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일반] : II. 미사전례의 해설 - 미사 전례의 구조와 각개 부분

2007. 1. 17. 오후 11: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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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례일반] : II. 미사전례의 해설 - 미사 전례의 구조와 각개 부분 

I. 전례봉사자의 임무와 역할 1

II. 미사전례의 해설 - 미사 전례의 구조와 각개 부분
27

1. 전체 구조 27
2. 시작예식 27
2.1 입당성가 27
2.2 제대 친구와 분향 28
2.3 십자성호 28
2.4 인사와 인도 28
2.5 참회 28
2.6 자비송 29
2.7 대영광송 29

3. 말씀 전례 30
3.1 미사 전례 안에서의 하느님 말씀 30
3.2 새 독서 배열 31
3.3 첫째 독서와 화답송 31
3.4 둘째 독서, 복음 환호송, 부속가 32
3.5 복음 32
3.6 강론 33
3.7 신앙고백 34
3.8 보편 지향 기도 35

4. 성찬 전례
35
4.1 예물 준비 35
4.1.1 제대 준비 36
4.1.2 예물 행렬 36
4.1.3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기도 37
4.1.4 물 섞음 37
4.1.5 그 밖의 준비 예식 38
4.1.6 예물기도 38
4.2 감사기도 38
4.2.1 감사기도의 의미 38
4.2.2 교회의 제사로서의 성찬례 40
4.2.3 감사기도의 여러 양식 40
4.2.4 감사기도의 중요 요소 41
4.2.5 감사송 41
4.2.6 거룩하시도다 42
4.2.7 축성기원 42
4.2.8 성찬 제정 및 축성문 43
4.2.9 기념환호 44
4.2.10 기념 44
4.2.11 봉헌기도 45
4.2.12 일치기원 45
4.2.13 전구 45
4.2.14 마침 영광송 47

4. 성찬 전례 35 
<계속>
4.3 영성체 예식 47
4.3.1 주의 기도 48
4.3.2 부속기도 및 환호 48
4.3.3 평화 예식 49
4.3.4 빵 나눔 49
4.3.5 섞음 예식 50
4.3.6 하느님의 어린 양 50
4.3.7 준비기도와 초대문 50
4.3.8 사제의 영성체 50
4.3.9 신자들의 영성체 51
4.3.10 손으로냐 입으로냐? 51
4.3.11 신자들의 성혈 배령 52
4.3.12 같은 날 두 번의 영성체 52
4.3.13 성찬례 공심재 53
4.3.14 성체 분배 협조자 53
4.3.15 성체용기 닦음 54
4.3.16 침묵기도, 감사 노래, 영성체후 기도 54

5. 마침 예식 54
5.1 사목적 훈화 54
5.2 강복 55
5.3 파견외침 55
5.4 제대 친구와 퇴장 55

Ⅲ. 전례 주년 56
Ⅳ 전례공간의 의미 57 
Ⅴ 전례와 표징 65
<참고문헌 > 88

[전례일반-02] - 미사전례의 해설 - 미사 전례의 구조와 각개 부분


1. 전체 구조


미사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덧붙여 시작예식과 마침예식 부분이 첨가된다. 과거 말씀 전례 부분이 소홀히 되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이 두 부분 즉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서로 긴밀히 결합하여 하나의 하느님 경배 행위를 이루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보통 성찬례라고 하면 미사 전체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지만 성찬의 전례를 지칭하기도 한다.

2. 시작예식

2.1 입당성가

‘교우들이 모이면...입당노래를 시작한다’ 라는 미사경본의 첫 마디들은 공동체가 모이는 것에 특별한 품위를 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초대교회 문헌인 ‘디다케’에서는 이 모임을 구원된 교회의 표상으로 보고 수많은 밀알, 빵이 된 밀알로 상징한다. 다양한 계층, 다양한 직업층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지만 이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형제 자매를 보아야 하며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이 공동체가 완성된 상태에 있지 않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새로운 백성의 지체로서 원하시고 구원하시기에 공동체는 마음을 모아 기도와 노래 안에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찬양한다.

입당은 되도록이면 입구 중앙통로를 통해 행렬한다. 입당 순서는 향을 든 복사, 십자가복사, 초복사, 독서자와 시종복사, 복음서를 든 독서자, 공동집전사제, 주례사제의 순서로 규정되어 있다. 이들은 제대 앞에 이르러 깊은 절을 하고 십자가는 제대 가까이 세워놓고, 복음서는 제대 위에 놓는다. 촛대는 십자가 가까이 또는 제대나 주수상 위에 놓는다.

