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4,11,13) -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2004. 11. 13. 오전 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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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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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요한 3서 5-8
사랑하는 [가이오,] 그대는 형제들을 위해서 특히 나그네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성실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곳 형제들 앞에서 그대의 사랑에 관하여 증언했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일꾼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서 떠나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위해서 나선 사람들로서 이교도들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진리를 위해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협력자가 될 것입니다.


복음 루가 18,1-8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그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는 늘 그를 찾아가서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하고 졸라댔다.
오랫동안 그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그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못견디게 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들어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벼려 두실 것 같으냐?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지난 달, 저는 강화도에 위치하고 있는 인천가톨릭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총장배 축구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프닝 경기로, 신부들과 신학생들의 축구 시합이 있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축구 대표가 되었지요. 정말로 오랜만에 볼을 차는 것이었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에야 거의 매일 볼을 차다시피 했지만, 신부가 되고 나서는 볼 찰 기회가 있어야지요.

아무튼 경기가 시작되었고, 저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볼을 찼습니다. 그런데 한 5분 쯤 뛰었을까요? 숨이 꽉 막혀서 이제 도저히 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도 신학교 다닐 때에는 매년 학년 대표로 볼을 찼던 저였는데, 그 공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던지요. 제가 볼을 차면서도 어느 쪽으로 공이 갈지를 예측할 수가 없었답니다. 바로 이 순간 예전에 유행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마음은 박남정인데, 몸은 현철이다.”

만약 저 역시 꾸준히 축구를 했었다면 이렇지 않았겠지요. 바로 꾸준히 하지 않았기에, 즉 오랜만에 볼을 차는 것이라 금방 지치고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이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는 기도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드네요. 기도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 뒤에는 ‘정말로 이 길이 너무나 좋구나.’ 하면서 성당, 성체조배실, 집 등 기회가 될 때마다 기도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바쁜 일로 인해서 기도를 하지 않게 되면, 처음에 가졌던 열성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기도 하는 시간이 오히려 아깝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이 시간에 책을 읽는 것이, 이 시간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이 시간에 운동하는 것이…’

이러한 생각들로 인해서 우리는 기도의 마음이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주말 신자, 더 나아가 냉담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나약함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그래서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행하는 기도와 항구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해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오만한 재판관이 끈질기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 가난한 과부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이야기이지요. 이 과부는 돈도 없었고, 어디에 기댈 권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어떤 공정한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았겠지요. 돈도 없고 빽도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때우는 것이지요. 그래서 끈질기게 재판관에게 조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끈질김을 통해서 이 여인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주의 깊게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동네의 돈 많은 사람들,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단 한명 재판관에게만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확실한 사람 한 명에게만 끈질기게 매달렸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이 되라고 하십니다. 물질도 섬기고, 지위도 섬기고, 또 주님도 섬기면서 대충 대충 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만 의지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라고 하십니다.

그런 최선의 방법을 취할 때 내 구원이 더욱 더 가깝게 다가온다는 것을 잊지 않는 오늘이 되면 어떨까요?


주님을 언제나 첫 자리에… 양다리 걸치지 맙시다.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

삶이 힘겨울때 새벽시장에 한번 가보십시요.
밤이 낮인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상인들을 보면 힘이 절로 생깁니다.
그래도 힘이 나질않을땐 뜨끈한 우동 한그릇 드셔보십시요.
국물맛 죽입니다.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작게 느껴질때 산에 한번 올라가보십시요.
산정상에서 내려다본 세상 백만장자 부럽지 않습니다.
아무리 큰 빌딩도 내발 아래 있지않습니까 .
그리고 큰소리로 외쳐보십시요.
"난 큰손이 될것이다" 훗훗
이상하게 쳐다보는사람 분명 있을것입니다.
그럴땐. 실 쪼개 십시요

죽고 싶을때 병원에 한번 가보십시요.
죽으려 했던 내자신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난 버리려 했던 목숨 그들은 처절하게 지키려 애쓰고 있습니다.
흔히들 파리목숨이라고 들 하지만 쇠심줄보다 질긴게 사람목숨입니다.

내인생이 깝깝할때 버스 여행 한번 떠나보십시요.
몇백원으로 떠난 여행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날수 있고, 무수히 많은 풍경을 볼수있고.
많은것들을 보면서 활짝 펼쳐질 내 인생을 그려보십시요.
비록 지금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아 깝깝하여도......
분명 앞으로 펼쳐질 내인생은 탄탄대로 아스팔트 일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싶을땐 따뜻한 아랫목에 배깔고 엎드려 잼난 만화책을 보며.
김치부침개를 드셔보십시요.
세상을 다가진듯 행복할 것입니다.
파랑새가 가까이에서 노래를 불러도 그새가 파랑새인지 까마귀인지 모르면 아무소용 없습니다.
분명 행복은 멀리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속 썩일때 이렇게 말해보십시요.
"그래 내가 전생에 너한테 빚을 많이졌나보다."
"맘껏 나에게 풀어"
"그리고 지금부턴 좋은 연만 쌓아가자"
"그래야 담 생애도 좋은 연인으로 다시만나지" .....훗훗
남자든 여자는 뻑 넘어갈 것입니다.

하루를 마감할때 밤하늘을 올려다 보십시요.
그리고 하루동안의 일을 하나씩 떠올려 보십시요.
아침에 지각해서 허둥거렸던일.
간신히 앉은자리 어쩔수 없이 양보하면서 살짝 했던 욕들.
하는일마다 꼬여 눈물 쏟을뻔한일.
넗은 밤 하늘에 다 날려버리고 활기찬 내일을 준비하십시요.
아참... 운좋으면 별똥별을 보며 소원도 빌수 있습니다.

문뜩 자신의 나이가 넘 많다느껴질때
100부터 거꾸로 세어보십시요.
지금 당신의 나이는 결코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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