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8.18) -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2007. 8. 18. 오전 8: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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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8일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제1독서 여호수아기 24,14-29

그 무렵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4 “이제 너희는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섬겨라. 그리고 너희 조상이 강 건너편과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섬겨라.
15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16 그러자 백성이 대답하였다. “다른 신들을 섬기려고 주님을 저버리는 일은 결코 우리에게 없을 것입니다.
17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종살이하던 집에서 데리고 올라오셨으며, 우리 눈앞에서 이 큰 표징들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걸어온 그 모든 길에서, 또 우리가 지나온 그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 또한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들과 이 땅에 사는 아모리족을 우리 앞에서 몰아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19 그러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주님을 섬길 수 없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느님으로서, 너희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20 너희가 주님을 저버리고 낯선 신들을 섬기면,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선을 베푸신 뒤에라도, 돌아서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망시켜 버리실 것이다.”
21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너희가 주님을 선택하고 그분을 섬기겠다고 한 그 말에 대한 증인은 바로 너희 자신이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가 증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3 “그러면 이제 너희 가운데에 있는 낯선 신들을 치워 버리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마음을 기울여라.” 하자,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주 우리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25 그날 여호수아는 스켐에서 백성과 계약을 맺고 그들을 위한 규정과 법규를 세웠다. 26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모두 하느님의 율법서에 기록하고, 큰 돌을 가져다가 그곳 주님의 성소에 있는 향엽나무 밑에 세웠다. 27 그러고 나서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인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은 너희가 너희 하느님을 부정하지 못하게 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28 여호수아는 백성을 저마다 상속 재산으로 받은 땅으로 돌려보냈다.
29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열 살이었다.


복음 마태오 19,13-15
13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주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자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사람이 지혜로운 이를 찾아와 묻습니다.

“당신은 훌륭한데 저는 왜 그렇지 못할까요?”

그러자 지혜로운 이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데리고 자기 집 앞의 뜰로 나갔습니다. 뜰에는 크고 울창한 나무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그 앞에 한동안 나무만 쳐다보고 있던 지혜로운 이가 조용히 입을 엽니다.

“이 나무들을 잘 보시오. 이 나무는 크고 저 나무는 작지요. 그러나 두 나무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큰 나무가 작은 나무더라 ‘봐라, 난 커서 훌륭해.’라든가 작은 나무가 큰 나무더러 ‘난 키가 작어서 열등감을 느껴.’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지혜로운 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지요.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아름답습니다. 큰 나무는 구름에 가깝게 있어 좋고, 작은 나무는 땅에 가깝게 있어 좋은 것이지요.”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향해 빙긋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오직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든 생명들은 가치가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지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우리 인간들이 축소시킬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고……. 특히 사람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말하면서 그 가치를 축소시킬 때가 얼마나 많았던 지요?

오늘 복음에서 어떤 이들이 예수님께 어린이들을 데리고 와서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 사람들을 꾸짖지요. 왜냐하면 당시에 어린이들은 미천한 존재이며 율법을 준수할 능력이 없는 이로 취급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약하고 성숙되지 않은 아이들을 돌볼 만큼 예수님께서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강압적으로 막습니다.

제자들이 외적인 힘으로 예수님께 다가오는 어린이들을 막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께 다가오는 사람들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적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자신이 신앙인으로서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래서 그들이 성당에 나오는데 꺼리는 마음을 갖게끔 한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께 다가오려는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막는 또 하나의 잘못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어떤 이도 배척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비록 공부도 못하고 능력이 없다 할지라도 당신을 바라보면서 당신 앞에 나아오려는 사람을 기쁘게 받아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모든 이를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그들과 함께 주님께서 약속하신 사랑이 가득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힘없고 소외된 이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해요.



거북의 걸음걸이(‘좋은생각’ 중에서)



용맹스러움으로 이름을 떨친 왕이 있었다. 하지만 왕에게는 늘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백성들 표정에 왕에 대한 두려움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기 떄문이다.

그래서 왕은 한 현자를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길 진심으로 원하오. 그런데 그들은 나의 마음을 모른 채 나를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불행한 삶을 살고 있소."

가만히 왕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자가 말했다.

"사자와 같은 용맹함과 독수리와 같은 지혜는 백성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제공해 줍니다. 영토가 넓어지고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행복의 조건을 백성의 마음속에 심어 주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왕은 드디어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큰소리로 물었다.

"그래, 그것이 대체 무엇이요?"

"바로 거북의 걸음걸이입니다. 거분은 자신의 배와 심장을 땅에 붙이고 갑니다. 따라서 더디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죠. 그러나 거북은 느림의 대가로 얻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땅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가슴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폐하께서도 땅에 심장을 맞댄 채 걸어가는 거북의 느린 걸음걸이를 배우십시오. 그것은 백성들 얼굴에 진정한 행복이 나타나도록 용맹함과 지혜를 갖추신 폐하께서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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