위해서는 바로 주님과 같은 겸손의 마음을, 즉 앉은뱅이걸음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사랑만이 내 눈 앞에 있는 하느님 나라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다른 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바닥에 대하여(안도현, ‘이 짧은 시간 동안’ 중에서)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바닥을 딛고
굳세게 일어선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고
발이 닿지 않아도
그냥 바닥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바닥의 바닥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도 말한다
더 이상 바닥은 없다고
바닥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라고
그냥 딛고 일어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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