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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일반-04] : 전례공간의 의미
1.구약의 성전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1열왕 6, 1-38) 전까지는 이스라엘 안에 일찍이 건물로서의 성전은 없었다. 그에 앞서 다윗이 통일 국가의 왕이 되어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오고 자신의 궁을 완성했을 때 ‘하느님의 집’을 지어 바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당시의 예언자 나단의 신탁은 이를 명백하게 거절했다. 나단의 신탁은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유목 생활을 하던 때처럼 ‘이동 성전’에 머무신다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전해 준다(2사무 7, 1-7 참조).
한편으로 이 신탁은 다윗의 자손에 의해 지어질 성전을 예언하고 있다(2사무 7, 12-13; 1열왕 5, 19 참조). 그러나 솔로몬도 하느님의 현존을 성전에 제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안치하고 나서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기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십시오. 그러나 하느님, 하느님께서 이 땅에 사람과 같이 자리잡으시기를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꼭대기 하늘도 주를 모시지 못할 터인데 소인이 지은 이 전이야말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1열왕 8, 26-27).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본래 일정한 장소에 모셔진 분이 아니고 만물을 손수 창조하신 분이시다. 하느님은 만물 안에 계시나 특히 당신이 뽑으신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분이라는 신앙이 유목 시대부터 이스라엘 안에 뿌리 깊이 자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에 정착하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 민족들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으로는 왕정 체제를 도입하고, 종교적으로는 계약의 궤를 안치하기 위해 성전을 지었다. 이로써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제도가 자리를 잡아갔으나 예언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끊임없이 비판하였다(예레 7, 1 이하; 26, 1 이하; 미가 3, 12; 이사 66, 1; 에제 40-42장 참조). 성전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도 이 예언자들의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2. 신약의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례를 위한 건물의 신학
2.1 신약의 전통
신약 성서의 저자들은 자주 전례 회중에 관해서 말하고 있지만, 모임의 장소로 하느님의 집으로서의 성소나 성전을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도가 새로운 계약의 성전으로 간주된다. 요한 복음 2장 13-22절에 의하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성전으로 지칭하셨다. 이것은 그때부터 하느님의 구원을 현존케 하는 장소는 영광을 받으신 주님이시며, 더 이상 예루살렘의 돌로 된 성전이 아님을 뜻하는 것이다.
이제 세상에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유일하고 합법적인 장소로 지정된 곳은 없다. 오히려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는 그리스도가 계신 곳, 즉 모든 세상 안에서 행해진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20). 요한 복음 7장 37-38절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
묵시록 21장 22절에 의하면 ‘어린양’은 아버지와 함께 거룩한 도시의 성전이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때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돌로 찢어졌다(마태 27, 51 병행구 참조). 여기에서 많은 교부들은 구약의 성전 예배의 종결과 구원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적으로 보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히브리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분리의 벽을 허물고(에페 2, 14 참조). 모든 이를 위한 성전을 건설하셨다. 이 성전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고 피난처와 구원을 제공한다.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영광 진리로’ 드리는 하느님께의 새로운 예배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요한 4, 21-24 참조).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이루고, 그래서 그들 안에 하느님의 영광이 자리하고(요한 14, 23 참조), 그들과 그들의 공동체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으로 불린다(1고린 3, 16-17; 6, 19; 2고린 6, 16 참조).
신비체의 표상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체로 불리는 것처럼, 그렇게 성전의 표상 안에서 그들은 살아 있는 돌(1베드 2, 4-6; 에페 2, 20-22 참조)로 불린다. 그리스도 공동체라는 이 성전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달리 대체될 수 없는 기초 혹은 하느님의 건물의 주춧돌(1고린 3, 11)이시고, 건물 전체를 함께 유지시켜 주는 고리이시다(에페 2, 21). 이사야서 28장 16절과 관련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머릿돌이라고 부르신다(마태 21, 42와 병행구; 1베드 2, 6-8 참조).
2.2 건물로서의 성전
위에서와 같이 성전을 이해할 때 과연 어떻게 건물로서의 성전의 필요성이 생겨나는가? 이러한 이해에 상대적으로 공동체적 회중의 집은 이차적인 역할을 지닌다. 그 집은 봉사적 특성을 지닌다. 그리스도교 시초부터 전례 공동체를 성화시키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집회의 장소는 공동체와 공동체가 거행하는 전례로부터 존경과 품위를 인정받았다.