입당성가는 미사를 시작하며 모든 참석자들의 결속을 심화시키고 참석자들을 전례시기나 축제의 신비에로 인도하는데 있으며 어떠한 경우라도 공동체가 같이 하지 못하는 성가는 배제해야 할 것이다. 입당성가는 미사경본에 제시된 시편이나 혹은 축제나 전례시기에 적합한 성가를 부르는 것이다.

2.2 제대 친구와 분향

제대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들어올려지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주님은 이 식탁에 현존하시며 신자들에게 음식과 음료로서 자신을 나누어주시므로 제대에 대한 친구는 잔치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드리는 인사이자 공경의 예이다. 그러므로 사제가 전 공동체를 대표해 친구할 때 공동체는 내적으로 이 예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

축일에는 분향도 할 수 있는데 분향은 그리스도교 전례에서 시편 141,2의 의미로 해석하여 기도의 상징과 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자신을 태워버리는 사랑으로 이해했다. 동시에 교회가 드리는 공경과 전구하는 기도의 표지로 여겼다. 그러나 단순히 분향은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이나 물적 제사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2.3 십자성호

제대에 공경을 표한 사제는 사제석으로 가서 시작예식을 계속하며 말씀전례와 마침 예식을 이끈다. 이 사제석의 장소와 형태는 전례의 인도자 역할을 분명히 드러내 주어야 한다.
십자성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만이 우리의 구원이 있다라는 것을 드러내며 곧 우리의 구원의 원천이자 목적이신 삼위일체의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다. 또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는 십자성호는 세례를 상기시킨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의 물로 새로 태어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입적되었다. 그러므로 신자들도 십자성호를 그으며 큰 소리로 “아멘”이라는 응답으로 사제의 말을 뒷받침해야 한다. 로마노 과르디니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에 모든 생각과 정성을 쓷으면 십자성호가 몸과 마음을 감싸주면서 나를 거두고 축복하고 거룩하게 함을 절로 느끼게 되며 이것은 십자가의 표시가 우주의 표시이고 구원의 표시이기에 그렇다라고 말하고 있다.

2.4 인사와 인도

사제는 모인 공동체에 인사하는데 이 인사는 주님께서 함께 계심을 드러내어 주며 인사를 하면서 두 팔을 벌리는 것은 포옹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이다. 인사에 이어 그날 전례의 주제를 알려주는 짧은 인도가 따라올 수 있지만 그날 봉독되는 성서 독서들에 대한 설명은 이 부분에선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2.5 참회

성서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은 현존을 맞이하는 당사자들에게 부당함과 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거룩하신 하느님께 점차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은 교만한 마음으로 스스로 의인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거룩한 미사 전례 시작 때 자신의 잘못들을 알아내어 잘못과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간청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미사경본 통상문은 참회 예식의 세 가지 선택할 수 있는 양식을 제공하는데 이 양식들은 죄를 고백하도록 이끄는 초대문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잠시 마음을 모을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을 갖고 사제의 용서 간청으로 끝맺는다.

첫째 양식은 공동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전능하신 하느님께 뿐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우리의 죄를 고백하여 사회적인 차원이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가 이웃에게 부당하게 한 많은 과오와 사랑을 거스른 것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에게 해를 끼치고 타인이 노력해서 이루어 놓은 것을 파괴하는 데에서도 나타난다.

즉 선을 행하지 않음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는데 그것은 신약성서적 의미에서 이 세상에서의 소금과 빛 그리고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위한 척도와 받침이 되지 못했다는데 우리의 잘못이 있는 것이다. 고백의 기도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 성녀와 형제 자매들이 나를 위하여 우리 주님이신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로 끝난다. 서로를 위해 바치는 전구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에 부합된다.

둘째 양식은 사제와 공동체가 서로 화답하는 짧은 교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셋째 양식은 자비송을 결부시킨 세 번에 걸친 그리스도께 드리는 환호나 탄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양식에서는 별도의 자비송은 생략된다.

