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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0일 연중 제2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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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티모테오 1서 4,12-16
사랑하는 그대여, 12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니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
13 내가 갈 때까지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 14 그대가 지닌 은사, 곧 원로단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그대가 받은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15 이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이 일에 전념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
16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이 일을 지속해 나아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복음 루카 7,36-50
그때에 36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43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45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 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하였다.
5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오늘의 독서와 복음 듣기
아흔아홉 번의 친절과 한 번의 상처가 있다면 어떤 것이 더 크게 보일까요? 아흔아홉 번의 친절이 더 크게 보일 것 같지만, 사실은 단 한 번의 상처가 훨씬 더 크게 보입니다. 그 한 번의 상처로 인해서 지금까지 행했던 모든 친절이 가려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 지요? “내가 저 사람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종종 봅니다.
그리고는 제게 그 이유를 세세하게 설명합니다. 이렇게 듣다보면 이 분이 화를 내는 이유에 공감이 갑니다. 하지만 계속 들으면서는 이런 의문의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이분이 잘한 것은 하나도 없고 상처만 주었을까? 이 분은 이제까지 단 한 번의 친절함을 행하지 않았을까?”
며칠 전, 서울 신학교 동기 모임에 갔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교구가 다르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아무튼 오랜만에 만나서 옛날의 추억도 떠올리고, 지금 동기들의 근황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석하지 않은 어떤 동기 신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니, 계속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만 나누게 됩니다. 저 역시 그 신부의 긍정적인 모습은 전혀 생각나지 않고 오로지 부정적인 모습만 생각되더군요. 바로 그 순간, 한 신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난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전에 내가 본당의 어려운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곧바로 도와주더라고.”
그 순간 저 역시 신학생 때 그 친구에게 도움 받은 기억이 떠올려졌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부정적인 모습만 기억되었는데, 사실은 긍정적인 모습이 더 많았던 것이지요. 맞습니다. 상처를 비롯한 부정적인 모습은 항상 커보였습니다. 이에 비해 친절과 같은 긍정적인 모습은 항상 작아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달리 부정적인 모습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에 항상 의미를 두시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 점을 찾을 수가 있지요.
어떤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 대해서 누구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눈물로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은 뒤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이에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적 능력까지 의심하여 말하지요.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줄 알 터인데…….”
이렇게 모든 이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긍정적인 모습을 골라내십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모습,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려는 마음들……. 그리고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면, 우리 역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모습들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 나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어 이러한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봅시다.
유토피아를 경영하는 사람('행복한 동행' 중에서)
개인 소유의 자동차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이면지뿐 아니라 이쑤시개까지 재활용한다는 일본의 한 CEO가 있다. 최근 그의 이야기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며 주목을 끌고 있는데 그의 철저한 검약 정신 때문이 아니라 돋보이는 경영 철학 때문이다.
연극 포스터 붙이는 일로 하루 업무를 시작하는 야마다 사장의 최고 관심사는 연극 후원과 사람 중심의 업무 환경 조성.
미라이 공업은 일본 전역에 서른 개의 공장과 영업소를 두고 있는데 야마다 사장은 고작 다섯 곳만을 가보았을 뿐이다. 승진 원칙도 황당하다. 선풍기 바람에 날려간 명단의 당사자가 승진의 기회를 얻는다. 경영자의 지나친 관심과 간섭, 관료주의적 제도에 갇힌 인재 등용 등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성과주의나 효율성, 경쟁 원리 등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믿고 사람을 추구한다.
"인간은 물건이 아니다. 원가절감은 옳지만 급료를 낮추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인간은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고 쉬는 날이 많다고 망하는 회사는 없다."
전 사원의 해외여행 경비 지원, 3년간 출산휴가, 70세 정년 보장, 잔업과 휴일 근무 전무, 비정규직 전무, 대기업 수준의 연봉, 이러고도 연간 매출은 2,500억원에 달하며, 1만8,000종의 아이디어 상품 가운데 90%가 특허를 받았다. 미라이 공업은 사람을 먼저 남길 때 이윤도 함께 남긴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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