이것이 후대에 전례를 위한 예술적인 건물을 세울 근거를 마련해 주었고, 장엄한 성당 헌당 예식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10세기를 넘어서는 성당 안에 축성된 성체를 보존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동기에서 주어지는 전례를 위한 건물의 품위에 대한 개념은 성당 헌당 예식의 지침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볼 수 있는 건물인 이 집은 지상 여정에 있는 교회의 특수 표지요 천상 교회의 모상이다. 교회의 오랜 관습에 따라 오로지 계속적으로 하느님 백성이 모여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기 위한 집으로 성당을 지을 때에는 장엄한 예식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이 당연하다’(성당 축성 예식서 Ⅱ, 2). 이렇게 건물로서의 성당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볼 수 있는 표지이다.
3. 성당 건물의 특성 - 성당 건축을 위한 기본 요건
위의 신학적 특성을 감안할 때 성당 건축은 항상 다음과 같은 기본 요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3.1 전례적 건축은 공동체를 고려해야 한다.
하느님 백성은 성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되고 조직되어 있다. 그러나 그 둘은 성령 안에서 하나의 신비체를 이룬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이러한 일치는 전례건축물에 있어서도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러므로 사제석과 제단의 지역이 지나치게 장엄하고 권위적인 인상을 주거나 거리감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경우에 신자들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게 되고 구경꾼으로 머물기 쉽기 때문이다.
3.2 전례의 장은 전례를 고려해야 한다.
전례 행위와 관련해서 성당은 전례 거행을 더욱 용이케 하는 기능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전례 헌장의 정확한 적용을 위한 지침(Inter Oecumenici=Instructio Inter Oecumenici ad exsecutionem Constitutionis de sacra Liturgia recte ordinandam, 1964. 9. 26.)'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룩한 건물 안에서 제대는 자연적으로 전 회중의 주의를 모으는 최고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장소에 위치해야 한다.... 또한 사제석(제대가 있는 지역)은 거룩한 예식을 용이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91항). 사제석은 너무 반사적인 창이나 배경의 예술적인 장식 때문에 주의가 분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자들의 주의를 전례로 집중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대 자체가 지니는 상징성이 그늘에 가리게 된다. 제대는 ’거룩한 식탁‘이며 아버지께 자신을 봉헌하고 신자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는 주님의 상징이다. 말씀 전례는 성체 성사의 거행과 밀접히 일치되어 있기 때문에 말씀 선포의 장소인 독경대도 중심적인 위치에 놓아야 한다. 제대가 주님 현존의 장소로서 ’성찬의 식탁‘인 것처럼 독경대도 주님 현존의 장소로서 ’말씀의 식탁‘이다.
3.3 전례의 장은 표정과 부르심의 특성을 지녀야 한다.
성체 성사의 거행은 본질적으로 영광을 받으신 주님을 모시고, 그로부터 기쁨과 격려와 힘을 받는 공동체의 파스카 결합이기에 전례의 장은 활기찬 축제의 인상을 주어야 하고, 하느님의 약속을 반영하며 ‘마음은 드높이’ 신뢰에 찬 희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성당내의 예술적인 장식들이 이러한 기능을 분명하게 수행할수록 그것들은 더 거룩해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그 장식들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부르는 표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많은 현대 성당들에서 볼 수 있듯이 너무 차고 냉담하고 공허한 느낌을 주지 말아야 한다. 불편한 공간적 구조, 조명과 색조의 침울한 단조로움, 예술적으로 빈약한 장식 등은 회중의 품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회중을 거행되는 신비로 이끌지도 못한다. 이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성화라는 전례의 기본 정신과 관련하여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청은 값비싸고 외형을 자랑하는 기념물적인 건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오늘의 인간을 자극하고 끌어당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4 만남의 장소로서의 다양한 용도가 고려되어야 한다.
때때로 경제적 재정적 어려움이 자연히 전례적 기능이나 신자들의 만남의 장으로서 요구되는 다양한 용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들이 있지만, 전례적 기능 외에 본당의 여러 활동 단체를 위한 적절한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교회는 만남을 통한 친교의 나눔으로 전례의 신비를 몸에 익히며 세상의 필요에 응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4. 전례적 요소 - 거룩한 설비
4.1 여러 설비들의 배치
성당은 그리스도의 감사제를 재현(Anamnesis)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이 모이는 예배 집회의 현장이다. 그곳에서 사용되는 말씀과 표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실재의 상징이다. 따라서 전례는 모든 예술을 탄생시키고, 교회는 이를 소중히 다루어 왔다. 여러 설비들의 배치는 하나하나의 전례적인 기능에 부합하고 신자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가능케 하도록 신중히 고려되어야 한다.
4.2 제대
제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봉헌을 기념하고 현재화하는 장소이며 그리스도께서 초대하시는 ‘주님의 식탁’이므로 감사제의 중심이다. 제대는 고정된 것이거나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사용된다. 제대는 또한 그 주변을 쉽게 둘 수 있도록 하고, 회중을 대변해서 집전할 수 있도록 벽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 위치는 회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집중되는 곳이어야 한다. 성당을 다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제대는 고정된 것으로 축성되어야 한다. 또 그 재료 선택에 있어서 돌이 갖는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석재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편리함을 이유로 제대에 제의장이나 제구함을 만들어 이용하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를 다른 목적으로 겸용할 수 없다.