참회의 모든 양식에서 사제를 통한 공동의 용서 간청은 회개하는 죄인을 위해서는 비록 사죄경이 아니더라도 신학적이며 성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주일에는 이런 참회 예식 대신에 이미 받은 세례를 상기시키는 의미에서 성수를 공동체에 뿌리는 성수예식을 거행할 수 있다. 사제는 생명과 정화의 표지이며 동시에 세례를 상기시켜 주는 물에 축복기도를 바치고 성수로써 먼저 사제 자신에게 표를 하고 이어서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린다. 이 예식은 죄를 정화시켜 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와 이어지는 미사성제를 통한 구원을 간청하는 기도로 끝맺는다.

2.6 자비송

자비송의 첫 말마디인 기리에(Kyrie)는 그리스도를 찬송하는 환호이다. 고대 이교시대에 이 호칭은 신들이나 통치자를 신으로서 찬송하는 환호였으나 그리스도교 박해 시대 초세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이 자비송은 참된 신이신 그리스도께 향하는 고백이었다.

자비송의 둘째 말마디인 엘레이손(eleison)은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외침이다. 사람들은 우선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고 주님의 자비를 간구할 수 있으나 교회로서 우리는 온 세상의 가난하고 소외당한 사람들과 연대감을 갖고 수백만의 고통과 수억이 넘는 사람들의 위협받는 구원을 고려하면 이 자비송은 마땅히 온 세상을 위한 교회의 대림기도로 표현할 수 있다.

2.7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성부와 어린양에게 영광을 드리며 간구하는 “가장 오래된 찬미가”이다. 비잔틴 교회에서는 이 기도가 아침기도에 포함되었으나 서방교회에서는 미사 전례 시작에 자리했으며 우선적으로 특별히 축일에만 자리했다. 오늘날에는 “대림시기와 사순시기를 제외한 모든 주일, 대축일, 축일과 특별한 축제 때에 노래하든지 읽는다.”

대영광송은 천사의 노래, 하느님 찬양,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송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가 복음 사가가 천사의 노래로 기술한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은 찬미가 전체를 주도하는 악구처럼 자리한다. 이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의지로서 특별히 성자의 강생 안에서 빛난다. 이 구원의지의 열매는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이다. 여기서 평화라는 단어는 모든 구원의 은혜에 대한 총체 개념으로, 개별 인간에게 있어 영과 육의 총체적 평안으로, 인간과 하느님, 사람들 사이에서의 완전한 조화로서의 평화개념이다.

이어지는 하느님 찬양은 경탄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저절로 용솟음치며 마치 바다의 파도가 겹쳐 이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간청기도만이 아니며 이런 찬미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의 존재론적 당위성이자 삶의 과업이다. 이 찬송 끝부분에서 찬미가는 하느님께 향하면서 그분을 경외하는 가운데 “주 하느님, 하늘의 임금님, 전능하신 아버지 하느님”이라고 부르며 이 경칭들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진다. 그분은 진정코 “하느님으로부터 나신 하느님이시오, 빛으로부터 나신 빛”으로서 아버지의 영광에 참여하신다.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새로운 소절은 구세주를 향한 여러 개의 존귀한 칭호로 시작하는데, 이는 그리스도 신앙의 단축양식과 같다.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는 짧은 간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박해시기에 만들어졌음을 고려한다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은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성격을 띤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도 거짓 우상이나 여러 가지 이념의 유혹이 있음을 볼 때, 이 “주님 당신만이 홀로 거룩하시고 높으시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며 요구되는 것이다.

찬미가는 삼위일체의 신앙 고백 양식으로 끝맺는다. 이 찬미가를 노래하거나 기도할 때 단순히 그 읊조림이 찬송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영광송이 되어야 함을 의식해야 한다. 즉 정신적 고통이나 일상의 짐을 지고 가는 것도 하느님 찬양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대영광송은 모든 사람이 함께 노래할 수 있으며 공동체와 성가대의 교송, 또는 성가대만이 노래할 수 있고, 만일 노래하지 못할 때는 교우들이 함께 읽거나 교대로 읽는다.

3. 말씀 전례

3.1 미사 전례 안에서의 하느님 말씀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해 모든 시대를 위하여 단 한 번 기록된 것으로서 하느님 자신의 말씀을 변치 않게 전하며 예언자들과 사도들의 말 가운데 성령의 말소리를 반영시킨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 대해서는 지탱과 힘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말씀의 양식, 영신생활의 깨끗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계시헌장 21항)

성서가 전례 안에서 뛰어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성서에서 독서들이 봉독되고 설교에서 설명되며, 성서에서 시편들이 노래불러지고 성서에서 받은 영감과 충동 하에서 전례중의 간구와 기도 및 찬미가들이 만들어지며, 성서에서 행위와 표징의 의미가 나오기 때문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말씀의 식탁을 더 풍성하게 차리고 성서의 보고를 더 개방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분량의 다수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성서독서들이 더 풍부하고, 다양하고, 적합하게 꾸며지게 하기 위해서였다.

