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8.27) - 성녀 모니카 기념일

2007. 8. 27. 오전 8:36:08

글자
2007년 8월 27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제1독서 테살로니카 1서 1,1-5.8ㄴ-10

1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가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2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3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4 하느님께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5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위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어떻게 처신하였는지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하느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이 곳곳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 사실 그곳 사람들이 우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갔을 때에 여러분이 우리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러분이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아 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는지, 10 그리고 여러분이 어떻게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그분의 아드님, 곧 닥쳐오는 진노에서 우리를 구해 주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기다리게 되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23,13-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13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14)
15 불행하여라, 閣?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개종자 한 사람을 얻으려고 바다와 뭍을 돌아다니다가 한 사람이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16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성전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성전의 금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17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금이냐, 아니면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는 또 ‘제단을 두고 한 맹세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제단 위에 놓인 예물을 두고 한 맹세는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19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0 사실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고, 21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성전과 그 안에 사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며, 22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이는 하느님의 옥좌와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두고 맹세하는 것이다.”




어제 저녁미사 때였습니다. 주일 저녁미사는 청년들 미사로써 청년 밴드 팀이 반주하면서 신나는 음악과 함께 미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저는 미사의 어느 한 순간이 되면, 긴장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 벌써 한 달째 틀리고 있거든요. 이 부분은 바로 ‘신앙의 신비여’입니다. 저는 맞게 한다고 하는데, 미사가 끝나고 나서는 반주자가 항상 말합니다.

“신부님, 오늘도 틀리셨어요.”

이러한 말을 듣다보니,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왜 틀리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하긴 ‘신앙의 신비여’ 버전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린이미사, 중고등부미사, 성인미사, 국악미사, 그리고 청년미사까지... ‘신앙의 신비여’의 음이 다르다보니 이렇게 틀리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 달째 틀릴 수가 있을까요?

어제 저녁미사 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기 위해 사제관에 모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가 ‘신앙의 신비여’에 대한 말이 나왔지요. 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가 기억하고 있는 음을 노래 불렀습니다. 아니랍니다. 저는 이 음이 맞다고 계속해서 우겼지요. 그리고 이 ‘신앙의 신비여’가 나오는 음반을 틀어보았습니다.

결과는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제가 음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음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단지 긴장을 해서 음이 계속 틀리는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한 달 동안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음반을 틀어 보면서 연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쓸데없는 고집이며, 어리석은 저의 모습인 것이지요. 결국은 신자들에게 놀림감만 될 뿐인데, 뭐가 잘났다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이 모습이 바로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꾸짖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아닐까요?

율법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세부조항에만 목숨 걸고서 지키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 이런 모습을 예수님은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처럼 따끔한 충고를 하십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까요? 자기들이 예수님보다 더 윗자리에 있다는 착각에, 자신들의 말은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그래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절대로 굽히지 않는 고집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느님의 아드님을 배척할 수밖에 없었지요.

우리 역시 이런 모습을 취할 때가 많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신 ‘사랑’을 잊고, 나 중심으로만 모든 것을 맞추려고 할 때 또 한 명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앞서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서 결국 한달 동안 성가를 틀리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고집 부려서 좋을 것 하나 없습니다. 고집 부리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지금 당장 실천하십시오.


남들의 말도 좀 들읍시다.



자기만의 프레임을 깨라(최인철, ‘프레임’ 중에서)



최근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아주 재치 있게 보여 주는 실험 하나를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심릭학과에서 실시했다.

두 명을 한 조로 짝 지워 한 명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려서 어떤 노래를 연주하고 다른 한 명은 그 노래 제목을 알아맞히는 실험이었다. 이때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곡명을 알려줄 수 없고 입으로 흥얼거릴 수도 없다. 오로지 손가락만으로 노랫가락을 표현하게 했다. 노랫가락 연주가 끝나면 청중격인 참여자는 노래 제목을 적고, 연주자는 자신이 연주한 노래 제목을 상대방이 알아맞힐 확률을 적도록 했다.

연주자의 기대치와 청중의 정확도는 얼마나 맞아떨어질까?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연주자들은 청중이 자신의 손가락 연주를 듣고 노래 제목을 알아맞힐 확률이 최소한 50%는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청중이 제목을 맞힌 비율은 겨우 2.5%뿐이었다. 연주자의 손가락 연주가 잘못된 것일까?

이제 입장을 바꿔 청중이 되어 보자. 당신에겐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 어떤 멜로디나 연주의 감흥도 느낄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저 '탁탁' 책상 치는 소리만 들린다. 그런데도 연주자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경험했던 그 환상적인 연주가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자기라는 프레임에 갇힌 우리는 우리의 의사 전달이 항상 정확하고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전달한 것은 오직 자신의 프레임 속에서만 자명한 것일 뿐, 다른 사람에게는 지극히 애매하게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의사불통으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와 갈등에 대해 사람들은 서로 상대방의 무감각과 무능력, 배려 없음을 탓한다.

우리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야지!'라며 상대방을 추궁하지만 실상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같이 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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