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를 타고 가시는 예수

2005. 2. 14. 오후 4:30:45

글자


1997 인천 강화
십자가는 형틀이다. 형틀에 못박혀 죽어간 서른세살의 예수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사진작가 허용무는 고집스럽게 자기스타일의 다큐멘터리를 고집하는데
여기 보이는 '상여를 타고 가는 예수'는 그가 생각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특정한 주제를 쌓아 가는 다큐사진과도, 사진가의 설명이 있어야만 알아볼 수 있는
'개념 사진' 혹은 '뉴 다큐'와도 자신의 사진을 구분한다.
굳이 말한다면, 사물과 현상을 사진가의 주관에의해 해석하면서도
보는이들과 대화를 포기하지 않은 다큐라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그의 사진은 열려있다. 여러가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을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 보인 사진들은 그의 전시회와 함께 발행된 엽서모음의 사진들을
그가 정한 순서대로 옮겨 놓았다. 일부이지만 이것만으로도
그가 사진을 보이는 순서에서 전체와 세부, 기다림과 절정, 서론과 마무리를 늘어 놓는데
얼마나 신경 썼는지 볼 수 있다. 그가 보는이와의 대화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일 것이다.
그는 함께 발행한 사진집에서 또다른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의 사진과 시인 안찬수씨가 쓴 사진 설명 (설명이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깝다)이
사진과 나란히 있지 않고,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그것이다.
사진과 글을 맞추어 보느라 이리저리 책을 뒤적여야 하는데, 이는,
사진과 사진글로 느낌이 단락지워져 버리지 않고, 보는이가 여운을 갖고
자신만의 느낌을 조금 더 부풀릴 수있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서점에서 아마 살 수 있을 거다. '가각본' 발행이다.
강화도에서 우연히 그가 마주쳤다는 상여위에 얹힌 예수, 그래서 그는
우리 전통속에 스며든 외래문화를 보이려고 이 작업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서 그는, 외래와 전통, 과거와 현재가 모두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 본질의 문제에 닿아 있음을 보았던 것 같다.
그의 사진을 뒤적이고 난 뒤에도 오랫 동안,
그가 이야기 건넨 삶과 죽음의 생각에 사로잡히게된다


1997 인천 부평
낡은 아파트들이 재개발 되듯이 이 무덤들도 언젠가는 재개발되고 말 것이다


1998 서울
죽음의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1998 인천 강화
멈추어 선 선풍기와 천장이 들여다 뵈는 둥근 거울 사이에서
예수는 길잃은 양 한마리를 가슴에 안고 길을 잃지 않은 양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1996 인천 강화
관을 싣고 갈 경운기 앞에 절하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에게(무엇을 향해) 절하고 있는 것일까


1997 전남 보성
종이꽃으로 만든 상여. 꽃 상여의 그 꽃이 종이꽃으로 바뀐 뒤에 한 사람의 죽음이 갖는 향기도 사라지고 만 것이 아닐까


1997 전남 보성
만장은 펄럭인다. 풍물 소리에 깨어난 바람 따라


1997 인천 강화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 믿을진저!

1996 경기 의정부
꽃들이여, 이제 그만 눈물을 닦아라

1998 인천 강화
그렇지만 이 기괴한 정지된 그림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담겨 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이다.


1997 전남 보성
죽음에 대한 구원은 결국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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