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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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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콜로새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복음 루카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새벽미사를 끝내고 교우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하러 근처의 해장국집에 갔습니다.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근처의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에서 한 쌍의 인상적인 연인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둘 다 완전히 만취된 것으로 보이더군요. 그리고 테이블에는 소주 8병과 조금 남은 음식이 어지럽게 있었습니다. 그때의 시간이 아침 8시…….
‘밤새 술을 마셨나? 이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사람들은 일하지 않나? 무슨 술에 원수졌다고 저렇게까지 마실 수 있지?’
저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이 연인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더군요. 그만큼 이들의 모습은 긍정적인 모습이기보다는 부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어요. 나의 모습은 과연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까?
이 문제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나 역시 이 연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모습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나의 모습은 가려져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내 마음의 모습은 그들보다도 더 흉하지 않을까 라는 반성도 해봅니다.
스스로 이렇게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보다 더 겸손한 마음, 보다 더 주님의 뜻에 맞게 사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봅니다. 왜냐하면 나는 옳고 남은 옳지 않다는 모습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위선적인 모습을 닮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 법을 항상 강조했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안식일 법은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뒤 갖는 거룩한 주님의 날이기에 반드시 잘 지켜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거룩하게 안식일을 지낸다기보다는 꼬투리 잡기에 바쁩니다. 그래서 거룩한 주님의 날에 사랑으로서 사람을 치유하셨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고, 단순히 ‘일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면서 예수님을 단죄하려는 생각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올바르기에 이러한 단죄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지요.
내가 옳다면 남도 옳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한 스스로 완벽하다는 것은 완벽한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또 하나의 욕심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나쁜 모습, 부정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에 대해서 판단하고 단죄하기 전에 우선은 기도하셨으면 합니다. 이 모습이 예수님께서 보이신 복음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나쁜 모습, 부정적인 모습에 대해서 기도합시다.
모두가 죄인입니다('감동의 새벽편지 ' 중에서)
옛날 한 법관이 재판을 심사 분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재판 서류를 보고는
피가 멎는 듯 하였다.
이름이 자기의 아들과 같았다.
주소를 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그 죄인은 바로 자신의 아들이었다.
죄명은 살인강도였기에 법대로 하면 사형이다.
아버지는 법대로 공정하게 집행해야 했으며
법관인 아버지는 결국 판례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얼마 후... 아들이 사형당하기 전날 밤
아버지는 법복을 입고,
아들이 있는 감옥을 찾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얼싸안고
한참을 울고난 후..
아들에게 당부했다.
“이것은 나의 마지막 유언이니 꼭 들어라.
네가 나의 이 법복을 입고 나가라.
너의 죄 값을 내가 다 지고 간다.
너는 이제 죄 없는 자유인이다.
너의 죄를 내가 대신 다 짊어졌다.
그리고 더 이상 너는 죄가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결국 서로의 옷을 바꿔입었다.
법복을 입은 아들은 자유롭게 감옥을 나갔고,
죄수복을 입은 아버지는 다음날 사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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