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6.18) -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2007. 6. 18. 오전 8: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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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8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제1독서 코린토 2서 6,1-10

형제 여러분,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알래스카 에스키모인 들에게 냉장고를 팔수가 있을까요? 사실 에스키모인 들은 아무데나 구덩이를 파면 그곳이 바로 천연 냉장고가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굳이 냉장고를 살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도 이 냉장고를 에스키모인 들에게 판 사람이 있다고 하네요. 대단하죠? 물론 냉장고로 팔지는 않았고, 대신 음식을 보관하는 아주 편리한 찬장으로 선전을 하면서 냉장고를 팔았다고 합니다.

또 대단한 세일즈맨이 있는데요. 그는 글쎄 사하라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을 치우는 제설차를 수출했다고 합니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눈을 구경이나 해봤을까요? 이러한 그들에게 과연 제설차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지만 이 세일즈맨은 제설차를 모래 치우는 좋은 차로 선전을 해서 수출했다고 합니다. 즉, 바람에 의해서 쌓인 모래들을 이 제설차로 치우고 있다는 것이지요.

알래스카 에스키모인 들에게 냉장고를 판다는 것,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을 치우는 제설차를 판다는 말을 들으면 곧바로 부정적인 말이 튀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해.”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꼭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용도를 조금만 바꾸면, 그것 역시 그 장소에서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면서 세상에서 불가능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 중에서 불가능한 것이 과연 있을까요? 그런데 우리들은 단정을 짓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전혀 할 수 없다고... 그렇기에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조차 방해하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말씀을 하십니다.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이렇게 살았다가는 바보,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힐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현실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러한 노력조차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서 불가능하다면서 단정 짓는 모습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면 할 수도 있는 것을, 자신의 완고한 마음으로 부정적인 시각으로 실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에 안 되는 일이 있을까요? 특히 당신께서 그토록 원하셨던 사랑의 완성인데, 그 사랑의 완성이 이 세상에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까요? 아닙니다. 우리들 안에 있는 부정적인 마음들을 하나씩 지우고, 대신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마음을 하나씩 채우는 순간 사랑의 하느님 나라도 완성될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버리세요.



환경을 탓하지 말자('행복한 동행' 중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의 연구실은 매우 열악하고 협소했다. 창문의 유리창은 깨져서 바람과 먼지가 들어왔다. 그는 이 연구실에서 곰팡이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어느 날 그는 깨진 창문을 통해 날아온 곰팡이 포자를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 곰팡이에 페니실린의 원료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 곰팡이 균을 가지고 페니실린을 만들었다.

몇 년 뒤 한 친구가 플레밍의 연구실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형편없는 연구실에서 페니실린을 만들어 내다니, 만약 자네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졌더라면 더 엄청난 발견들을 했을 텐데..."

그러자 플레밍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 열악한 연구실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해 주었다네. 창문 틈으로 날아온 먼지가 바로 페니실린의 재료가 되었지.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라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이루지 못했거나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또는 상황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밖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들도 판이하게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똑같이 최악의 상황에 처해도 어떤 이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어떤 이는 '난 왜 이렇게 복도 지지리 없을까?' 푸념하며 세월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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