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7.29) - 연중 제17주일 다해

2007. 7. 29. 오후 2:14:10

글자
2007년 7월 29일 연중 제17주일 다해

제1독서 창세기 18,20-32

그 무렵 2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원성이 너무나 크고, 그들의 죄악이 너무나 무겁구나. 21 이제 내가 내려가서, 저들 모두가 저지른 짓이 나에게 들려온 그 원성과 같은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보아야겠다.” 22 그 사람들은 거기에서 몸을 돌려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님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23 아브라함이 다가서서 말씀드렸다.
“진정 의인을 죄인과 함께 쓸어버리시렵니까? 24 혹시 그 성읍 안에 의인이 쉰 명 있다면, 그래도 쓸어버리시렵니까? 그 안에 있는 의인 쉰 명 때문에라도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25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26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소돔 성읍 안에서 내가 의인 쉰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들을 보아서 그곳 전체를 용서해 주겠다.”
27 아브라함이 다시 말씀드렸다. “저는 비록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28 혹시 의인 쉰 명에서 다섯이 모자란다면, 그 다섯 명 때문에 온 성읍을 파멸시키시렵니까?”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마흔다섯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파멸시키지 않겠다.”
29 아브라함이 또다시 그분께 아뢰었다. “혹시 그곳에서 마흔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마흔 명을 보아서 내가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0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그곳에서 서른 명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일을 실행하지 않겠다.”
31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혹시 그곳에서 스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스무 명을 보아서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32 그가 말씀드렸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 ?”
그러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제2독서 콜로새 2,12-14

형제 여러분,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복음 루카 11,1-13
1 예수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3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4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5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어제는 제 동창 신부와 아침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물론 운동의 종목은 자전거이지요. 동창 신부가 우리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좋은 자전거 코스가 있으니 함께 타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아침 일찍 만나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이곳에 별 특별한 코스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항상 차로 지나가는 길옆에 위치한 곳이었고, 제대로 조성된 공원의 모습을 하고 있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 의구심들은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금방 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전거 도로를 비롯해서 주변의 경관이 너무나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뭐 특별한 것이 있을까 했던 곳이었는데,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강화에 있을 때에는 매일 자전거를 탔습니다. 그러나 이곳 간석4동 성당에 와서는 도시 한 가운데에 있어서 자전거 탈 곳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그래서 자전거 타는 것을 소홀히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당에서 불과 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이렇게 좋은 자전거 코스가 있었네요. 그것도 모르면서 자전거 탈 곳이 없다고 불평불만만 하고 있었으니…….

문득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즉,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곁에서 언제나 함께 하시려는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우리 곁에 있지 않다면서 불평과 불만을 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우리 스스로 주님을 점점 멀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옆에 있음을 우리들이 깨닫게 하기 위해 그래서 이 세상을 살면서 힘을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도’를 직접 가르쳐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바로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면, 본인이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도를 우리들은 너무나도 소홀히 합니다. 마치 따분한 하나의 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만 해야 하는 행사로만 생각할 때가 얼마나 많았나요?

앞서 별 특별한 것이 있을까 했던 곳이었지만, 직접 들어가 보니 너무나도 멋진 곳이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 역시 밖에서 볼 때에는 뭐 특별한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직접 간절한 기도를 바치다보면, 이 안에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기도의 힘은 이렇게 대단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기도를 저희에게 직접 가르쳐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면서 오늘 하루 기도하면서 보내시길 바랍니다.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주무시기 직전 성호경이라도 그어보세요.



행복은 그것을 느낄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한상경, '아침 고요 산책길'중에서)



인생은 정원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왜 멀리 바라보는 곳은 항상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 일까?
사람들은 왜 가까이 있는 것들에 대해 흥미를 같지 못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주 내가 가진 것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데 실패하는 것일까?

아침고요 수목원에는 여러개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의 내부에 서 있을 때는 자신이 서 있는 정원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형태와 내용이 이루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기가 힘들다.

그러나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정원을 바라다볼때
정원의 형태와 아름다움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도 이런 정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곳에만 머물경우,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곳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만한 기준과 시선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때때로 삶이 갑갑하고 짜증난다고 생각될 때
잠시 자신이 서 있던 자리를 떠나 먼 곳으로 가볼 필요가 있다.

행복은 그것을 느낄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자신이 머물고 있는 자리의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있는 만물의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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