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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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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창세기 탈출기 2,1-15ㄴ
그 무렵 1 레위 집안의 어떤 남자가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3 그러나 더 숨겨 둘 수가 없게 되자, 왕골 상자를 가져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4 그리고 아기의 누이가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5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시녀들은 강가를 거닐고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여종 하나를 보내어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6 그것을 열어 보니 아기가 울고 있었다.
공주는 그 아기를 불쌍히 여기며, “이 아기는 히브리인들의 아이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7 그러자 아기의 누이가 나서서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제가 가서, 공주님 대신 아기에게 젖을 먹일 히브리인 유모를 하나 불러다 드릴까요?” 8 파라오의 딸이 “그래, 가거라.” 하자, 그 처녀가 가서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왔다.
9 파라오의 딸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 아기를 데려다 나 대신 젖을 먹여 주게. 내가 직접 그대에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10 아이가 자라자 그 여인은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공주는 그 아이를 아들로 삼고,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11 모세가 자란 뒤 어느 날,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그는 이집트 사람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12 이리저리 살펴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 이집트인을 때려죽이고서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
13 그가 이튿날 다시 나가서 보니,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못한 사람에게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그자는 “누가 당신을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당신은 이집트인을 죽였듯이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두려워하였다.
15 파라오는 그 일을 전해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모세는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였다.”
복음 마태오 11,20-24
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22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23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24 그러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지난주에 우리 성당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하나의 약속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시험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내가 영화 보여줄게.”
그래서 시험 끝나는 날에 성당을 나오면 함께 극장에 가자고 했지요. 그런데 영화 보러 가는 날, 가정 방문으로 인해서 제가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길 수도 없어서, 지금 부제실습을 하러 온 부제님께 아이들을 데리고서 극장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부제님께서는 요즘 어떤 영화가 유행인데, 그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말했지요.
“우리 성당 아이들, 시험 공부한다고 성당 미사도 나오지 않았어. 그런데 무슨 영화를 봤겠니? 네가 보고 싶은 영화 보러 가. 아무도 본 사람 없을 거야.”
저녁에 부제님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봤냐고요. 부제님께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 영화를 이미 봤다고 해서 다른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에 조금 속이 상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학생들이 자기 놀 것은 다 놀면서도 시험 때문에 성당 나오지 못한다고 아주 떳떳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에 대한 배신감까지도 드네요. 마치 자신들이 커다란 감투라도 쓴 듯이, 무슨 일을 할 때마다 ‘공부’ 때문에 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얄미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득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각종 핑계를 대면서 하지 않는 모습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들, 그러면서도 나는 올바르다고 착각하는 모습들…….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주님께서는 과연 좋아하실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아주 격한 어조로 사람들에게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시지요. 사실 그곳은 갈릴래아 호숫가 근처의 도시로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셨던 곳이었고, 예수님 제자들의 고향이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감동적인 말씀으로 힘 있게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놀라운 기적으로 사람들의 변화를 유도하셨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크게 변화되지 않았지요. 오히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 그 자체에만 관심을 두고 있고, 그 기적 안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뜻은 외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핑계만 대고 있을 뿐이었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화를 내시면서 말씀하셨던 것이지요.
우리도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삶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소홀히 하고, 진실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의 꾸중을 지금 이 순간 듣게 될 것입니다. 꾸중을 듣기 전에 보다 더 주님의 뜻을 깨달아 열심히 생활하는 우리 신앙인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핑계는 이제 그만입니다.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는 핑계를 대지 맙시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손길(홍성중 엮음,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중에서)
어린 시절에 동생을 병으로 잃은 한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는 그때부터 비로소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눈길을 가진 분이 되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어머니께 달려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스스로 의심을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헛된 유혹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유혹에 빠진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힘은 커다란 아픔을 겪지 않고서는 얻어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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