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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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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창세기 44,18-21.23ㄴ-29; 45,1-5
그 무렵 18 유다가 요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 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나리께서는 파라오와 같으신 분이시니, 이 종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19 나리께서 이 종들에게 ‘아버지나 아우가 있느냐?’ 물으시기에, 20 저희가 나리께 대답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 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아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 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21 그러자 나리께서는 ‘그 아이를 나에게 데리고 내려오너라. 내 눈으로 그를 보아야겠다.’ 하고 이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3 ‘너희 막내아우가 함께 내려오지 않으면, 너희는 다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24 그래서 저희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올라갔을 때, 나리의 말씀을 아버지에게 전하였습니다.
25 그 뒤에 저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 오너라.’ 하였지만, 26 저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막내아우가 함께 가야 저희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막내아우가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 저희는 그 어른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27 그랬더니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28 그런데 한 아이는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애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29 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45,1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2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3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4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5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얼마 전,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자매님께서 제 앞으로 뛰어 오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혹시 빠다킹 신부님 아니세요?”
“맞습니다. 제가 빠다킹 신부에요.”
그러자 가방에서 책을 꺼내시더니만, “제가 신부님 팬이에요. 이 책에 Sign 좀 해주세요.”라고 하시네요. 즉, 제가 쓴 책을 어디선가 구입하셨고, 그 책에 Sign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조금 쑥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거리에서 Sign을 하니 지나가는 사람들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사실 당시 저는 일반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겉모습을 볼 때에는 신부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저를 알아보는 그 분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 짓지 말아야겠다.”
왜냐하면 저는 상대방을 몰라도, 상대방은 저를 아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면서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한 공인들은 무척이나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긴 그들은 연예도 제대로 할 수 없더군요. 누구와 조금만 가까워도 “누구 누구 뜨거운 열애 중” 식의 글이 다음 날 아침 신문 지상에 뜨게 되니까요.
요즘 많은 청소년들이 그러한 공인의 길을 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과연 행복할까요? 다른 사람과는 달리 특별하다 함은 유명해질 수도 있고 근사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당사자들은 평범함만큼 위대한 행복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공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이 동시에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시지요. 바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선택을 받게 됨으로 인해서 공인이 된 것이지요. 따라서 그 만큼의 책임이 주어지며, 자신이 받은 모든 것들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써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묵상하면서, 우리 역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받은 능력과 재주를 세상에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세상에 복음을 선포할 사명이 없다고 그러한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요?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에 또 한 명의 공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증거하고 선포하기 위해서 보다 더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재주와 능력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신앙인이라는 공인으로서의 생활을 똑바로 하고 있을까요? 반성해봐야겠지요?
신앙인이라는 공인임을 잊지 맙시다.
네 명의 왕자가 본 나무(홍성중 엮음, '행복을 나르는 배달부'중에서)
페르시아에 아들 네 명을 둔 왕이 있었다. 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마다 아들 한 명씩을 보내어 어떤 곳에 심어져 있는 과일나무를 보고 오게 했다.
일년이 지난 후 왕은 네 아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자기가 본 나무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게 했다.
겨울에 과일아무를 보고 온 아들은 나무가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했고, 봄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잎이 푸르고 싱그러운 모습이었다고 했으며, 여름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꽃이 아름다웠다고 말했고, 가을에 과일나무를 보고 온 아들은 열매가 탐스러웠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본 모습이 맞는다며 우겨댔다.
이에 왕이 말했다.
"너희 모두의 말이 옳다. 나무는 계절마다 모습을 달리하는니라. 꽃이 아름다운 것도, 잎이 무성한 것도, 열매가 탐스러운 것도, 가지만 앙상한 것도 모두 나무의 모습이지. 글러므로 너희들은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가장 중대한 법칙 가운데 하나는 '무슨 일에든 남들은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대인관계의 실패를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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