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열며(07.06.17) - 연중 제11주일 다해

2007. 6. 17. 오전 7:43:39

글자
2007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다해

제1독서 사무엘기 하권 12,7ㄱㄷ-10.13

그 무렵 7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세우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해 주었다. 8 나는 너에게 네 주군의 집안을, 또 네 품에 주군의 아내들을 안겨 주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집안을 주었다. 그래도 적다면 이것저것 너에게 더 보태 주었을 것이다.
9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주님이 보기에 악한 짓을 저질렀느냐? 너는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칼로 쳐 죽이고 그의 아내를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자손들의 칼로 죽였다. 10 그러므로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2독서 갈라티아서 2,16.19-21

형제 여러분, 16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 나는 하느님을 위하여 살려고, 율법과 관련해서는 이미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2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복음 루카 7,36--8,3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8,1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오늘은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습니다. 미사 6대에 견진교리 4시간. 정말로 장난 아닙니다. 사실 어제도 쉬운 날은 아니었지요.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5대의 미사를 해야 하는 관계로 무척이나 힘든 하루를 보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더 바쁜 오늘을 대비해서 어제 저녁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시간 정도 잠들었을까요? 저는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몸이 무척 가려웠거든요. 더군다나 갑자기 귓가에 들리는 ‘윙~~’이라는 소리는 도저히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맞습니다. 모기가 제 침실에 들어와서 저를 물었던 것이지요. 불을 켜고 모기를 잡을 것인지 말지를 궁리했습니다. 문득 불을 켜고 모기를 잡자니,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지금 달콤한 잠에 빠져서 눈도 잘 떠지지 않는 상태에서 일어나기가 정말로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 다시 잠에서 깼습니다. 더워서 잘 수가 없더군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켜고 모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2마리 잡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눈앞으로 한 마리가 휙 지나갑니다. 얼른 잡으려고 했지만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못 잡으면 또 물릴 텐데…….’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딱 한 마리 남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없으니……. 한 마리 정도야 괜찮겠지. 또 모기도 먹고 살아야지.’

이러한 생각을 하고서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불을 끔과 동시에 들리는 ‘윙~~’ 소리를 이겨내기란 제 신경이 너무나 예민하더군요.

모기를 완전히 다 잡은 뒤에야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습니다. ‘한 마리 정도야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모기가 없어야 편안하게 푹 잘 수가 있네요. 그런데 이 모습이 어쩌면 우리들과 죄의 관계와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쯤이야’ 하면서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남들도 하는데 뭐…….’라면서 쉽게 범하는 죄. 바로 그러한 안일한 마음이 주님과 나의 관계를 더욱 더 멀게 만들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과 더욱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아니 일치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그러한 더러운 죄의 덩어리들이 완전히 사라져야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진정한 뉘우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죄 많은 여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이 여인은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뉘우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를 표시합니다. 눈물로 예수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을 발을 닦은 뒤, 발에 입을 맞추고 값비싼 향유를 모두 붓습니다.

바로 이러한 진정한 뉘우침이 비록 전에는 죄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은 그렇지 못했지요. 그는 오히려 이러한 죄인과 함께 하는 예수님을 똑같은 죄인으로 취급하는 또 다른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나는 얼마나 주님 앞에 진정으로 뉘우치고 있었을까요? 혹시 바리사이처럼 다른 사람의 죄만 잘 보고, 내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보지 못하는 이기적인 뉘우침만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성체 앞에 앉아서 진심으로 뉘우치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봅시다.



작은 일에 집중하라('행복한 동행' 중에서)

1970년대 중국 공산당 총리를 지낸 저우언라이는 항상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큰일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비서와 수행원들에게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세세한 부분까지 최대한 신경을 써서 상대에게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래서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아마도’, ‘대충’, ‘그럴 것 같다.’ 등이었다.

베이징 호텔에서 각국의 외빈을 초청한 만찬이 열릴 때였다. 그는 손수 연회장을 돌아보며 준비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하나 둘 준비되는 것을 본 저우언라이가 수행원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 딤섬에 어떤 소가 들어가는가?”

“아마 해산물이 들어갈 것 같습니다.”

수행원의 불확실한 대답에 저우언라이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마 들어갈 것 같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들어간다는 말인가, 아니라는 말인가? 만약 외빈 중에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어 문제라도 생기면 누가 책임을 질 건가? 당장 가서 제대로 알아오게.”

수행원은 저우언라이의 호통에 얼굴이 빨개졌다.

만찬에 참석할 개개인의 성향까지 충분히 고려하는 그의 세심한 덕분에 저우언라이는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중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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