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7.14) -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2007. 7. 14. 오후 4: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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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4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제1독서 창세기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26 그리고 요셉은 죽었다.


복음 마태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내년이면 우리 본당이 설립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꽤 오래된 성당이지요? 그런데 오래된 성당이다 보니 연세 드신 분들도 많고, 따라서 환자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 있는 환자 봉성체는 보통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사실 적은 시간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시간을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함께 다니고 난 뒤에는 모두 피곤함으로 힘들어하지요. 또한 봉성체 대상자인 환자와 그 환자가 있는 구역과 반원들도 언제 올지 모르는 저를 기다리느라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신부가 저 혼자밖에 없으니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려도 기다릴 수밖에요.

그런데 어제는 봉성체 하는 시간이 1시간 30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봉성체를 신청하신 환자가 줄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2명 더 늘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성의 없이 속성으로 했을까요? 아닙니다. 전과 똑같이 아니 전보다도 더 천천히 정성을 다해서 봉성체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왜 줄었을까요?

바로 우리 본당에 사목실습을 나온 부제님과 함께 봉성체를 했기 때문입니다. 한 명이 하는 봉성체를 두 명이 나눠서 하다 보니 천천히 해도 시간이 절약이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지요.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우선 봉성체를 함께 다니는 수녀님과 봉사자들이 빨리 끝나니 좋아하지요. 그리고 봉성체 대상자인 환자와 그 환자의 구역반원들도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서 좋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가 빨리 끝나서 너무나도 좋습니다. 단지 부제님 한 분이 우리 성당에 오셨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편함과 혜택을 줄 수 있네요.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해 봅니다. ‘나’라는 인물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정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편함과 혜택을 주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는 사람일까요?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당신의 사랑을 전하는 일꾼들이 많아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복음 선포의 사명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걱정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이 모습이 과연 하느님의 창조 목적과 맞아 떨어질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거꾸로 영혼을 죽이고 심판할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모습은 과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라는 그래서 이 세상에 주님의 기쁜 소식이 선포되는데 큰 힘이 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며, 하느님을 두려워하면서 열심히 생활하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아이(홍성중 엮음,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중에서)



한 아이가 운동 도중 넘어져 오른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람들이 구급차를 부르러 달려가는 동안 소년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했다.

"연필 좀 빌려줄래?"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다.

"연필은 왜?"

"오른팔이 부러졌으니 왼팔을 사용해야 하잖아. 지금부터라도 왼손으로 글씨 쓰는 법을 연습하려고."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보통 몇 차례의 커다란 위기와 부닥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탄만 하고 주저앉아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절망과 같은 높은 벽 앞에서도 위험을 벗어나는 비상구를 찾아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절망적인 상황도 기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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