4.3 제대의 장식
전례의 경건한 집전과 축제의 성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촛불이 요구되는데, ‘촛불은 제대 위나 그 주위에 놓는다. 그러나 제대와 사제석의 구조를 감안해서 전체가 아름다움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제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를 교우들이 잘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지장이 되지 않도록 놓아야 한다’(로마 미사경본의 총지침, 269). 십자가도 있어야 하는데, 촛대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제대 위에 놓을 필요는 없다.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 중간 위치에 바닥에 세우는 형태의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는 장엄하게 입당 행렬을 할 경우 모시고 들어가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고상은 지나치게 고통스런 수난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상징하는 것이 좋겠다.
4.4 독경대
독경대는 말씀의 식탁으로서 성당 안에서 제대와 함께 전례적으로 가장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강론과 들은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응송 등도 하거나 성가대가 따로 노래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노래하거나 낭송하게 된다. 제대와 같은 존경과 품위를 표시하기 위해 제대와 같이 돌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설대와 분명히 구분되도록 제작해야 한다. 위치는 원칙적으로 회중이 바라보면서 제대의 왼쪽이다. 독경대의 경우도 책장이나 사물함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4.5 사제석
이곳은 제대와 독경대가 놓이고 전례를 거행하는 주례자와 봉사자들을 위한 자리다. 회중이 잘 볼 수 있도록 회중석보다 약간 높이는 것은 어쩔 수 없겠으나 지나치게 높이에 큰 차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주례자석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도록 하나 지나친 화려함과 권위 의식을 느끼게 하지 않도록 한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주례 사제 혼자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주례자석은 미사의 개회식과 폐회식을 거행하는 곳이니, 적절한 공간을 마련하여 책들과 마이크 시설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례의 봉사자들을 위한 좌석도 이곳에 마련되니, 복사들의 좌석은 주례자 곁이나 쉽게 도울 수 있는 적합한 자리에, 독서자들을 위해서는 독경대가 있는 쪽에 자리를 마련한다.
4.6 회중석
회중석 어디에서나 집전자나 봉사자들이 잘 보여 신자들이 눈과 마음으로 거룩한 전례에 정성스러이 그리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 기둥 등이 가려 시야를 방해하는 일이 없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전례 개혁은 흠숭의 동작으로 반드시 장궤(무릎 꿇음)를 강조하지 않는다. 서 있는 동작은 인간의 기본 자세이고, 서서 기도하는 자세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하는 상징적인 동작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의 걸상을 만들 때에 꼭 장궤틀을 함께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차분히 듣고 음미할 수 있도록 편하게 제작함이 더 요구된다.
4.7 성가대석
회중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 오르간과 성가대석은 회중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 배치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성당 2층에 마련하는 것보다 회중의 성가에 잘 봉사할 수 있는 제대 가까이에 그 위치를 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지휘자는 성가대만이 아니라 회중 전체를 이끌어 한 목소리의 찬미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가대도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모인 회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8 성체 보존의 장소와 감실
미사 중에 축성된 성체를 성당 내에 보존하는 관습은 임종 환자들에게 노자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 생겨났다. 이차적인 관습들은 미사 밖에서의 성체 분배와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흠숭의 목적에서 생겨났다. 성체를 보존하는 그릇과 장소는 여러 가지 변화의 과정을 거쳐 감실에 안치하게 되었는데, 고대의 감실은 성당의 안쪽이나 제의실 벽에 붙이는 경우도 있었고 비둘기 형태를 한 그릇에 넣어 제대 위 천장에 매달거나 성당 내부에 조그마한 탑을 만들어 그 안에 모시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성체 앞에서 기도하거나 묵상하는 관습이 생겨나면서 경당이 생기게 되었고, 이곳의 제단 중앙에 감실을 설치하여 그 안에 안치하게 되었다. 더 후대에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이 강조되고, 성체께 대한 흠숭과 경배가 전례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됨에 따라 감실이 점차 성당의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경당에서는 미사를 지내는 제대 위에 안치하는 곳이 늘어났다. 이러한 영향으로 감실을 미사를 지내는 중앙 제대 위에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지고 관련 법규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빵의 형상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은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는 결과로 생긴 것이지 전례 거행을 위해 직접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례의 장만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감실을 꼭 중앙 성당 안에 만들 필요는 없다. 성체께 대한 개인적 경배나 묵상을 하려면 오히려 별도의 경당을 마련하고 그 중심에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로마 미사경본의 총 지침 276항도 ‘신자들이 사사로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치기에 알맞은 경당에 성체 모시는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별도의 경당을 마련할 공간이 없는 본당에서는 그 성당의 구조를 감안하여 품위 있는 장소에 감실을 마련한다. 그러나 중앙 제대 바로 뒤편에 감실을 안치하는 관습은 피하는 것이 좋다. 제대를 중심으로 전례 거행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도 봉사자들과 회중의 주의를 흐트러뜨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4.9 성세대
세례가 거행되는 장소는 세례 후보자뿐 아니라 그를 받아들이고 공동체의 신자 그리고 세례 후보자의 친지들도 참가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하므로, 제대 가까운 곳이거나 회중석에서 잘 보이는 장소에 성세대를 마련하고 공동 세례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나라의 본당들 중에는 성세대를 사용치 않는 예가 많으나 성세대는 우리를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한 세례 성사를 기념하는 표징이므로 제대 가까운 곳에 반드시 설치하도록 한다. 성세수는 전례 헌장 70항에 의하면 매 세례의 도중에 축복하여 사용할 수 있다.
