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전례학 > 제8장 : 성체성사의 거행

2007. 1. 17. 오후 11: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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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전례학 > 제8장 : 성체성사의 거행 

제8장 : 성체성사의 거행
성체성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시는 성찬례인데, 영세자는 여기에 참여했을 때, 비로소 ‘입교’했다고 할 수 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삶과 예배의 원천이요 절정이다.

8. 1. ‘주님의 만찬’에서 ‘미사’로
8. 2. 말씀과 희생제사
8. 2. 1. 말씀과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희생제사
8. 2.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희생제사
8. 2. 3. 미사의 말씀과 희생제사
8. 2. 4. 선포된 말씀의 효과
8. 2. 5. 미사에 대한 단일한 전망
8. 3. 말씀의 전례의 역사적 발전
8. 3. 1. II-IV 세기
8. 3. 2. V-IX 세기
8. 3. 3. 제 10세기부터 트렌토 공의회까지.
8. 4.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말씀의 전례의 거행
8. 4. 1. 시작예식
8. 4. 2. 말씀의 선포

제8장 : 성체성사의 거행
(참조 : 이 부분은 마티아스 아우제(Matias AUGÉ)의 저서 Liturgia - Storia, Celebrazione, Teologia, Spiritualità, Edizoni Paoline, 1992 Milano, pp. 117-168 의 번역(일부)이다.. J.A. Jungmann, Missarum sollemnia. Origini, liturgia, storia e teologia della messa romana, 2 voll., Marietti, Torino 19702; M. Righetti, La messa. Commento storico-liturgico alla luce del concilio Vaticano II, Ancora, Milano 19663; A. Ambrosiano, Eucaristia, in: Nuovo dizonario di teologia, 앞의 책, pp. 447-470; L. Della Torre, Celebrare comprendere vivere la messa, Edizioni Paoline, Roma 1981; Aa.vv., Anamnesis. La liturgia, eucaristia. Teologia e storia della celebrazione, Marietti, Casale Monferrato 1983; P. Visentin, Eucaristia, in: NDL, pp. 482-508; E. Cabié, L´eucaristia, in: Aa.vv., La chiesa in preghiera. Introduzione alla liturgia (a cura di A.G. Martimort), II, Queriniana, Brescia 1985; A. Adam, Corso di liturgia, 앞의 책, pp. 151-192; S. Marsili, I segni del mistero di Cristo, 앞의 책, pp. 211-291; H.B. Meyer, Eucharistie. Geschichte, Theologie, Pastorale, Pustet, Regensburg 19892; J. Aldazabal, La eucaristía, in: Aa.vv., La celebración en la iglesia, II, 앞의 책, pp. 181-436.)

성체성사는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시는 성찬례인데, 영세자는 이 성서에 참여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입교’했다고 할 수가 있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삶과 예배의 원천이요 절정이다.(참조. 전례헌장 10; 교회헌장 11; 주교교령 30; 선교교령 9; 일치교령 15; 사제직무교령 5, 14.) : 성체성사의 신비로 하느님께 합당한 예배를 거행하고; 교회는 자신의 현재의 그리고 종말론적 본질을 충만하게 드러내며; 여기에서 열정을 찾고; 복음 전파 사명의 힘과 성취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삶에 이토록 중요한 신비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 장에서 살펴본 내용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합당하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성체성사의 거행, 즉 ‘미사’이므로, 구조, 여러 부분의 역사적 발전 그리고 미사의 신학적 내용 등을 살펴본다. 이 모든 것은 전례거행을 생생하게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8. 1. ‘주님의 만찬’에서 ‘미사’로

성서적 근거를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참조. E. Galbiati, L´eucaristia nella Bibbia, Jaca Book, Milano 1968; J. Jeremias, Le parole dell´ultima cena, Paideia, Brescia 1973; A. Gerken, Teologia dell´eucaristia, Edizioni Paoline, Alba 1977, pp. 19ss; X. Léon-Dufour, Condividere il pane eucaristico secondo il Nuovo Testamento, Ldc, Torino-Leumann 1983; L. Ligier, Il sacramento dell´eucaristia, Pontificia Università Gregoriana, Roma 1988, pp. 59ss; C. Porro, L´eucaristia. Tra storia e teologia, Piemme, Casale Monferrato 1989, pp. 17ss.)
분명하게 전례적 기원인 성찬제정의 본문은 이미 전례거행 자체에 발전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첫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 후 약 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간주되며, 루가(22, 15-20)와 바오로(1고린 11, 23-25)의 더욱 초기 본문들에 상응한다. 이 첫 번째 단계에서 빵의 축성과 포도주의 축성은 만찬과 분리되어 나타난다. 아마도 성체성사 거행의 이 첫 번째 구도는 성찬제정이 이루어진 유대의 파스카 식사의 흔적을 유지하는데 더욱 충실한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만찬은 사라진다. 또는 순서를 바꾸었다고 해도 좋겠다. 그 결과 잔의 축복은 빵의 축복에 이어 즉시 이루어진다. 마르코(14, 22-24)와 마태오(26, 26-28)의 본문은 이 두 번째 단계의 증언이다.

