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루도비꼬는 「마리아를 통한 예수님께 완전한 봉헌(True Devotion to Mary」- 이하 본문에서는 「참된 신심」으로 통일함 - 이란 저서를 통해 아일랜드를 방문한다. 그의 시성을 가장 기쁘게 맞이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이제 하늘나라에서 시성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겸손한 노동자 매트 탈보트도 끼어 있었다. 매트는 영어로 번역된 이 책을 읽은 후, 이 책이 자신을 이 세상에서 하늘로 들어올려 주었다고 한 친구에게 털어 놓았다. 루도비꼬는 몸에 쇠사슬을 감고 다녔다. 사슬 몇 개는 살을 파고 들어 곪기도 했다. 그는 친구 30명을 설득시켜 마리아의 종이 되게 하고, 로사리오를 몸에 지니게 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삼위일체 주일날 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길에 쓰러져 생을 마쳤다. 그가 생을 마친 곳은 더블린의 그랜비 레인이었다. 병원 수녀들이 그의 몸에서 쇠사슬을 찾아낸 후, 그는 아일랜드에서 칭송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철저한 친구였던 요한 멕퀴네스는 매사에 그를 본받았다. 언젠가 그도 성인 반열에 오를 것을 믿는 아일랜드인이 한 둘이 아니다. 루도비꼬에게서 감화받은 또 다른 아일랜드인은 프랭크 더프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윌리엄 페이버 신부가 번역한 이 책을 읽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지루하고 라틴어 구문이 많아 읽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성 빈센트 아 바오로회에 관여하고 있던 그는 친구에게 「참된 신심」에 대해 영성지도 신부에게 소감을 털어놓았다. "다시 읽어보시오.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읽으시오." 결국 더프는 충고를 따랐고 마리아의 군단이라는 수확을 거두어들이게 되었다. 레지오(Legio,군단)는 1921년 9월 7일 성 빈센트 아 바오로회 본부인 마이러 하우스에서 탄생했다. 이 때 교회는 성모탄생 축일 저녁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그래서 더프는, "레지오는 축일의 첫 번째 향기와 함께 태어났습니다.……진실로 우리는 말히아와 함께 태어난 것입니다." 하고 말하고 있다. 더프는 이런 글을 남겼다. '당시 자주 대화에 올랐던 주제 중 하나는「참된신심」이었다.이 책이 담고 있던 이념은 매우 진기한 것이었다. - 사실상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고 - 앞장서서 이 신심을 제창하던 사람들에게까지도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너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특별모임을 만들어 토론하고 이념을 깨닫는 일에 노력했다. 관계자 한 사람은 "본인은 자주 그 특별한 사건을 소화시켜 보려 했습니다.한 달 남짓 되었을 때 마치 전기로 무엇인가를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신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밤을 지샜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깨달았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열의를 가지고 연구했을 뿐입니다. 그 후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즉시 레지오가 탄생된 것입니다." 레지오의 출범 인원은 15명이었지만 오늘날은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확산되었다. 저절로 된 것인지 초자연적으로 된 것인지 모르나, 레지오의 첫 번째 대 기적은 영예롭지 못하기로 이름나고 잔인하고 더럽기로 유명했던 더블린의 홍등가 구역인 벤틀리플레이스가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이 구역은 그리스도국인 이 나라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곳이었다. 아무리 노름꾼이라 하더라도 레지오가 초창기부터 모든 악의 본거지를 쓸어버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곳에 돈을 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노름꾼들은 더프의 자녀(추종자)들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를 가지고 일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루도비꼬는 노름꾼들을 알고 있었다. 묵상을 통해 ……보았던 것이다. 그는 조그만 책자 속에 그들에 관한 것을 기록해 놓았다. '세상 종말이 가까워 질 때 대성인들은 ……마리아께 가장 끈기 있게 간청하며 성덕이 충만하게 될 것이다.……이 대성인들은 레바논의 관목처럼 성덕에 있어 다른 성인을 능가할 것이다. 그들은 어디서나 불같이 뜨거운 하느님의 사랑을 뿌려주는 횃불이 되고 주님의 봉사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또 하느님의 위대한 어머니의 손에 들려져 있는 화살과 같아질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입김에 움직여 …커다란 천둥을 일으키며 공중을 나는 구름이 될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의 비를 쏟아 부어 줄 것이다.… 그들은 천둥을 내려 죄를 꾸짖을 것이며… 마귀와 그 졸개들을 번개로 쳐버릴 것이다. 천사가 두려워 발을 들여놓지 않는 곳에도 바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돌격해 들어간다. 더프씨와 두 여인이 창녀촌을 방문하면서 공격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이 삼총사는 몇몇 창녀를 만나 피정에 참석해 보라고 충고했다. 그들에게 이 충고가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피정이란 그녀들의 삶에 철저한 변화를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물론이고 술과 담배도 집어치우고 결혼을 하거나 일터로 나가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아니면 어느 켸켸묵은 수도원에 들어가 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승산 없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완고한 지혜도 하느님의 바보들에게는 정복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서른 한 명이 피정에 참여해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더프는 발도일의 애덕 수녀원에서 피정을 준비했다. 서른 한 명중 스물 세 명이 약속을 지켰다. 