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뜻/ 함세웅 신부님

2004. 8. 11. 오전 1:19:16

글자


하느님의 뜻이 제 삶 속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주인의 뜻 (함세웅 신부님)
    오늘을 사는 신앙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급변하는 사회 현상 속의 교회는 육적(肉的) 인간으로서의 우리 모습이 하느님과의 만남에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한계를 지닌 인간의 모습은 하느님을 감당하기 어려워하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친교를 원한다기보다는 단절로 치닫는 느낌이 있습니다. 더욱 더 우리가 우려해야 할 문제는 하느님과의 단절을 단절로 인정하기보다는 합일로 주장함이며 인간 스스로가 하느님을 사람에게 편리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는 사실에서입니다. 하느님의 본질은 변화될 수 없으나 지혜로운 듯하면서도 우매한 인간들은 자신을 사탄과의 야합에 내팽개쳐 버리고 이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떠들어댑니다. 오래 전부터 한국인의 의식구조를 말해온 이들은 한국인의 사고의 불투명성이 언어로부터 왔다고 말하는가 하면 복종과 굴종 내지는 무조건 참으면 된다는 인(忍)의 사상 지배에 의해 군주의 지배 형태를 벗어나면 불안해하는 민족성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어쩌면 민주니 자유, 정의, 평화란 단어는 우리 민족에겐 생소한 단어임이 사실이라고 볼 때 혹자는 한국의 역사는 쟁취한 역사라기보다는 주어진 역사라고까지 혹평하면서 8, 15해방의 의미를 간파한 바 있습니다. 더구나 언어조차도 너무도 짧은 민정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에게 다스리는 자로서의 말들이 범람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봉사자며 국민의 충실한 공복으로서의 언어의 의미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 속에 민족사상의 굴종의식이 싹텃는지는 모르나 이는 육적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점철하고 있는 우리의 삶 속에서 연연되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작가 토마스만은 "우리는 자유의 고귀함을 느낄 때까지 당해야 한다." 그리고 또 "민주주의는 정치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각인(刻印)한 것이며 정치는 국민을 정신적 타락으로부터 막는 도덕성일 뿐이다."라고 하면서 나치에 저항했습니다. 또한 전 세계에 만연된 폭력은 중간 계층, 즉 그 시대를 점검하고 평가하는 책임을 진 종교인, 문학인, 또는 그밖에 지식인들이 태만했기 때문이며 폭력이 행사됨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는 뼈저리게 당해 봐야만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라는 말로써 고통을 통한 기쁨의 삶인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즉 저항의 단절과 미온적 저항은 공동체 의식을 저하시키고 공동체 자체를 침묵시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교회는 교회 자체가 도전받는 시대로 부상되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며 영신적 아버지들의 고통은 교회 자체가 당하는 고난이므로 초기 교회가 공동으로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 대전에 박해를 감수하며, 공동체 전체가 목숨을 내맡긴 순교자들의 참모습을 본받도록 해야겠습니다. 더구나 우리의 무심한 시간과 발걸음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썩은 죽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우리의 허무한 발걸음은 많은 억울한 인간들의 고난을 딛고 선 무서운 발걸음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다양성 속에 일치를 말하면서 각자 나름의 길을 주장하지만 반드시 각자 자신의 포기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쉽게 자기 포기를 안하는 인간 심성은 다양성의 그늘 뒤에 숨은 자기 합리화란 그늘에 있음을 절실히 느껴야만 할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길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이를 외치는 이들은 위장된 이론으로 하느님을 자신에게 편리한 하느님으로 꾸며 놓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각자이나 성체는 하나이듯이 하나로 모인 공동체 속의 우리의 다양성은 교회를 이룹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교회 또는 사회에서 지식인일지 모르나 알아도 모른척하는 관제, 대중집단이어서는 안됩니다. 그분께 용서를 청하고 새 사람이 됩시다. "주인의 뜻을 모른 종은 매맞을 짓을 했어도 덜 맞을 것이나 주인의 뜻을 알고도 주인의 뜻을 행하지 아니하면 많은 매를 면치 못하리라."

    ♥☞주님말씀 사랑실천♥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잃어버린 나를 찾아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