이 두 전통사이에 다른 차이들이 있다(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두 전통 모두, 이사야의 야훼의 종의 노래(특히 이사 53)에 나타나는 속죄적인 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는데, 이것은 루가에 나타나는 예수의 희생을 뜻하는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이라는 본질적인 표현이며, 마르코 복음의 예수의 죽음을 희생제사적 죽음으로 또 계약의 날인으로 나타내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모든 성찬제정 기사에서 그 이후 미사의 두 번째 부분의 구조를 결정했던 요소들을 구별 해 낼 수 있다: 제물봉헌, 감사기도, 빵의 나눔, 영성체. 그러나 오늘날 성체성사의 거행구조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첫 번째 부분을 포함한다. 2세기 중반 유스티노 성인에 이르기까지 성찬례와 함께 하는 말씀의 전례에 대해 증언하는 어떤 정보도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실천을 암시하는 몇몇 신약성서 본문이 있다.

루가에 의해 유일하게 전해지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야기’는(루가 24, 13-35) 말씀과 성찬의 관계를 강조한다: “예수께서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다. 그제서야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를 알아보았는데 예수의 모습은 이미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루가 24, 30-31). 그리스도의 존재를 알아차림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길을 걸으시며 도입하고 준비한 다른 요소를 기억하게 했다: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루가 24, 27).

사도행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는 몇몇 본문들이 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 42). 여기에서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은 세례에 의해 확인된 초기의 신앙고백에 따르는 교리교육 또는 심화교육을 말한다. 다른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이 단락은 성체성사와 말씀의 경청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참조. 사도 20, 7이하). 이 본문에 근거하여 O. Cullmann은 유스티노가 이야기하는 성체성사와 말씀의 경청 사이의 관련은 이미 그리스도교 예배의 기원에서 찾아진다고 주장한다.(La foi et le culte de l´Église primitive, Delechaux & Niestlé, Neuchâtel 1963, pp. 121-124)
말씀과 성체성사의 관계는 성서적 계시에 그 확실한 근거가 있다.

8. 2. 말씀과 희생제사
(참조. L. Bouyer, Parola, chiesa e sacramenti nel protestantesimo e nel cattolicesimo, Morcelliana, Brescia 1962; S. Marsili, La parola nel culto. Saggio di fenomenologia liturgica, in: RL 53(1966) 149-164; Aa.vv., La parola nell´eucaristia. Un approccioo storico-teologico, Dehoniane, Roma 1990; G.J. Békés, Parola e sacramento. Il rapporto tra due fattori nella partecipazione alla salvezza, in: EO 8(1991) 261-276.)

아마 우리가 제 6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말씀과 성사는 두 개의 다른 방식의 표현임에도, 서로를 보충하며,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현존케 하고 거기에 참여케 하는 유일한 성사적-상징적 행위를 구성한다. 이것은 특히 성체성사에서 잘 드러나는데, 여기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신 그리스도는 말씀과 성체의 두 식탁을 통해 영적 양식으로 또한 성사적 영양분으로 자신을 내어주시지만(계시헌장 21; 사제직무교령 4),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는 단 하나의 예배행위를 이룬다(계시헌장 56; 미사경본의 총지침 8). 신앙을 북돋우고 기도와 성사적 예식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는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 없이는 전례거행도 있을 수 없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하는 것처럼; 성사란, 말씀의 운반자이기 때문에 성화능력을 가지게된 상징적 예배나 표지 안에 나타나는 “볼 수 있게된 말씀”(참조 : “Accedit verbum ad elementum, et fit sacramentum, etiam ipsum tamquam visibile verbum” (성 아우구스티노, In Ioannis Evangelium 80, 3; PL 3, 1840) 이다.

8. 2. 1. 말씀과 구약성서 안에 나타난 희생제사

구약성서에 하느님의 말씀과 희생제사 사이에 긴밀한 관련이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백성의 역사에 나타난 세 가지 중요한 순간을 결정짓는 세 개의 회중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 체결(출애굽 24, 3-8), 요시아에 의해 거행된 계약의 갱신(2 열왕 23, 1-23), 바빌론 유배 이후 국가적 종교적 생활의 재출발(느헤 8-9).

시나이산 밑에 모인 하느님의 백성의 회중에 의한 친교제는 계약 법전의 낭독을 포함한다. 백성이 말씀에 복종할 것을 약속한 후에야 모세는 희생 제물의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선언한다: “이것은 야훼께서 너희와 계약을 맺으시는 피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은 계약의 조문이다”(출애굽 24, 8). 말씀의 선포 없이 피에 의해 확인된 계약은 충만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요시아 왕의 종교 개혁은 법전의 발견과 함께 시작되어, 이 법전에서 멀어진 성전을 정화하고, 우상 숭배의 모든 도구들과 이런 예배에 속하는 사제들의 파면하게 된다. 개혁이 절정에 이른 순간은, 회중으로 모인 백성들 앞에서 장엄하게 법전을 선포하고 이어 파스카 희생제사를 바치는 것이었다. 왕은 모든 백성에게 명령한다: “이 언약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너희 하느님 야훼께 감사하며 파스카를 지켜라”(2 열왕 23, 21). 여기에도 말씀과 희생제사의 관계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세 번째 중요한 회중은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초기의 유대인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모든 백성은 광장에 모여 계약 법전의 낭독을 들었다. 하루 종일 걸린 연속독서였는데, 아람어만 이해하는 백성을 위하여 히브리어를 번역해 가면서 조목조목 읽었고, 에즈라와 레위인들의 해석과 주석이 뒤따랐다. 이 경우에 독서 말씀에 희생제사가 이어지지 않았는데, 성전이 파괴되고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백성의 응답은, 단식으로 구체화되고, 속죄와 감사의 영적 제사, 개별 범죄에 대한 고백과 축복의 긴 기도에서 드러났다(느헤 8-9). 다른 한편, 성전이 재건되었을 때, 백성은 성전 예배를 재확립하기 위해 헌신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우리 하느님의 성전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기로 하였다”(느헤 10, 40).

