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6.24) -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2007. 6. 24. 오전 7:41:05

글자
2007년 6월 24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제1독서 이사야 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 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제2독서 사도행전 13,22-26

그 무렵 바오로가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22 조상들에게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이사이의 아들 다윗을 찾아냈으니,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나의 뜻을 모두 실천할 것이다.’ 하고 증언해 주셨습니다.
23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원자로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24 이분께서 오시기 전에 요한이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회개의 세례를 미리 선포하였습니다.
25 요한은 사명을 다 마칠 무렵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6 형제 여러분, 아브라함의 후손 여러분, 그리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복음 루카 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어제 저녁 학생 미사 때 강론을 시작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제가 강론을 두 가지 준비했는데 어떠한 것을 할까요? 첫째는 길지만 재미있는 강론이고, 둘째는 재미는 없지만 짧은 강론입니다. 자~~ 어떤 강론을 할까요?”

과연 학생들은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두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셨겠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미사를 그렇게 재미있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두 번째 비록 재미는 없지만 짧은 강론을 선택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한 질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의 반응은 전혀 없음이었습니다. 그냥 고개만 숙이고서 ‘떠들어라. 나는 관심 없다.’라는 식이었지요. 저는 그 썰렁한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얼른 다른 이야기로 화재를 바꾸고 말았습니다.

저에게는 뜻밖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관심 없는 그 모습이 문제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근본적인 문제는 저에게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학생들을 좀 더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라고 결과를 미리 예측하고 그 결과에 학생들을 맞추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모습을 간직했던 적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내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인양 어떤 결론을 미리 내리고 그 결론에 다른 것들을 맞추려고 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 과정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했으며, 그들의 아픔과 상처는 어쩔 수 없는 과정 속의 하나일 뿐이라고 치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바로 주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세상에 드러내는 이기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을 맞이하여 복음은 주님의 뜻에 따르는 그의 부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르야는 ‘세례자 요한을 낳게 되리라’는 말을 믿지 않아서 귀가 멀고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기의 이름을 결정짓는 명명식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하지요. 그리고 엘리사벳은 여자의 권위가 그렇게 높지 않던 그 사회에서 하느님의 뜻이라는 이유로 힘 있게 앞으로 나와 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의 모습이 세례자 요한에게도 전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따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종종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뜻을 더 따르고 싶어 합니다. 더욱이 하느님의 뜻보다는 내 뜻이 더욱 더 좋아 보이고 관심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 뜻을 따를수록 주님과는 멀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름으로 인해서, 다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던 즈카르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을 철저히 따르려 할 때, 우리의 입도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뜻만 옳다고 박박 우기지 맙시다.



삶의 가장 큰 목표가 무엇인가(샌더 플롬 외, '100마일의 산책' 중에서)

이제 마흔 세 살이 된 제프 리치는 뉴욕 주식시장의 상장업체인 ACS의 CEO다. ACS는 GE와 같은 대기업을 비롯해 각종 정부 기관들에게 비즈니스 아웃소싱을 제공하는 업체다. 리치는 스물아홉 살 때부터 그 회사에서 실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리치는 0달러이던 회사의 수익을 14년 만에 40억 달러로 늘려 놓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는 방법과 끈기가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을 '철학' 시간에 배웠다고 했다.

리치가 미시간 대학 1학년이었을 때였다. 철학과 교수가 수업 첫날 교실에 들어오더니 교탁 위에 커다란 컵과 가방을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돌 몇 개를 꺼내 큰 컵에 넣었다. 주먹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돌이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그 컵이 가득 찼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교수는 책상 밑에서 다른 가방을 꺼내 이번에는 자갈을 채워 넣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다시 컵이 가득 찼는지 물었다. 일부 학생들은 꽉 차 보인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점점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였다. 교수는 다시 책상 밑에서 또 다른 가방을 꺼냈다. 이번에는 작은 삽으로 모래를 떠 컵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사 컵이 가득 찼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주전자를 집어 들더니 컵에 물을 부었다. 모래 사이사이로 물이 스며들었다.

"좋아요. 이제 정말로 컴이 가득 찼네요. 그럼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말할 수 있는 사람?"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학생이 손을 들었다. 전 과목에서 A를 받은 학생이다. 머리가 너무 좋아 어떤 질문에도 깊이 생각할 것 없이 즉각 대답이 뛰어나오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아무리 바빠도 일정을 현명하게 조정하면 보다 많은 것을 이루어 낼 시간을 항상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다. 교수는 그의 답에 큰 소리로 아니라고 말했다. 교실이 조용해졌다.

"내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커다란 돌을 먼저 넣지 않으면, 다 넣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수의 말에 리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요즘도 그는 직원들에게 항상 그 이야기를 한다. "커다란 돌을 먼저 넣어라."

"무엇이 커다란 돌인지 파악하고 거기에 주력한다면, 여러분에게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결국 끈기란 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엇인가를 매우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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