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9.16) - 연중 제24주일 다해

2007. 9. 16. 오후 6:55:37

글자
2007년 9월 16일 연중 제24주일 다해

제1독서 탈출기 32,7-11.13-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제2독서 티모테오 1서 1,12-17

사랑하는 그대여, 12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13 나는 전에 그분을 모독하고 박해하고 학대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이 없어서 모르고 한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14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15 이 말은 확실하여 그대로 받아들일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16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먼저 나를 당신의 한없는 인내로 대해 주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당신을 믿게 될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고자 하신 것입니다.
17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5,1-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11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요즘에는 글 쓸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밤늦게(물론 제가 말하는 늦은 밤은 여러분에게는 초저녁이 아닐까 싶네요)까지도 글을 쓸 때가 종종 있지요. 이렇게 글을 쓰다보면 갑자기 시장기가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곧바로 부엌에 가서 토스트를 해 먹거나 또는 라면 하나 끓여 먹습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렇게 며칠을 계속해서 밤참을 먹었고, 또한 저녁에 모임이 있으면 술 한 잔 하면서 많은 안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이상하게 변한 저의 모습을 욕실의 거울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랫배만 뽈록 튀어나온 배를 보면서 이제는 안 되겠다. 이제 야참은 그만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습관이 얼마나 무섭던 지요. 그 시간만 되면 또 다시 고파하는 배. 또한 왜 이렇게 배가 출출할 때만 되면 모임이 생기는 모르겠습니다.

결국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저의 결심은 작심삼일도 지키지 못했고, 배는 여전히 뽈록 튀어나온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있었던 일입니다.

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는데 또 다시 배가 고파지는 것입니다. 머리에서는 ‘참아야 해. 살쪄~~’를 말하고 있지만, 몸에서는 ‘혼자 사는데 몸매를 왜 신경 쓰니?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더라. 먹어~~ 맘껏 먹어~~’를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 딱 3장만 더 쓰고서 뭔가를 먹자고. 빨리 쓰면 30분, 아무리 천천히 써봐야 1시간이면 충분하니까, 이 정도만 참자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했지요.

드디어 3장의 글을 다 썼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먹고 싶었던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시장감과 이에 따른 행동 사이에 있었던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뭔가를 먹고 싶다는 시장함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던 것이지요.

나의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조금만 참으면 별 것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것을 그 조금의 인내가 없어서 그토록 힘들어했던 것은 아닐까요? 더군다나 우리가 믿는 주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신 분으로 우리의 힘듦을 그냥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죄를 지어도 내치지 않으시고 끊임없는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분이 아닙니까?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는 한 마리의 양과 은전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명 한 명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곧이어 ‘탕자의 비유’는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더 깊이 깨닫게 하지요.

사실 세상에 그런 아들이 있을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도 않았는데 자기에게 올 유산을 미리 달라니요. 말도 안 되는 것이며 불효막심한 아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아마 이 작은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와 형 그리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는 전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을 듣지 않아서 벌을 받은 것일까요? 방탕과 사치를 일삼던 작은 아들은 쫄딱 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아버지의 품을 그리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갑니다. 바로 이 순간 아무 말 하지 않고 꼭 껴안고 입을 맞추는 아버지. 바로 최고의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렇게 최고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인데, 우리들은 과연 이러한 주님께 어떻게 다가설까요? 조금 힘들다고 이를 참지 못하고, 주님을 배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사랑에 비해 너무나도 작아지는 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갖고 나의 가족을 꼭 껴안아 줍시다.



오늘 나를 확인하는 거울('좋은 글' 중에서)

두 눈이 있어
아름다움을 볼 수 있고,
두 귀가 있어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두 손이 있어
부드러움을 만질 수 있으며
두 발이 있어 자유스럽게 가고픈 곳
어디든 갈 수 있고,
가슴이 있어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으며,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고,
내가 갈 곳이 있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의 여정에서
돌아오면 내 한 몸
쉴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날 반겨주는 소중한 이들이
기다린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내가 누리는 것을 생각합니다.

아침에 보는
햇살에 기분 맑게 하며
사랑의 인사로 하루를 시작하며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서 마음이 밝아질 수 있으니
길을 걷다가도
향기로운 꽃들에 내 눈 반짝이며

한 줄의 글귀에 감명받으며
우연히 듣는 음악에
지난 추억을 회상할 수 있으며
위로의 한 마디에
우울한 기분 가벼이 할 수 있으며

보여주는 마음에
내 마음도 설레일 수 있다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누리는 행복을 생각합니다.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건강한 모습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이 아름다운 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하다는 것을
오늘이라는 좋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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