유배 이후 유대이즘은 바로 이 율법(토라)의 예배를 중심으로 확립된다. 이 예배의 장소는 회당(시나고가)이었다. 회당의 전례거행은 성전의 예배를 대체하지는 않지만 보충하여 완전하게 하였는데, 그래서 곧 많은 이들이 회당의 기도에 대해 성전의 희생제사와 영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렇게 해서 성전에서 더 이상 희생제사를 바칠 수 없는 시대를 모르는 사이에 준비하였다.(참조. D. Syme Russell, Dal primo giudaismo alla chiesa delle origini, 앞의 책, pp. 102-104.) 회당의 안식일 집회는 몇몇 기도와 율법을 요약하는 ‘쉐마’의 선포로 시작된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 4-9). 이것은 율법서와 예언서의 독서와 참석자 중 한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해설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리고 시편들을 노래하는데, 선창자가 매 구절을 노래할 때마다 백성은 “알렐루야”라고 응답한다. 그리고 ‘쉐모네 에즈레’라 불리는 18개의 지향을 가진 축복과 청원의 긴 기도가 이어지는데, 이것은 나중에 ‘쉐마’ 뒤로 옮겨진다. ‘아론의 축복기도’에 따른 축복으로 마친다(참조. 민수 6, 24-26). (참조. Ch. Perrot, La lecture de la bible dans les synagogues au premier siècle de notre ère, in: LMD 126 (1976) 24-41.)
회당의 전례거행에서 우리의 말씀의 전례를 이루는 구조의 주요노선을 식별해낼 수 있다.

8. 2. 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희생제사

말씀의 희생제사적 선포는 그리스도에게서 충만하게 실현된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 자, 일어나 가자”(요한 14, 31). 이런 영적 상태로 예수는 겟세마니를 향하여 또 자신의 ‘때’를 향하여 나아간다. 십자가의 희생제사에서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을 세상 앞에서 선포할 것이다. 사람이 된 말씀이신 그리스도는 희생제사에 이르기까지 온 생애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살아있는 응답이었다(참조. 요한 8, 28-29).

말씀과 희생제사의 긴밀한 관계는 최후의 만찬에서 특히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희생이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라 설명하시면서, 제사적 태도를 요구하는 가르침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성체성사를 준비시켰다: 그들은 스승의 모범을 따라 봉사하여야 하고 (요한 13, 13-17); 그리스도와 아버지와 동시에 긴밀한 관계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사랑과 충실로 그분의 말씀을 지켜야 하고 (요한 14, 15-24); 그분 안에 머무른다면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고 (요한 15, 1-17); 그분의 이름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을 준비를 하여야 하고 (요한 15, 18-25); 나중에 그분의 영광스러운 현존을 즐기기 위하여 이별의 슬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요한 16, 16-23); 말씀을 받아들였으니 말씀에 성별되어야 (헌신하여야) 한다 (요한 17, 14-19).

8. 2. 3. 미사의 말씀과 희생제사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고전적인 가르침에(참고 : 신학대전, III, q. 73, a. 1 ad 3um. 따르면, 미사의 희생제사는 본질적으로 질료의 축성으로 이루어진다perficitur. 한편 축성은 최후의 만찬 때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축성하는 사제는 축성 말씀을 질료적으로 현실화하고 즉 역사적으로 구체화하고, 동시에 그 말씀을 형상적으로 선언하고 즉 의미를 갖게 하여, 결국 그리스도의 역할을 의지적으로 능동적으로 취하고 그리스도를 대리하여in persona Christi 말씀이 의미하는 것이 실현되게 한다. ⌈전례헌장⌋은 ‘직무자의 인격 안에’ 나타나는 역동적이고 도구적이며, 일시적이나 효과적인 그리스도의 현존을 말한다.(전례헌장 7)

어떤 의미로 성체축복은 단 하나의 행위에, 단 하나의 표지에 요약된 모든 파스카의 신비를, 모든 구원 경륜을 선포한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어떤 발전이나 구체화 없이는 충만하게 성취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발전은 우선 전례주년의 거행과 더 구체적인 매일의 고유한 미사에서 발견된다: 성서 독서는 그저 단순한 독서나 회중의 성체성사에 대한 성사적 참여를 준비시키는 단순한 교육학적 방법이 아니라, 구원사건을 기념한다.

독서는 성사적 행위와 긴밀한 관계에 있고, 성체성사신비에 고유한, 신비의 현현이라는 충만한 실재에 참여한다. 말씀의 전례의 ‘오늘’이란 말은 성체성사 안에 성사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서, 그 충만한 내용을 발견한다. 더 나아가 시편과 기도 사이에 독서들을 배치한 것은 말씀의 선포의 능동적이고 제의적인 가치를 더욱 더 강조한다. ⌈전례헌장⌋은 그리스도께서 “또한 당신 말씀 안에도 현존하시니,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말씀하시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전례헌장 7)라고 선언한다. 바오로 6세는 이것이 참되고 실재적인 현존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회칙, Mysterium fidei)

전례에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의 거행은, 성서 안에 계시된 모든 말씀과 구원업적들이 가지는 항구한 유효성에 대해 또한 응답한다. 하느님께서 구원경륜이 효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안배하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도달하는 역사적 사건들 하나 하나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그 이후의 시간에도 계속하시니,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실현한 이런 사건들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계시헌장 25).

