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의 빈 그릇

2007. 7. 12. 오전 5:4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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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빈그릇 성모님
 
 수도자들이 매일 저녁기도 때 마다 바치는 아름다은 찬가가 하나 있는데, "성모의 래"라고 합니다. 하루가 저무는 석양 무렵, 형제들과 함께 이 찬가부를 때 마다 는 지극히 겸손하셨던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입니다. 주님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성모님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이셨습니다. 가브리엘의 예고를 들으신 성모님이 하느님께서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메시아의 어머니로 살아가며 누리게 될 세속적인 영예나 특권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성모님께서는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여러가지 인간적인 아쉬움이나 섭섭함을 느낄 때 마다 성모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님! 저는 비천한 존재입니다. 저는 오직 당신이 빚어만드신 작은 도구일 따름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매일 제 안에 성장하시도록 매일 저를 비웁니다."
 
 성모님이 하느님으로부터 높이 들어올림을 받으신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런 성모님의 겸손하심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주님을 위해 자신을 비우고 춘 삶, 자기중심적이 아닌 예수님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2. 모든 것을 뒤집으시는 하느님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루가 1,44-45)." 루가 복음사가는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가 요한을 잉태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 상봉하는 장면을 아주 힘차고 장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을 때 그들의 상봉은 참으로 희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가진 미혼모 마리아는 불러오는 자신의 배와 따가운 이웃들의 눈총이 너무도 부담스러워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한편 엘리사벳은 또 누구입니까? ’야! 대단하다! 저런 나이에도 아이를 가질 수 있다니!’하고 사람들이 뒤에서 손가락질 할 정도로 나이가 많았던 할머니였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두 여인이 서로 만나 기쁨의 노래를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만남과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의 성령께서 그들의 만남에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심으로 인해 희극적인 만남은 참 기쁨의 만남, 설레임의 만남, 영광의 만남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뒤집는 분이십니다. 
 
 메마름을 생명력으로, 무의미를 의미로, 좌절감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시는 분 그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숱하게 겪게 되는 갖은 이해하지 못할 일들, 억울한 일들, 해결불가능해보이는 일들도 성령!!! 분 안에서 그분의 인도를 받을 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해결되리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살레시오 수도회/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강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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