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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1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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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에페소서 4,1-7.11-13
형제 여러분, 1 주님 안에서 수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3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4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7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복음 마태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아메리카 어느 인디언 부족의 성년식 때, 이 부족에서는 성년이 된 소년, 소녀에게 바구니를 들고 옥수수 밭을 걷게 한다고 합니다. 긴 밭고랑을 걸으면서 가장 크고 탐스러운 옥수수를 딱 하나만 골라 바구니에 담게 한다는 것이지요. 단, 이때 이미 지나온 길로는 절대 되돌아갈 수 없으며 이미 딴 옥수수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도 없다고 합니다. 정말로 마음에 든 옥수수 딱 하나만을 골라야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다들 어떤 옥수수를 골랐을까요? 소년, 소녀들의 바구니는 비어있거나 맨 마지막에 급하게 딴 초라한 옥수수 하나가 담겨 있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소년과 소녀의 위치에 섰다면 정말로 크고 멋진 옥수수를 고를 수 있겠습니까? 아마 저 역시 이 소년과 소녀들처럼 빈 바구니를 가지고 오거나 아니면 초라한 옥수수 하나만 담고 왔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보다 더 크고 멋진 옥수수를 고르겠다는 욕심 때문인 것이지요.
아무튼 좋은 것을 다른 것과 끝까지 견주다가 결국 놓치고 마는 것. 충분히 좋은 것임에도 끊임없이 비교하려는 욕심 때문에 좋은 것을 놓치고 사는 우리들은 아니었는가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인간적인 욕심을 버리고서 “나를 따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마태오를 만나게 됩니다. 마태오 사도는 당시 세리로써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지요. 또한 많은 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물론 오늘 복음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는 등 사교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면을 보입니다. 이처럼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사는데 있어서 부족한 면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깨닫게 되지요.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쫓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욕심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 마태오 사도를 바라보면서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인간적인 욕심들을 버리지 못해서, 결국 무엇보다도 중요한 주님의 구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앞서 빈 옥수수나 초라한 옥수수 하나만 담을 수밖에 없었던 성년식을 맞이하는 소년, 소녀처럼 말이지요.
어제 어떤 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신부님은 도대체 못하시는 것이 뭐에요?”
그래서 저는 곧바로 이러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제가 잘 하는 것이 뭔데요?”
이에 그분께서는 “글 잘 쓰시죠. 음……. 자전거도 잘 타시죠. 음… 음… 음… 또……. 방 잘 어지럽히기?”라면서 더 이상 말씀을 잇지 못하시더군요.
그렇지요. 사실 저는 그렇게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잘 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단지 주님을 따르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 똑같지 않나요? 사실 별 것 아닌 재능과 능력인 것이지요.
그런데도 인간적인 욕심만을 채우시겠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길이야 말로 성공의 비결입니다.
오늘 하루만큼이라도 인간적인 욕심을 갖지 맙시다.
대통령을 이긴 발상('행복한 동행' 중에서)
미국의 한 출판업자가 날로 쌓여 가는 재고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대통령께 책을 보내 감상 평을 써 달라고 하자!'
그렇잖아도 너무나 바쁜 대통령은 그 출판업자가 계속 책을 보내 귀찮게 하자, 단 한 마디의 답신을 보내 주었다.
"이 책 괜찮군요."
출판업자는 대통령의 이름을 빌어 대대적인 광고를 시작했다. 책은 단 하루만에 동이 났다.
얼마 뒤 또 다시 재고가 쌓이자 출판업자는 대통령에게 또 책을 보냈다. 지난 번 고역을 치른 대통령은 그를 골탕 먹일 심산으로 "이 책은 완전히 엉터리입니다."라는 답변을 보냈다.
출판업자는 한 번 더 머리를 써 이렇게 광고했다.
'현직 대통령이 몹시 싫어하는 책입니다.'
사람들은 또 다시 앞 다투어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출판업자는 대통령에게 세 번째 책을 보냈다. 대통령은 앞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고는 아예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 출판업자는 또다시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대통령도 할 말이 없어진 책입니다. 서두르세요.'
이 책 역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팔려 나갔고 출판업자는 큰돈을 벌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라고 해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길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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