8. 2. 4. 선포된 말씀의 효과

근대적 인간은 ‘사건’에 대조되는 ‘말씀’에 대해 약간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이것은 성서에서 나타나는 말씀의 역할과 중요성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성서의 고유하고, 역동적이고 생생한 개념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참조. B. Klappert - O. Betz, Parola, in: Dizionario dei concetti biblici del Nuovo Testamento, op. cit., pp. 1170-1208; B. Corsani, Parola, in: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op. cit., pp. 1097-1114; R. Fabris, L´esperienza esodica e silenziosa della parola di Dio, in: Vita Monastica 46 (1992) 35-53.)

구약성서 히브리어에서 말(말씀)을 명시하는 최고의 전문용어인 다바르dabar는 희랍어 로고스logos와는 전혀 다르다. 로고스가 우선 ‘무엇을 지시’하는 말씀 즉 의미의 전달자 혹은 의미의 중개자라면, 고대 근동에서, 다바르는 마술 주문, 축복, 저주 등과 비슷하게, 대상자에게 파고들어 그 존재를 차지하고 내부에서 활동하면서, 구원하기도 하고 파멸시키기도 하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이스라엘에서 모든 주술적인 개념을 씻어 낸 말씀은, 약속과 요구와 위안으로 역사를 빚으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해되었다. 다바르 야훼dabar jhwh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행위와 동시에 하느님의 명령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임무를 정확하게 실행하는 전령과 같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이사 55, 11). 다바르는 많은 경우에 ‘사건’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말씀 한 마디에 모든 것이 생기고, 한 마디 명령에 제 자리를 굳혔다”(시편 33(32), 9).

하느님의 말씀은 창조의 기원이고(참조. 창세 1), 인간 생명의 기원이며(참조. 창세 1, 26), 생명 유지의 기원이다(참조. 신명 8, 3; 지혜 16, 26).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로부터 “살아있고 효과적이며”(히브 4, 12) 특히 믿는 이들 가운데 활동하신다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유사한 개념을 물려받는다. 사건으로 이해되는 말씀의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개념은 셈족 언어에 고유한 것이며, 단순히 지시하는 로고스라는 희랍어 개념은 철학적 분석의 발전을 이루지만, 히브리어 다바르의 고유한 힘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말씀의 효과를 말할 때 그 효과는 구체적인 사람이나 회중에 의해 판별된다는 조건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말씀이 제시하는 것을 자동적으로 이루지는 않는다. 말씀은 한때 개념의 이해를 중시했던 주지주의적인 경향을 극복하는 깊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경청은 신앙의 단계에서 합당한 개인적 자세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하느님의 계시는 이해할 수 있는 ‘말씀’으로 다가오기 전에,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인간의 온 존재에 호소하는 한 실재이다.(참조. G. Sovernigo, L´efficacia della parola di Dio celebrata. Aspetti personali, in: Aa.vv., Dall´esegesi all´ermaneutica attraverso la celebrazione. Bibbia e liturgia - I (a cura di R. Cecolin), Edizioni Messaggero, Padova 1991, pp. 295-304.)

말씀의 전례는 기념되어지는 신비를 다시 제시하여 백성들이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거룩한 역사를 실제적으로 회상한다. 말씀의 전례에 대한 참여는 이렇게 해서 예배 공동체의 장엄하고 합당하고 공개적인 신앙고백이 된다. 신앙의 이런 태도는, 회중이 주님의 만찬의 표지아래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의 생생하고 역동적인 현존을 인정하는 기념의 순간을 준비한다.

말씀의 전례는 비록 교육적인 역할을 수행할 임무를 가진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 그것은 그 자체 안에 이미 구원하는 하느님의 선물이 존재하는 것이며, 또한 신자가 앞으로 성사에 의해 드러나고 실현될 관계에로 자신을 개방하도록 초대하는 진정한 하나의 전례거행이다.(참조. A.M. Triacca, La parola celebrata. Teologia della celebrazione della parola, in: 위의 책, pp. 28-54.)

8. 2. 5. 미사에 대한 단일한 전망

위의 사항들을 살펴본 후에, 거행하는 신비의 긴밀한 단일성을 받아들일 줄 알게 하는 미사에 대한 단일한 전망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이런 전망을 갖기 위한 방법중의 하나는 성찬의 전례의 다양한 관점을 하느님의 말씀과 비교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이제, 만찬과 감사의 관점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8. 2. 5. 1. 두 개의 식탁

전례헌장은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의 풍성한 식탁”을 말한다(전례헌장 51). 말씀의 빵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이해하도록 돕는 성서주제이다 참조. D. Sesboüé, Pane, in: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op. cit., pp. 831-834; S. Cipriani, Eucaristia, in: Nuovo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op. cit., pp. 521-530.
: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내릴 날이 멀지 않았다. - 주 야훼의 말씀이시다.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오,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야훼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아모 8, 11).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배고픔을 선언하면서, 아모스 예언자는 빵을 말씀과 비교한다(참조. 신명 8, 3). 그 이후, 예언서와 지혜문학은 메시아적 만찬에 대해 말하며, 하느님의 지혜가 사람이 된, 하느님의 살아있는 말씀인 빵에 대해 말한다(참조. 이사 55, 1): “와서 내가 차린 음식(빵)을 먹고 내가 빚은 술을 받아 마시지 않겠소? 복되게 살려거든 철없는 짓을 버리고 슬기로운 길에 나서 보시오”(잠언 9, 5-6). 또한 예수에게 있어서도 빵이란 매일매일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한다(참조. 마태 4, 4). 가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있었던 성체성사에 대한 말씀에서 예수는 자신을 믿어야 할 말씀으로 드러낸다(요한 6, 35-47). 사람이 되신 이 말씀이 희생제사에 봉헌되셨기에, 신앙의 동의는 성찬례에서 거행되는 이 희생제사에 대한 통교(영성체)를 필요로 한다(참조. 요한 6, 49-58).

