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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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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묵시록 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내 두 증인이 있다."] 이 두 증인이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불입니다. 그들을 해치려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해치려고 하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이 죽고야 말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기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을 권세를 가졌고 또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온갖 재앙으로 몇 번이든지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이 세상을 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부터 그 짐승이 올라와서 그들과 싸워 이기고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그들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던 곳이며 상징적으로는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합니다. 여러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시체를 구경할 것이며 그 시체가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보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교환할 것입니다. 이 두 예언자는 땅 위에 사는 사람들에게 괴로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사흘 반이 지났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셔서 그들은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그 두 예언자는 자기들을 향해서 "이리로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서 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 예언자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복음 루가 20,27-40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선생님, 모세가 우리에게 정해 준 법에는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칠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어 살다가 자식 없이 죽어서 둘째가 형수와 살고 다음에 셋째가 또 형수와 살고 이렇게 하여 일곱 형제가 다 형수를 데리고 살았는데 모두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이렇게 칠 형제가 다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가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저 세상에서 살 자격을 얻은 사람들은 장가드는 일도 없고 시집가는 일도 없다. 그들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도 없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모세도 가시덤불 이야기에서 주님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다. 이것으로 모세는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학자 몇 사람은 "선생님, 옳은 말씀입니다."하였고 감히 그 이상 더 묻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남자가 이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삿짐 정리가 끝나기 전에 정전이 되고 만 것이에요. 그는 이삿짐을 뒤져서 양초와 성냥을 간신히 찾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문을 열어 보니 한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아저씨, 혹시 양초 있으세요?”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사 온 사람에게 양초를 빌려 오게 하다니. 만일 지금 양초를 빌려 주면 날 업신여기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것저것 빌려 달라고 할 거야.’
이런 생각이 든 남자는 아이에게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지금 막 이사 왔단다. 따라서 우리 집에는 양초가 없어.”
그리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 아이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저씨, 그럴까봐 제가 양초를 가지고 왔거든요.”
그러면서 아이는 양초 두 개를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그 맑은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었다고 하네요.
자기만을 드러내는 행동들은 이처럼 잘못된 판단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결국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망신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기들도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즉, 이론적으로 예수님을 짓누름으로써 자신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이런 생각만 가득했지, 실제로 예수님을 이론적으로 이길만한 어떤 근거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이름을 드높이겠다는 생각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율법에 의하면, 형이 결혼했다가 자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7형제가 모두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이 없다면 부활할 때 형수는 누구의 아내가 되냐는 것이었지요. 결국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누구의 아내가 될 수도 없는 상황이기에 부활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실 율법의 이 내용은 남편이 없으면 이 사회의 약자가 될 수밖에 없기에, 그들을 구제하기 위한 한 방안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만을 드러내겠다는 욕심에서 말도 안 되는 비유를 들었던 것입니다.
바로 자기를 드러내는 행동이 잘못된 판단을 가져오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행동의 결과는 사람들 앞에 망신을 당해 오히려 부끄러움만 가득 안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나의 말과 행동은 과연 어떤 의도로 나오고 있을까요? 혹시 사두가이파 사람들처럼 자기를 내세우기위한 하나의 이기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 그런 의도는 결국 망신당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는 이렇게 망신당하지 않도록 자기를 드러내기 보다는 주님을 드러내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 있어서 미리 판단하지 맙시다.
작은 친절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한 노부부가 묵을 곳을 찾아 작은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그 호텔 사무원은 겸손한 어투로 방이 다 찼다는 말과 함께 그 도시의 모든 호텔이 만원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덧붙여서 "이 빗속에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니 괜찮으시다면 제가 쓰는 방에라도 묵고 가시죠."라고 했습니다.
노부부도 처음엔 사양했지만 그 사무원의 친절에 감동받아 하룻밤을 잘 쉬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계산을 하면서 "당신은 미국 전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을 관리할 사람이군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몇 년 후 그 사무원은 노부부의 초청을 받아 뉴욕으로 갔습니다.
그 노인은 맨해튼 중심가로 그를 데리고 간 뒤 "이것이 바로 당신에게 관리를 맡길 호텔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호텔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이었고 노인은 바로 호텔주인인 윌리엄 월도프 아스토였지요.
친절을 베푼 사무원은 조지 볼트로 이 호텔의 첫 지배인이 되었습니다. 작은 친절이 큰 축복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