공의회는 하느님 자신이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실재로 활동하신다는 신비를 깨닫도록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었는데 이는 하느님 말씀을 생명과 구원, 은총과 화해의 말씀으로 표현한 사도 바오로의 뜻과 완전히 일치한다. 즉 하느님 말씀은 구원의 은혜를 알려줄 뿐 아니라 구원으로 인도하고 그 실현에 근원적으로 참여케 한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 존재의 심층부에까지 이르고 그를 변화시킨다면 그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느님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것, 즉 기쁜 소식에 열려진 존재가 되는 것은 반드시 이같은 성령의 활동과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데 둔감하거나 경솔하거나 세속적 물욕 때문에 제대로 듣지 못하는 잘못된 태도에 대해 경고하셨다.

전례에서의 성서 독서들을 역사적으로만 이해하거나 설명해서는 안 된다. 단지 지나간 사건에 대한 보고가 아니라 현재의 인간에게 하느님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즉 전례의 독서는 우리가 그 말씀의 대상이며 그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한 말씀이다. 전례의 독서들은 현재의 따뜻한 숨결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 여기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아가 그것이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알려준다.

3.2 새 독서 배열

전례성서독서를 풍성하게 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은 미사전례를 위한 새로운 독서 배열을 만들어 냈다.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는 세 가지 독서-첫째 독서는 구약, 둘째 독서는 사도들의 편지나 사도행전, 묵시록, 셋째 독서는 복음-가 준비된다. 또한 성서의 보고를 더 풍부히 전달하기 위해 3년 주기의 독서제도가 도입되었다.

주간 평일 독서는 통상적으로 두 가지를 취하며 첫째 독서는 2년주기로 봉독되고 복음은 1년 주기로 해마다 반복된다. 기타 독서배열은 성인 축일들과 기념일 미사, 성사 및 준성사, 여러 가지 계기와 기원미사에 따라 편집되었다. 평일이나 성인 기념일 등의 독서를 선택할 때는 주도자 자신의 취향보다 공동체 전체의 영신적 유익을 중시해야 한다.

독서대는 말씀 전례 동안 교우들의 관심이 쉽게 집중될 수 있는 곳으로 마련되어야 하며 모든 독서는 독서대에서 봉독되어야 한다. 성서 봉독자는 가능한 주도자는 피해야 하며 복음이 아닌 성서독서들이 신자들에 의해 봉독될 수 있는 반면에 복음은 언제나 부제 또는 사제에 의해 봉독되어야 한다.

3.3 첫째 독서와 화답송

첫째 독서는 구약성서에서 취하며 그날 복음과 관련을 맺고 있다. 구약성서를 독서로 사용하는 데서 교회는 구약성서도 마찬가지로 신적 계시이며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 사건에 기여한다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자 한다.

독서전의 짧은 인도 내지는 해설이 가능하며 이것은 단순하고 본문에 충실하며 짧게 잘 준비되어야 하며 인도하는 본문과 일치해야 하는데 그것이 선행하는 강론의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
공동체는 귀를 기울이기에 용이한 몸가짐으로 앉아서 독서를 듣는다.

첫째 독서에 이어 화답송이 이어진다. 이 화답송은 들은 것을 묵상할 자리를 만들어 준다. 이 화답송은 노래로 불러져야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낭송되어야 한다. 또한 부득이한 경우 화답송은 상응하는 성가로 대체될 수 있다.

3.4 둘째 독서, 복음 환호송, 부속가

둘째 독서는 각 축제의 신비로 방향 지어진다. 그러나 연중시기의 주일에는 사도 바오로의 편지들과 야고보서에서 취하는 선택원칙을 따른다. 베드로서와 요한의 편지들은 부활시기와 성탄시기에 봉독된다. 신자들의 이해도를 고려하여 짧으면서도 어렵지 않은 본문들을 선택하였지만 대부분의 신자들을 위해 설명을 필요로 하기에 독서 전에 해설할 수 있다.