지혜의 식탁과 하느님의 말씀의 빵의 식탁이라는 성서적 개념은 성찬의 전례와 비교하여 본 미사의 첫 번째 부분의 의미를 밝혀줄 수 있다. 빵과 말씀의 식탁으로 이해되는 미사에 있어서 온 전례거행의 분명한 단일성이 드러나고 결국 미사의 두 주요부분 모두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8. 2. 5. 2. 말씀의 선포에서 감사로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 자체의 뜻은 감사, 인정, 사은 등이다. 하느님 앞에서 감사는 통상 기도의 형태를 가진다(참조. 지혜 16, 28; 1데살 5, 17이하; 2고린 1, 11; 골로 3, 17 등등). 감사는 자연스럽게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축복으로 이어지는데, 이 업적들은 하느님을 인정하는 태도로 찬양하는 수혜자를 통해서 표현된다. 하느님을 축복하는 것은, 믿는 이가 그분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물건과 사건들을 통하여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그분을 찬양하기 때문이다. 참조. P. Benoît, Eucaristia, in: Dizionario di teologia biblica, op. cit., p. 359.

회중은 말씀을 선포하는 가운데, 하느님으로부터 성취된 기적과 같은 업적에 대해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감사드림은 말씀의 전례의 영역에서 이미 나타나는데, 매 독서가 끝나고 나서 이 감정은 다음과 같이 다양하게 표현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 선포에 앞서는 알렐루야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요소이다. 이 모두의 최상의 표현은 조금 더 후에 감사기도문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8. 3. 말씀의 전례의 역사적 발전

말씀의 전례에 대한 이 간단한 역사적 개괄에서 구성요소들의 발전과 현행 구조의 점진적 형성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였다. 이로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전례거행의 본질적인 노선을 더욱 분명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미사의 역사에 대해서 이 장의 시작부에 인용된 문헌들을 참고하라.

8. 3. 1. II-IV 세기

이 시기의 더욱 중요한 문헌들의 증언들만 살펴보자.

8. 3. 1. 1. 성 유스티노의 ⌈호교론⌋

2세기 중반에 작성된 이 문헌은 첫 번째로 성찬의 전례에 대한 완전한 얼개를 제공한다. 우리에게는 두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태양의 날이라 불리는 날, 도시에서 또 시골에서부터 한 장소에 모이고,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사도들의 기억과 예언서를 읽는다. 독서자가 독서를 마쳤을 때, 집전자는 이런 좋은 모범들을 볻받을 것을 권고하고 격려하는 연설을 행한다. 그리고 모두 함께 일어서서 기도를 시작한다”.(유스티노, Apologia I, 67.) “사도들의 기억”이라는 표현은 유스티노에게 있어서 복음을 가리킨다.

“우리는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을 그렇게 물로 씻긴 후에, 우리 자신과, 세례받을 이들과,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해, 진리를 받아들이고 생활의 실천에서 좋은 이들이 되도록 또 계명을 지켜 영원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공동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형제들의 모임’이라 불리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한다”. 유스티노, Apologia I, 65.

문헌의 성격상 몇몇 부수적인 요소들의 존재유무에 대한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만약 65항에서 말씀의 전례가 공동기도와 평화의 입맞춤으로 축소되었다면, 세례거행 직전에 행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입맞춤의 위치는 옛 서방전례들과 현행 동방전례에서의 위치와 동일하다. 터르툴리아노는 이것을 ‘기도의 표지signaculum orationis’라고 부른다.
테르툴리아노, De oratione 18, 1; CCL 1, 267.
성서봉독은 연속독서였다.

8. 3. 1. 2. 로마의 히폴리토의 ⌈사도전승⌋

3세기 초엽에 쓰여진 이 문헌은 두 번 성찬례에 대해 말한다: 주교 서품 때(4장)와 세례거행을 마친 때(21장).(참조. ⌈사도전승⌋, 이형우 역주, 분도출판사.)
이미 알려진 것들 즉 말씀의 전례가 공동기도와 평화의 입맞춤으로 마친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8. 3. 1. 3. 위 사도문학 (사도들의 권위를 빌린 문학)

III-V 세기 동방에서 특히 두드러진 이런 종류의 대표작품들 중에, 약 400년경 시리아에서 쓰여지고, 8권으로 구성된 ⌈사도헌장⌋이 있다. 이 작품은 ⌈사도전승⌋에 종속되면서도 더욱 완전한 정보를 담고 있는 8권은 특히 흥미롭다. 말씀의 전례에 대한 긴 묘사는 다음의 구조로 요약할 수 있다: Cfr. M. Metzger (a cura di), Les Constitutions Apostoliques, tome III, livres VII et VIII (= Sources Chrétienne 336), Cerf, Paris 1987, pp. 150-174.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독서(율법서, 예언서 사도 및 서간, 복음 = 4개 독서), 강론, 함께 모인 여러 집단을 위한 기도, 이어서 성찬의 전례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의 해산, 공동기도, 평화의 입맞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여러요소들이 도입되었지만, 전례거행의 구조는 처음의 것과 동일하다.
요약하면, 4세기 말경 말씀의 전례는 다음과 같은 주요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독서, 강론, 공동기도, 평화의 입맞춤.

