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라는 이름
복음 : 요한 11,45-56
구약 성경의 레위기에 보면 속죄일에 바치는 속죄 제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숫염소 두 마리를 놓고 제비를 뽑아서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바치고 하나는 산 채로 세워 두었다가
속죄 예식이 끝나면 광야에서 떠도는 귀신인 ‘아자젤’에게 보냅니다.
이때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죄와 그들의 허물을 이 숫염소의 머리에 씌우고서
불모지 광야로 내보냅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회의하는 모습에서
마치 예수님을 두고 숫염소에게 죄를 씌워서 광야로 내보내는 구약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카야파’가 한 말입니다.
사람들이 술렁대며 예수님을 믿고 따르자 사회 혼란과 로마의 위협을 들먹이며
예수님을 희생시키려고 합니다.
예수님께 모든 죄를 덧씌워서 희생 제물로 삼아 민족을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현대에도 공동선과 정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수의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단죄하고 희생시켰기에 아무도 책임을 질 사람이 없습니다.
공동체라는 실체가 없는 이름이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이든 교회이든 공동체가 가지는 이런 죄악을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희생시킨 그 죄를 우리도 똑같이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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