둘째 독서에 이어 “복음 환호송”이 따라온다. 복음 환호송은 화답송과 달리 봉독된 성서에 대한 묵상적 응답이 아닌 복음을 통하여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향한 환호이다. 사순시기를 제외하고 알렐루야라는 환호를 하는데 이는 “야훼를 찬양하라”라는 뜻이며 유다교 전례에서 기원한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전례 의식에서 알렐루야는 묵시록 19,1-7절의 말씀과 부합하게 들어 높여지신 주님께 적용된다.

알렐루야로 둘러싸인 성구는 통례적으로 이어지는 복음에서 취한다. 알렐루야는 노래로 불러야 하고 선창자나 성가대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부르는 것이 알렐루야의 성격과도 부합된다. 이때 일어선 자세는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하기 위한 준비와 그분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이다.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 외에 중세 초기부터 복음이 봉독되기 전에 “부속가”라는 더 긴 노래가 자리했다. 이 부속가는 알렐루야 종결부에 노랫말 없는 환호곡 아래 가사 등을 덧붙였으며 후에는 조화를 이루는 소절과 운율을 통해서 지금의 부속가 형태로 자리잡았다. 부활, 성령강림 부속가는 의무로 바치고 성체성혈대축일과 통고의 복되신 마리아 기념일에는 자유롭게 바친다. 알렐루야가 직접적으로 복음을 준비하기에 모든 부속가는 알렐루야 전에 바치게 되었다.

3.5 복음

복음봉독은 말씀 전례의 정점으로 여긴다. 다른 독서들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나아감으로써 공동체로 하여금 복음을 준비시킨다. 복음의 선포에서 청중은 역사적인 보고에서 예수를 만나거나 그분께 대한 신앙고백이나 신학적 숙고를 통해서 예수를 만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이 지상 예수님의 인생 길에 동참함을 느낀다.

청중은 예수의 요구에 따르거나 반대하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으로 여긴다. 청중은 당시의 제자들처럼 예수를 따르도록 불림을 받으며 동시에 스스로 자신의 삶과 고통 안에서도 그 추종을 증명해야 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복음이 성대한 의식으로 둘러싸여 있음은 이해할 만 하다.

1) 봉독자는 사제 또는 부제여야 한다.
2) 봉독자는 사제인 경우 준비기도를 바치거나 부제인 경우에는 사제의 축복을 간청한다.
3) 복음서는 향로와 초를 앞세우고 행렬을 하며 독서대로 이동한다.
4) 사제는 복음봉독의 짧은 대화와 고지가 있고 난 뒤 책과 봉독자 자신에 십자표를 긋는다. 신자들 역시 세 번에 걸친 작은 십자표를 하는데 이는 축복을 간구하는 의미이며, 하느님 말씀을 위해 거리낌없이 자신을 드러내라는 권고와 준비이다. 즉 입으로 하느님 말씀을 고백하고 마음으로 간직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복음서에 대한 십자표는 복음이 온갖 축복의 원천으로 십자가에 관한 기쁜 소식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그 의미가 명백해진다.
5) 사제는 현존하는 그리스도께 공경을 드리는 의미에서 책에 분향한다.
6) 신자들은 봉독 전과 후에 특별한 경의의 환호를 노래하거나 말한다.(주님, 영광 받으소서,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7) 신자들은 복음을 서서 듣는다. 이 자세는 기쁨과 존경, 그리고 준비성의 표현이다.
8) 복음 봉독 후 사제는 복음서에 친구하면서 “이 복음의 말씀으로 저희 죄를 씻어주소서”하고 기도한다. 하느님 말씀이 일으키시는 구원의 힘이 전례문 안에서도 알려진다.
복음에 대한 특별한 공경은 복음집을 특별히 예술적으로 제작하고 그림으로 장식한다. 이러한 복음집이 있으면 입당 행렬 때 부제나 또는 독서자가 들고 가서 제대 위에 모셔 놓는데 이 역시 복음에 대한 특별한 존경이 나타난다.

3.6 강론

강론은 미사 본문의 해설로서 말씀 전례를 구성하는 가장 오래된 요소에 속한다. 원래는 주교의 특권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전례를 주도하는 사제가 한다. 또한 전례의 한 부분으로서 특히 주일과 축일의 신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 미사에서는 생략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강론은 인간의 말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전달되어야 하고 현시대의 문제에 그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힘을 보여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며 축일의 의미와 매 미사 안에 현존하는 파스카 신비를 연결하는 가교가 되어야 한다.