8. 3. 2. V-IX 세기

이 시기의 연구를 위한 주요문헌은 ⌈주교실록liber pontificalis⌋, ⌈로마 성사집⌋들(⌈베로나 성사집⌋, ⌈젤라시오 성사집⌋, ⌈그레고리오 성사집⌋)과 ⌈로마 예식집⌋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증언에 따르면, 426년경 말씀의 전례는 아직 집전자의 인사와 성서독서들로 시작되었다.(참조. 아우구스티노, De civitate Dei 22, 8; CCL 48, 826.)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 겉보기에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새로운 요소들이 말씀의 전례 성서독서 앞 부분에 많이 도입되게 된다.

8. 3. 2. 1. 입당송introitus

⌈주교실록liber pontificalis⌋(참조 : 주교실록(Liber pontificalis)은 로마의 주교들에 관련된,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은, 생애에 대한 본질적인 일련의 자료들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베드로 사도부터 스테파노 5세 (885-886) 까지의 기록을 의미한다. 그 후 오노리오 2세 (+1130) 까지는 내용이 무척 빈약하다. 비질리오 교황 (537-555)부터 스테파노 5세까지의 자료들은 그 당시 사람들에 의해 직접 작성된 것이다.) 에 따르면, 입당송은 첼레스티노 1세 교황 (422-432)에 의해 도입되었다.(참조. ⌈주교실록Liber pontificalis⌋ I, cap. 45.)

이 소식의 내용 자체는 전혀 역사적 가치가 없다 할지라도, 최소한 이 소식이 편집된 6세기 초에 입당송이 존재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콘스탄틴에 의한 평화이후, 커다란 바실리카에서 거행되는 예배가 형성되고 확립되면서, 성찬의 회중은 이전의 가정교회의 회중과 달리, 의미있는 방식으로 전례거행을 시작할 필요를 느꼈다. 입당송은 전례회중을 전례거행에로 준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8. 3. 2. 2. 대영광송gloria

대영광송은 교회의 가장 오래된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이 노래가 비잔틴 전례의 아침기도 ⌈오르트로스orthros⌋에서 이미 불리웠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로마 전례에서 대영광송에 대한 주목할 만한 증언은 레오 대교황(440-461)의 성탄강론 중에 나타난다.(참조. Leo Magnus, In Nativitate Domini Sermo 6, 1.)

루가 복음(2, 14)이 이 날 전례거행의 첫머리에 이 옛 노래를 부르도록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교황 심마코Simmaco(498-514)가 모든 주일과 모든 순교자 축일에 대영광송을 의무적으로 노래하도록 규정하였다고 전해진다.(참조. ⌈주교실록Liber pontificalis⌋ I, cap. 53.)

그러나, 11세기 후반까지 대영광송은 주교집전 미사에서 주교만이 선창할 수 있었다. 사목적 관점에서 이 축제적 요소의 도입은 입당송의 도입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대영광송은 결국 커다란 전례회중에 적합하고, 전례거행에 있어서 축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목적을 가지는 것이다.

8. 3. 2. 3. 본기도collecta

변화가 가능한 것이고, 로마전례에서 특징적인 요소이다. 이미 ⌈베로나 성사집⌋에 기도oratio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본기도는 간결한 문장으로 아주 함축적인 내용을 표현하는 기도양식이다. ‘기도합시다oremus’라는 권고로 각 신자들이 기도하고 나서, 이들 기도는, 각 개인의 기도를 종합하여 모으는 본기도에 의해 끝 맺어졌으리라는 추측은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 본기도는 집전자의 기도이다. 기도문의 내용은 통상 하느님 아버지를 향하고, 당일의 축제에 대해 언급한다. 나중에 보겠지만, 예물준비예식이 봉헌기도로 끝 맺고, 영성체 예식이 영성체 후 기도로 끝 맺는 것처럼, 이 시작예식은 사제적 기도인 본기도로 끝맺는다.

결론적으로 시작예식에 속하는 입당송, 대영광송, 본기도는, 바실리카라는 전례적 환경에서 커다란 전례회중을 겨냥해서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성서독서들 사이에 노래들이 불리웠다고 증언하는 문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성 아우구스티노는 ‘화답송salmo responsoriale’에 대해 말한다.(참조 : 아우구스티노, Enarrationes in psalmos 119, 1; CCL 40, 1776.)

8. 3. 2. 4. 보편지향기도 혹은 신자들의 기도
(참조 : 이 기도의 구조, 용도, 역할에 대해서 다음 책을 참조. Aa.vv., La preghiera dei fedeli, numero monografico di RL 74 (1987) fascicolo n. 1.)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 시기에 로마전례에서 사라져 버린, 말씀의 전례의 중요한 이 요소에 대해서 더욱 상세하게 살펴본다. 초기 5세기 동안의 보편지향기도의 존재와 내용에 대한 직접, 간접의 여러 증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전례헌장 53에서 ‘보편지향기도’ 혹은 ‘신자들의 기도’의 복구의 결정은 디모테오 전서 2장 1-2절을 생각하게한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원과 간청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고 권하는 바입니다.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시오. 그래야 우리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아주 경건하고도 근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오로의 본문과 말씀의 전례의 보편지향기도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본문은 일반적인 그리스도교 기도와 특히 이 공동체적 기도의 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금 살펴보고 있는 전례적 기도와 더욱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문헌은 클레멘스 교황(+100)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 째 편지(참조 : 클레멘스, Prima ai Corinti 59, 1.)와 스미르네의 폴리카르포(+155)의 필립비인들에게 쓴 다음의 글이다: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시오. 또한 여러분들을 미워하고 박해하는 왕들과 재판관들과 군주들과 십자가의 적들을 위해서 기도하여, 여러분들의 열매가 잘 드러나고 여러분이 그분 안에서 완전하도록 하시오”.(참조 : 폴리카르포 (스미르네의), Seconda Lettera ai Filippesi 12, 3.)