발도일로 가는 버스에 탔을 때 그녀들은 술에 취해 있었으나 더프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엄청난 위기에 강심제를 쓰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위기에 직면한 것은 자신이었다. 피정 후에 이 여자들을 보호할 장소가 없었기에, 여자들을 그 소굴로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더프는 밤을 새워 정부관리를 찾아다니며 집을 한 채 구해달라고 청했다. 다행이 관리들에게는 이런 집이 하나 있었고 마침 비어있었기에 그들은 이 집을 더프에게 주었다. 다른 문제가 또 하나 있었다. 여인들에게 줄 음식과 침대, 담요, 가구, 취사도구 등 모든 것을 빌리거나 사야만 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성심성화(聖心聖畵)를 그 안에 걸어놓고 '산타마리아' 라고 불렀다. 그리고 레지오의 두 여인을 시켜 그곳을 책임맡게 하고 피정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정이 실패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예상외의 성공이었다. 스물 세 명 중 옛 생활로 되돌아간 여인은 하나도 없었다. 두 여인은 프로테스탄트였으나 가톨릭 신앙교육을 받겠다고 자청했다. 얼마 후 이들은 장엄하게 세례를 받고, 오랫동안 수도원에서 생활한 듯, 감격스런 첫 영성체를 했다. 투쟁은 계속되었다. 더프 일행은 창녀촌을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거기 있는 여인들을 구제해 주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이 구역 자체, 1백 여 년 이상 마귀의 지배를 받아 온 매춘거리를 공격해야만 했다. 경찰도 감히 접근하려 하지 않았던 것을 볼 때, 이 구역은 누군가의 비호를 받는 듯 싶었다. 무허가 술집에 법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술값은 비쌌지만 목마른 이들에게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돈을 털리고 얻어맞는 사내들도 있었으나 누구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항의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험상궂은 사내들이 들끓고 있었다. 레지오 단원들은 이 지옥의 한 모퉁이에서 더블린을 구하자는 결정을 내리면서 어떤 위험이 닥쳐올 것인지를 예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려웠지만 머뭇거리지는 않았다. 프랭크 더프는 한 여인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그 이름은 메어리 레인이었으며, 벤틀리 플레이스의 No 9 이었다.더프는 이 여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을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할 일은 메어리 레인을 찾는 일이었다. 1923년 3월 22일 정오, 더프와 레지오 여 단원 한 명이 벤틀리 플레이스로 갔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외웠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넘버 9의 메어리 레인". 이들은 숫자 9가 붙은 집의 문을 두드렸다. 한 여인이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메어리 레인은 의사도, 사제도 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더프는 급히 그녀를 그곳에서 들쳐 업고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운 병원으로 달렸다. 의사들은 메어리 레인이 한 시간도 연명하지 못하리라 생각했으나 실상은 두 달이나 더 살아 있었다. 더프는 그 여인이 '충분하게' 죽음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레지오 단원들의 방문을 받을 때마다 회복되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죽음을 '아주 잘 준비하고 있다' 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결국 그녀는 사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로사리오를 손에 들고 죽음을 맞이했다. 레지오에서는 그녀의 장례식을 치르고 축성받은 땅에 곱게 묻어 주었다. 죄인들과 단원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 후로 더프와 레지오 단원들은 자주 이 구역을 돌아다녔으나 그들의 출입을 막는 자들도 없었고 그들을 위협하는 자들도 없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그럴 위험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었다. 많은 여인들이 산타 마리아에 모여들었다. 무리를 이루거나 혼자서도. 이제 벤틀리 플레이스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40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더프는 추산했다. 그는 술집 주인들을 찾아가 폐업해 줄것을 요구했다. 여러 개 점포를 운영하던 한 여인은 청을 받아들여 문을 닫았다. 다른 두 사람은 문을 닫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 더프는 할 수 없이 경찰의 도움을 청했다. 정직한 경찰서장은 더프의 청을 받아 이 지역을 단속해서 1백여 년의 추잡했던 세월에 종막을 고했다. 더프는 빈 집들을 채울 성실한 거주자를 찾기에 바빴다. 그리고 이웃을 통한 레지오 확산에 심혈을 기울였다. 임시주교좌 성당에서 막 강론을 끝낸 사제 셋이 십자가와 촛불을 든 복사들을 대동하고 앞장섰다. 그 뒤로 레지오 단원들이 줄을 이었다. 여기저기 성수가 뿌려졌다. 1세기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텅텅 빈 창녀촌이 축성되고 그 대문마다 성심성화가 하나씩 걸렸다. 벤틀리 플레이스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높은 성벽위에 더프씨는 거대한 십자가 하나를 꽂아 놓았다. 이제 벤틀리 플레이스는 타파되고 번듯번듯한 건물들이 새로 세워졌다. 착한 목자 수도원도 대규모로 건축되었다. 일이 이쯤 되자 더프는 레지오의 목표 중에서 한 가지 - 죄의 제국이 파멸된 곳에 왕이신 그리스도의 깃발을 꽂는 일 - 가 성취되었다고 말했다. 마리아의 군대는 수년 내에 놀랄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나가 마리아의 이름이 많은 나라에서 칭송되게 하고 또 교회가 새로운 순교자들과 고백자들을 얻게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아직도 이 군대는 진용을 갖추고 그 참모 중의 한 사람으로 루도비꼬를 모시고 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마리아」에서 |
레지오 마리애의 영성
2005. 2. 23. 오전 7: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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