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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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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콜로새 3,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3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4 여러분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여러분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을 죽이십시오.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6 이것들 때문에 하느님의 진노가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립니다. 7 여러분도 전에 이러한 것들에 빠져 지낼 때에는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8 그러나 이제는 분노, 격분, 악의, 중상, 또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수치스러운 말 따위는 모두 버리십시오. 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10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11 여기에는 그리스인도 유다인도, 할례 받은 이도 할례 받지 않은 이도, 야만인도, 스키티아인도, 종도, 자유인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며 모든 것 안에 계십니다.
복음 루카 6,20-26
그때에 20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21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25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저는 요즘 소설책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책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보고’라는 생각으로 계속 책을 읽게 됩니다. 아무튼 이렇게 소설책을 읽다보면 제가 마치 주인공인 듯 한 느낌을 받으면서 푹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니 텔레비전에 푹 빠져 있을 때도 있네요. 특히 제가 좋아하는 운동 경기가 중계될 때면, 제가 직접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화면에 푹 빠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푹 빠져 있을 때에는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고통, 시련, 걱정도 느끼지 못합니다. 단지 여기에 집중하고 있기에 행복하고, 웃음을 간직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운동 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이런 저를 본다면? 또 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 푹 빠져 있는 저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도 “미쳤어.”를 외칠걸요? 시간 아깝게 저런 행동을 한다고 말이지요.
예수님의 삶을 기억해 봅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전혀 행복해 보이는 삶이 아닙니다. 부유한 것도 아니고, 세상의 명예를 간직하고 계셨던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랐던 3년이라는 공생활 기간 동안에는 그런대로 인정받은 것 같기도 하지만, 이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께 ‘미쳤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으며 또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도 사사건건 예수님을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는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때요? 행복해 보이십니까?
그렇다면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해서 우리나라의 순교자들을 기억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세속의 눈으로 볼 때 정말로 어렵고 힘든 삶을 사셨지요. 그런데 그들 스스로 자기들을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스스로는 누구보다도 기쁘고 행복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어떻게 죽음의 고통 속에서도 행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라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앞서 제가 운동경기와 소설책에 푹 빠져 있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들은 예수님께 푹 빠져 그 안에서 누구보다도 큰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행복과 불행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지금 우는 사람……. 그들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그들은 오히려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거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 거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관점에서는 우리들이 거꾸로 사는 것처럼 보이시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우리들의 기준은 잠깐 머물렀다 가는 세속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잠깐의 순간에 불과한 세속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의 기준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참 행복을 위해서…….
하느님 나라의 법칙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주느냐?’라고 합니다. 이 하느님 나라의 법칙을 따르는 오늘을 만듭시다.
기회의 문을 연 편지('행복한 동행' 중에서)
19세의 폴 마이어는 보험 세일즈맨이 되고자 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50개의 회사에서 면접을 본 뒤에야 겨우 취직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으나 그마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3주 만에 해고되었다. 하지만 그는 풀이 죽기는 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미국 최고의 세일즈맨을 놓쳤습니다. 나는 반드시 미국 제일의 판매 기록을 만들 것이고 당신들은 그것을 신문에서 읽게 될 것이오."
폴 마이어는 최고의 세일즈맨이 되겠다고 매일 아침 다짐했다. 그에 따른 모든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에 옮긴 끝에 그는 27세의 젊은 나이에 백만 달러의 판매 기록을 올린 세일즈맨으로 성공한다.
하루는 폴 마이어가 세일즈를 위해 대기업의 최고 경영자를 만나러 다닐 때였다. 매번 시간이 없다며 비서실에서부터 문전 박대를 하니 그도 차츰 지쳐 갔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오른 그는 고급스런 포장지에 싼 자그마한 상자를 비서에게 건네며 회장님께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상자를 풀어 본 회장은 폴 마이어의 재치와 끈기에 감탄했고 그 일을 계기로 평생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상자 안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가 있었다.
"저는 하느님도 매일 만나고 사는 사람인데 어찌하여 회장님을 만나기는 이다지도 힘들단 말입니까? 훌륭한 세일즈맨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젊은이를 위해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무한한 영광이겠습니다. 제게 기회의 문을 조금만 열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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