직접적인 증언은 앞에서 살펴본 유스티노, 히폴리토, 사도들의 헌장에 나타나고, 또한 초기 4세기의 서방과 동방의 교부들의 여러 문헌에 나타난다(테르툴리아노,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오리제네, 아타나시오 등). 기도의 지향은 가끔씩 변경되지만, 항상 모든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포함하려고 노력한다. ⌈젤라시오 성사집⌋에서 성 금요일의 말씀의 전례를 맺는 ‘장엄기도’가 발견된다. 이것은 로마전례의 보편지향기도의 아주 오래된 양식이다.

로마전례의 말씀의 전례의 일상적인 거행에서 이 양식의 기도는 아주 일찍 사라져 버린다. 동방은 그렇지 않고, 이 기도가 잘 보존되고 발전하였다. 몇몇 저자들에 의하면, 이런 소멸은 자비송kyrie eleison의 도입 때문이다.

8. 3. 2. 5. 자비송

“주여kyrie”이라는 외침은 이미 그리스도교 이외의 영역에서 황제나 신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다. “자비를 베푸소서eleison”구약성서의 70인역에서, 특히 시편에서(참조. 시편 63; 41(40), 5. 11) 하느님을 향한 표현으로 자주 발견된다.

그리스도교 예배에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는 4세기 말 예루살렘의 시간전례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참조. Itinerarium Egeriae 24, 5)
로마의 미사전례에 자비송의 도입은 아직도 분명하게 풀리지 않은 역사의 문제이다. 여러 가설 중의 하나는 젤라시오 교황(492-496)이 보편지향기도의 구조를 바꾸어 “주여kyrie”, 혹은 “그리스도여christe”로 대답하는 호칭기도를 도입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편지향기도는 성서독서 앞으로 옮겨졌을 것이고, 성 그레고리오 교황(590-604)은 지향들을 삭제하고 응답만 마치 환호처럼 담겨놓았을 것이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보편지향기도의 복구는 결국 옛 로마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8. 3. 3. 제 10세기부터 트렌토 공의회까지.

말씀의 전례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난 요소들은 미사의 시작부에 있는 기도들과 신앙고백이다.

8. 3. 3. 1. 시작기도

미사 시작부에 제대 앞에서 드리던 이 기도들의 발전에 대해서 로마예식집ordines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이들 기도는, 집전자가 자신의 죄와 전례거행에 부당함을 고백하고 은총과 용서를 청하는 소위 ‘사적참회기도apologia’를 반복하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최초의 이런 사적기도들은 갈리아 전례에서 나타난다. 9세기에는 로마-프랑크 전례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11세기에 이들 기도는 많이 확대되고 중요시된다. 그후 대다수의 이런 형식의 기도는 사라져 버린다. 10세기 중엽의 ‘로마예식10ordo romanus X’은 사적기도의 재정비에 대해 증언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참조 : “교황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몸을 숙여 하느님께 기도한다...”. “Pontifex... inclinans se Deum pro peccatis suis deprecetur” (OR X, 12; vol. 2, 353) 비오 5세의 미사전례서(미사경본)에 사적기도로 ‘고백의 기도confiteor’와 시편 24편이 남게될 것이다. 현행 말씀의 전례의 ‘참회예식’은 집전자와 신자 즉 회중전체를 대상으로 하기에 그 자체로 새로운 시도이다.

8. 3. 3. 2. 신앙고백credo

이 신앙의 조목은 미사를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신앙고백은 예루살렘의 세례예식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 본문은, 니체아 공의회(325)와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 작성되고 고백되어진 신앙의 조목을 용약하여 칼체도니아 공의회(451)에서 마련된 것이다. 그래서 흔히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문(신경)’이라 불린다. 신앙고백이 처음으로 미사에서 사용된 것은 6세기 초 콘스탄티노플에서였다. 잠시 후 스페인과 당시 비잔틴 제국에 속하던 지중해 연안 지방에 전파되었다. 샤를르 대제는 아퀴스그라나aquisgrana의 경당에 이를 도입했다. 북부유럽에는 1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로마에서 신앙고백은 11세기 초, 게르만 황제 엔리코 2세의 요구에 따라 교황 베네딕토 8세에 의해 도입되었다. 신경이 로마에 도입되면서, 각 지역교회에서 이단들을 대항하여 참된 신앙을 고백하던 논쟁적인 성격이 사라지게 되었다. 로마에서 신앙고백은 단순히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고백으로 바뀌었다.

