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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8일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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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민수기 13,1-2.25─14,1.26-30.34-35
그 무렵 1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 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 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 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 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복음 마태 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갑곶성지에 있을 때, 페인트칠을 직접 할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난생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특별히 페인트칠을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망치더라도 직접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의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당장 페인트칠을 그만두고 어디를 급하게 가야만 했고, 다음날에야 계속해서 페인트칠을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문제가 생겼어요. 도중에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한 그 이음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저는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페인트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우리의 인생이 중도에 팽개쳐진 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닌지요? 사실 우리들은 대개 시작하는 것은 잘 하지만 끝마치는 데는 서투른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도에서 포기하는 일로 인해서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주님께 끝까지 매달리는 믿음을 간직하라고 우리에게 강조하십니다. 바로 이 점을 오늘 복음은 전해 줍니다.
어떤 이방인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딸에게 들린 마귀를 쫓아내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이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방인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방해합니다. 또 예수님도 매정한 말씀을 하시지요.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주변의 방해와 예수님 스스로도 매정한 말씀으로 당신께 다가오는 여인을 쫓아내고 있지만 이 여인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자기 딸을 고쳐줄 수 있다는 강한 믿음에 예수님도 감동을 하시지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영국의 수상 처칠은 팔삭둥이 조산아로 태어나 초등학교 때에는 교사로부터 제일 멍청한 소년이라는 말을 들었고, 중학교 때는 영어에서 낙제 점수를 받아 3년이나 유급했다고 합니다. 그는 명문 가정에 태어났지만, 실력이 되지 않아서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에 입학하지 못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지요. 그러나 그는 영국의 수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훗날 명문 옥스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축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러한 간단한 축사를 했습니다.
“Never Give Up"(포기하지 말라)
그리고는 다시 청중들을 천천히 둘러보았지요. 청중들은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Never, Never, Never Give Up"(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처칠은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는 강단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부족함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처칠이 그러한 성공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성공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Never, Never, Never Give Up!
정직한 인생이 아름답다(이종철, '믿는 부모'중에서)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 자동차 뒷좌석 유리창에 웬 낙서 하나를 발견하고는 우리 가족은 무척이나 화를 냈다. 아내가 무심코 큰아이더러 "네가 그랬니?"라고 묻자, 큰아이는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우리는 큰아이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정직을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아이는 차에 탈 때마다 유난히 그 낙서 때문에 짜증을 내었다. "엄마, 난 이 낙서가 정말 싫어. 이 낙서 없었으면 좋겠어."라며 징징거리기까지 했다. 그때만 해도 큰아이가 유난히 깔끔 떠는 구석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두 달쯤 지나서였을까. 차에 오르던 큰아이가 그 낙서를 보다가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그 낙서는 우리 큰아이가 한 것이었는데, 엉겹결에 아니라고 대답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돌이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큰아이는 그 낙서를 볼 때마다 거짓말한 자신 때문에 너무 속상했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두 달간 마음고생 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팠다.
그땐, 우리가 아직 어린아이를 정직이라는 이름 하에 너무 가혹하게 옭아맨 것 같아 참 많이 반성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니 중요한 삶의 진실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딸아이는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택했을 때 양심이 얼마나 괴로울 수 있는가에 대해 아주 일찌감치 체득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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