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심포지엄

2001. 2. 10. 오후 2: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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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박해 순교 200주년 기념 심포지엄

순교자 삶과 영성 '한국사회의 희망'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배갑진 신부)는 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신유박해와 조선교회'를 주제로 신유박해 순교 20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신유박해 순교자 현양운동의 의의'에 관한 김진소(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장)신부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된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신유박해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신유박해 전후 순교자 연구문제를 짚어보고 순교자들의 시복시성 절차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가운데 신유박해 순교가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자들에게 주는 의미를 되새겼다.

 

특히 김진소 신부는 기조강연에서 "순교자의 삶과 영성은 한국 사회의 희망"이라면서 "21세기 초입에 전개하고 있는 순교자 현양운동은 시대 상황으로 보아 가장 필요한 운동"이라고 밝혔다. 김 신부는 또 "한국교회가 살고 한국사회가 건전해지려면 순교자의 삶과 믿음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체험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주요 발제 내용.

 

▲ 신유박해의 정치적 배경에 관한 연구(변주승 전주대 교수) = 순조 즉위초 경주 김씨와 벽파 세력을 중심으로 한 집권 세력은 겉으로는 정조의 의리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대 서학정책 등에서 정조대의 정책에 역행했다.

 

그리고 집권 세력은 서학수용의 주체적 집단으로 정조대 탕평정책의 한 축을 이루며 자신들과 대립관계에 있었던 남인 세력을 비롯해 정조대의 정치적 기반 세력을 사학(邪學)으로 몰아 철저히 제거했다. 이 정적 제거과정에서 집권 세력은 천주교 탄압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즉 제거대상에 오른 인물과 세력을 모두 서학의 우두머리 또는 배후로 연루시켜 제거했던 것이다. 여기에 신유박해의 정치적 배경 중 하나가 있다.

 

한편 정조년간 천주교는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점차 반체제적인 민중종교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집권세력과 지배층은 천주교도 탄압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민중에 대한 통제를 도모하고자 했다. 여기에 신유박해의 또 다른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

 

▲ 신유박해의 전개과정(정두희 서강대 교수) = 신유박해는 주문모 신부의 자수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천주교도 문제를 정쟁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더 컸던 것 같지만, 주 신부 사건 이후 유항검의 대박청래(大舶請來) 사건이 일어나고 또 얼마 뒤 황사영 백서사건이 노출되면서 이 사건은 조선왕조의 운명과 관련된 더 큰 역모사건으로 확대됐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도 채제공, 이가환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처리한다는 것이 정쟁적으로 유용한 일임을 사건의 담당자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1801년 하반기부터 이 사건은 정쟁의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건으로 확대된 것이다.

 

사실 신유박해가 그 이후의 다른 박해와 그 전개과정이 확연히 다른 것은 그 주동인물 가운데 조정의 고관대작을 지낸 사람을 위시해서 양반 사대부 가문의 뛰어난 인재들이 두루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 신유박해 전후 순교자에 관한 연구(조광 고려대 교수) = 서울대교구 등 각 교구와 관계기관들은 시복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시복 대상자를 선정하기 위해서는 관계자료(교회측 자료와 일반 자료)를 최대한 망라해서 검토, 정확성을 기해야 한다. 또 초기 박해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은 조선교구의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한 인물의 행적을 추적하는 데에는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어 존속되어 왔던 전체 지역을 통합하여 검토해야 한다.

 

또 시복·시성 추진은 교회법 규정에 의해 엄격하게 전개돼야 한다. 시복 대상자의 성격이나 대상 시기와 관련, 1784년에서 1831년 사이의 초기 박해시대 인물들에 대한 시복 노력이 집중 전개돼야 하며 시복운동의 전개과정에서는 순교자를 제1차적 시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현재 각 교구나 단체에 추진하고 있는 시복 작업에서는 대상 인물이 상호 중복되는 경우가 있어 이에 대한 조정작업이 요청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주교회의 시복시성 통합추진회의가 최근 시복 청구인과 청원인을 선정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 시성절차법에 나타난 시복시성 절차에 대한 이해(김기만 대전가톨릭대 교수신부) = 새 시성절차법은 과거의 시성절차법에 비하여 과정의 단순화를 도모하면서도 역사적이고 신학적이며 과학적인 차원에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들을 강구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와 신학 자문위원을 비롯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소중히 고려된다.

 

각 지역의 관할 주교들이 수행하는 예비 심사에 대한 강조는 또한 시복시성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남용의 소지를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해된다. 특히 시성은 교황이 행하는 최종적이고 확정적이며 무류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예비심사에서 주교들이 정확한 심사를 수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크다고 하겠다.

 

시복시성 운동은 하느님의 종들, 시복시성 안건의 후보자들이 구체적인 역사를 산 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해당 지역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시복시성 운동은 시성을 통해 보편적인 교회의 공적 예배가 명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편교회의 한 부분으로서 지역교회는 자신의 지역교회가 추진하는 시복시성 추진이 보편교회를 위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

 

<평화신문, 613호(2001년 2월 11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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