8. 4.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말씀의 전례의 거행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발간된 로마식 미사의 전례거행을 위한 책들은 ⌈미사 전례서missale romanum⌋(미사경본, 1969년 4월 3일 바오로 6세 교황 공포; 1970년 3월 26일 출판)와 ⌈미사 독서 예식서ordo lectionum missae⌋(1969년 5월 25일 출판)이며, 이미 각각의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현행 로마식 미사전례에서 말씀의 전례의 구조와 의미는 ⌈미사 전례서 총지침⌋ 24-47항에 상세히 설명되어있다. 이 장의 지나간 단락들에 제시된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하여 이 문서를 읽어보기를 권한다.(참조. J. Hermans, La celebrazione dell´eucaristia. Per una comprensione teologico-pastorale della messa secondo il Messale Romano, Ldc, Torino-Leumann 1985; L. Della Torre, Celebrare il Signore, 앞의 책, pp. 57-74.)
우리는 앞으로 몇몇 일반적인 사항과 특히 관심있는 몇 부분에 대해 다룰 것이다.

8. 4. 1. 시작예식

시작예식은 미사의 시작부터 본기도까지 이어지는 연속적인 예식들이다. 이들 예식들은 이중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모인 신자들의 통교에 대한 의미를 향상시키고,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듣고 성찬례를 거행하기에 합당한 내적자세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미사전례 ‘전체’에 대한 준비라고 할 것이다.

시작예식의 새롭고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참회예식’이다. 이 예식은 중세초기부터 미사 첫 부분에 나타나던 참회적 요소들의 변천이 이룩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몇몇 저자들에 따르면,(참조. P. Farnés - M. Delgado, Ordenación general del misal romano con el ordinario de la misa. Texto bilingüe y comentarios, Editorial Litúrgica Española, Barcelona 1969, pp. 79-80) 참회예식이 전례거행의 시초에 놓인 것은 계시의 전망에서가 아니라 자연종교적 전망에서 그리스도교적 참회를 바라보는 태도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사실, 구약의 예언자들과 신약의 예수님과 제자들이 처음에 회개에로 초대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다음 순간에 회개에로 이어지는 참회가 마치 말씀에 대한 응답처럼 이루어진다. 이런 구도에 따르면, 참회예식의 더욱 합당한 자리는 말씀의 선포 이후이라야, 마치 말씀에 대한 응답이 되겠다. 이렇게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회개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더욱 분명할 것이다. 다른 한편, 이것은 옛⌈주교예식서⌋가 제시하는 참회예식의 구조이고, 독일이나 스페인 북부의 교회에서 실행되었다.

그러면, 현행참회예식은 말씀의 경청에 대한 준비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전례는 다른 몇몇 동방전례들과 달리 독서에 대한 특별한 도입이 없다. 참회예식이 ‘심리적 불안’ 상태를 불러 일으킬 만큼 중요성이 부여되는 전례의 특별한 순간이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하여간 성찬례의 거행을 준비하는 참회행위는 이미 디다케에서 발견된다. “주님의 주일다마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참조 : '디다케' 14, 1)

8. 4. 2. 말씀의 선포

이 부분은 말씀의 전례의 핵심부이다. 하느님의 말씀의 신비는 생생하고 본질적인 방법으로 거행된다. 대기 속에 울리는 말씀은ㄴ, 회중이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분명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선포된다. 그리고 이 말씀은 강론에서 전례회중의 구체적 상황에 맞추어 설명되고 적용된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은 독서들 사이에 불리는 성가들을 재평가했다. 화답송은 경청한 말씀에 대한 묵상의 일종이며, 시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를 열쇄로하여 행해지는 묵상적 재연(다시 보여줌)이다. 구체적으로 선포된 독서의 해석하는 열쇄역할은 후렴이 수행한다. 알렐루야와 함께 부르는 복음전 노래는 그 자체로 노래로 불릴 것을 요구한다. 당신의 말씀 가운데 다가오실 주님을 향한 기쁨에 찬 공동체의 환호이다.

역사는, 말씀의 독서와 경청을 위한 예식의 기원에 설명과 함께 행해지는 성서봉독과 응답과 함께 행해지던 경청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이 전례거행에서 두 개의 극을 구별할 수 있다: 선포과 수용. 선포라는 편에 속하는 것은 다음이다: 제 1독서, 화답송 본문, 제 2독서, 알렐루야 본문, 복음, 강론. 반면에 수용 혹은 반응의 편에 속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각 독서 후 환호들, 화답송의 후렴, 알렐루야의 후렴(알렐루야), 강론 안에 나타날 수 있는 독서 내용에 대한 반향들, 신앙고백, 보편 지향 기도.

전례거행의 양 편 사이에 이루어지는 전례적 대화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복음을 전하시고, 백성들은 노래나 기도로 이에 응답하는” (전례헌장 33항) 자리인, 말씀의 전례의 고유한 의미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것은 계약의 기본구조이다: 하느님은 말씀하신다 (사랑하신다, 창조하신다, 구원하신다) - 인간은 수용한다 (받아들인다) - 인간은 응답한다 (행한다).

말씀의 전례가 회중 안에서 수행되는 다양한 역할은 참여자들의 다양성에 상응한다.(참조 :  J. Thunus, Le letture bibliche, in: Aa.vv., Assemblea santa, 앞의 책, pp. 345-346.)
말씀은 예수님으로부터 실현되고 사람들에게 선포된 구원을 알리는 케리그마(복음선포)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선포는 카테케시(교리교육)이라 전통적으로 불리는 가르침을 동반한다. 교리교육은 복음을 해설하고 그에 따라 삶에서 실천해야 할 내용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끝으로 말씀은 미스타고지아(신비교육) 혹은 신비에 대한 입문의 역할을 행한다. 이것은 특히 강론의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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