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에페소 2,19-22
형제 여러분 19 여러분은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요한 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언젠가 어떤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납니다. 어떤 의사 선생님의 체험을 적은 책이었는데, 아마 소제목이 ‘새옹지우(塞翁之牛)’였던 것 같네요.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밤 병원 응급실에 어떤 할아버지가 소에 받쳐서 실려 왔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고통에 힘들어 하시면서도 계속해서 ‘이 놈의 소, 내가 낫기만 해봐라 당장 잡아 묵을기다.’ 말씀하시더랍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면서 길렀던 소한테 받친 것이 억울하셨던 것이지요.
아무튼 엑스레이를 찍으면서 각종 검사를 하는데, 갈비뼈가 부러진 것 외에 새로운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위암. 이 위암이란 것은 말기가 되어서야 자각 증세가 있다고 하네요. 따라서 초기에 병원을 찾아와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요. 그런데 이 할아버지께서는 소에 받쳐서 검사를 하던 중에 초기 단계의 위암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래서 쉽게 치료할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께 이 의사 선생님께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그 소 아직도 잡아 드실꺼에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데요.
“잡아먹긴. 나를 살렸는데... 내 자식 삼았어요.”
자신을 들이 박은 소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이로 인해서 더 큰 병을 찾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목이 새옹지마(塞翁之馬)가 아닌 ‘새옹지우(塞翁之牛)’였던 것이지요.
우리의 삶 안에서 이러한 경우는 상당히 많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나쁜 상황만을 바라보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는 내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삐딱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치 오늘 복음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처럼 말이지요.
토마스 사도는 동료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예수 부활의 소식은 분명 기쁜 소식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마스 사도는 이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주님의 일은 완결이란 없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지만, 부활이라는 또 다른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위한 구세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후에 토마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행복은 바로 믿음으로써 내가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불행도 내 자신이 만들어 냅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보세요.
작은 것에 숨겨진 거대한 힘('좋은 생각' 중에서)
물결이 거센 강 사이에 놓은 현수교(출렁다리)는 다리 자체와 그 위를 지나는 교통량의 무게를 주케이블에 매달아 분산시키고 이 케이블을 다시 교탑이 지지하도록 설계된 다리다. 이는 인류가 아치보다도 먼저 사용한 구조물로 산악지역에서 덩굴을 나무에 매달아 계곡을 건너는 수단으로 사용했던 것이 그 기원. 우리나라의 영종대교, 광안대교와 미국의 금문교 등이 대표적인 현수교로 설계부터 시공까지 매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쳤다.
지금은 다리를 건설할 때 첨단 기계와 로봇들이 이용되지만 과거에는 이런 현수교를 만들 때 건축자들은 맨 처음 두 낭떠러지 사이에 커다란 연을 날렸다. 일단 연이 강 다른 편에 무사히 도착하면 줄이 연결된 셈이다. 그러고 나면 이 줄에 조금 더 무거운 줄을 묶어서 강을 가로지르게 했다. 이러한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 한 줄 한 줄 케이블을 늘려 가면 강철 케이블이 강을 가로지르게 되고 나중에는 거대한 다리가 완성된다. 어느 누구도 완성된 거대한 다리를 보고 연의 한가닥 줄을 연결해 짓기 시작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목표를 이루어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루하루 반복되면 나중에는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 되고, 위대한 일을 만들어 낸다. 현재는 가느다란 실 한 가닥처럼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미미한 시작 단계에 서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에 우리 스스로 시련과 믿음을 하나하나 보태고 엮어 나간다면 결과는 달라질 것이다. 실 한가닥도 우리의 의지에 따라 수만 톤의 무게를 버텨 내는 강철 케이블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 당신의 손 안에 있는 가느다란 실을 이용해 푸른 강을 건너 목표에 다다르게 하는 나만의 위대한 다리를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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