4.10 제의실
제의실은 다만 미사의 시작을 준비하는 방만이 아니라 제의와 제구 및 성유, 성물, 성해 등을 보관하며 또한 전례 거행시 필요한 예식의 보조적 기능을 수행하는 직접적으로 전례적인 방이다. 따라서 제의실을 성당 입구에 만드는 본당일지라도 전례적 기능의 수행을 위해 제대 옆 한쪽에 적합한 공간의 방을 따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례 거행 중에 문 밖 제의실까지 가는 것은 전례의 흐름을 중단시키기 때문이다. 전례 거행에 필요한 물품은 이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따로 경당을 마련할 수 없는 본당들은 성당의 감실을 비워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이곳에 임시 감실을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4.11 고해소
고해소는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회심으로 인도하는 사제와 고백자 간의 대화가 가능한 장소여야 한다. 고해소는 가능한 한 본 성당밖에 설치하여 성당 내에서 두 가지 성사가 동시에 집전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새로운 고해 성사 예식서에 의하면 재래의 칸막이와 장궤들은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4.12 주랑 현관과 성수대
주랑 현관(Porticus)은 다만 출입을 돕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주랑 현관은 성당의 밖과 안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즉 세상에 속한 것과 하느님께 축성된 것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회랑에서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모든 것, 생각과 원의, 탐욕과 근심, 미움, 호기심 등을 모두 떨어버리고 깨끗하게 되어 성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랑 현관은 건축학적인 의미나 출입의 편리를 떠나 전례적 기능 수행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성수도 세례를 기억하며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기에 성수반을 성당 안쪽에 놓는 것은 옳지 않다.
4.13 기타 활동의 장
교회 공동체는 전례 집회만을 위한 장소뿐 아니라 기타 사목 활동에 적합한 회합실, 소강당, 시청각실, 성물 판매소, 교리실 등 다양한 종류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때 그 공동체가 위치한 구체적인 장소성과 시대성을 생각하고, 그 안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과 사명을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유형의 교회 건물을 만드는 것은 그곳에 무형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의 하나인 것이다.
4.14 성당의 내부 장식
성당은 전례에 의한 신앙 고백의 장이다. 따라서 그곳에 설치하는 모든 장식은 전례의 기능을 방해하지 말고 가시적인 형태로 전례의 기능을 촉진시키는 도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성당 내부는 신자들이 구체적인 구원의 공동체 체험을 하는 곳이므로 과거의 결정적인 구원 사건을 상기하고 기념하는 초시대적인 장이 되어야 하며 전 지상 교회와의 친교의 장이 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고래로부터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승리와 영광에 참여하는 성인들의 모습을, 또 교회의 모상으로부터 마리아상을 성당 내에 세웠던 것이다. 이러한 예술 작품들은 교회의 올바른 신앙 고백에 기여하는 한 전례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교회의 신앙과 조화되지 않는 신심의 과장이나 미의 절대화가 드러나면 그것은 종교 예술일지는 몰라도 이미 전례 예술은 아닌 것이다. 성인들의 상이나 그림 등을 그리스도와 대등하게 배열하지 말 것이다. 교회의 장식품들은 화려함보다는 품위와 간소함을 존중하고 사물의 진실성을 소중히 하고 허식을 배제해야 할 것이다.
4.15 성당의 외부 장식
지상에 세워져 있는 교회 건물은 그곳에 그리스도 공동체가 존재함을 증거한다. 교회 건물의 외관은 인간적인 허영에서 나오는 자기 과시의 기념탑이 되어서는 안 되고 만백성 앞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표징으로서의 교회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세상 백성들 한복판 깊숙한 곳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종말론적 시야를 펼치며 사는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는 모습이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