내용상의 구성에 관해서는 여러 다른 형태가 가능하다.

1) 준비된 언어로서의 미사강론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 모두가 전례가 요구하는 성향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에 하느님의 계시와 성사적 신비에로의 접근을 힘들다. 여기에 미사강론은 내적 고요와 평정을 촉진시키고 신앙을 강화하며 아집을 해소하고 괴로움과 미움에서 벗어나게 하며 그리스도를 만나고 이웃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장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2) 성서 설교로서의 미사강론
미사의 독서들은 축제의 신비를 선포하기도 하는데 미사강론은 이 소식을 회중이 이해하도록 하며 지금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구원행위를 투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3) 미사 해설로서의 강론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상징적인 태도나 행위의 세계에 놀랄 정도로 무지하기에 미사 본문들의 해설이 필요하다.

4) 신비 해설로서의 미사 강론
신비 해설은 신비를 내적으로 이해하고 체험하도록 이끌고 그로 인해 변화된 삶으로 인도한다. 이는 초세기에 장려되었다. 신비 강론은 신자들로 하여금 성찬의 신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하며 파스카 신비의 오늘을 깨닫게 하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과의 연대감을 강하게 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자기봉헌과 이웃을 위한 봉사를 촉구한다.

5) 시대와 삶의 문제에 관한 미사 강론
청중들의 특별한 필요를 고려하여 다양한 신앙의 어려움과 현 시대적 상황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을 고려해야 한다. 성찬례는 당면하는 삶의 문제에 대해 신앙에 입각한 분명한 대답을 얻을 수 잇는 유일한 기회이다. 시대와 관련된 미사강론도 하느님,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
미사 강론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현대의 사목적 노력에 속하며 강론이 끝나면 짧게 묵상할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이 권고된다.

3.7 신앙고백

독서와 설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 공동체는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도록 불림을 받는데 이는 공동의 신앙고백을 통해 명확히 이루어진다. 신앙고백의 말씀 전례에 대한 “아멘”의 발전적 형태이다. 신앙고백은 모든 주일과 대축일에 공동으로 말하거나 노래하며 그 밖에 성대하게 지내는 특수 행사 때에도 할 수 있다.

미사 전례의 영역 안에서 신앙고백의 의미는 여러 관점에서 표현된다.
1) 신앙고백은 원래의 세례고백으로 세례를 상기시키며 공동체로 하여금 세례를 새롭게 하도록 호소하여 세례와 성찬례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표명한다.
2) 인간 중심적인 시대에서 신앙고백은 신앙의 내용과 신앙의 결단을 새롭게 하는 만남을 이루게 한다. 이 신앙고백으로 공동체는 항상 자신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로서 그리고 고백하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교회로서 새롭게 체험한다. 신앙고백시 많은 신앙의 증거자들과 순교자들의 반열에 서있음을 의식하는 것은 신앙의 충실함을 강화시켜 주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도록 용기를 준다.
3) 구원을 이루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으로 신앙고백은 찬미와 찬양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선포한다. 이 점에서 신앙고백은 대영광송과 감사기도, 특히 감사송과 유사하다.

신앙고백을 할 때에는 서 있어야 한다. 신앙고백을 할 때 그리스도의 강생과 탄생에 대해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모두 허리를 굽혀야 하며 성탄 대축일과 예수 탄생 예고 대축일에는 더 나아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하느님의 하강과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시작을 경외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자세이다.

3.8 보편 지향 기도

말씀 전례는 “보편 지향 기도”로 불리는 간구로 끝맺는다. 거의 1,500년이 지나도록 보편 지향 기도는 로마 전례 안에서 잃어버렸던 것이지만 이제 하느님의 백성은 온 인류를 위해서, 교회와 세상 안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과 위험에 처해 있는 이들을 위해서 전구해야 한다.

이같은 보편 지향 기도는 “나” 중심의 좁은 시야를 넘어 넓은 지평을 열어주고 인류와 전체 교회의 지대한 원의에 대한 책임을 일깨운다. 또한 보편 지향 기도 안에서 공동체는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공동 사제직을 드러나게 실제로 수행한다.

보편 지향 기도로 공동체는 자신의 삶과 활동이 다른 사람을 위한 존재였던 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위한 보편지향기도는 그리스도교의 이해에 의하면 특별히 효능이 있다. 그러한 기도가 공동기도로 말해진다면 그리스도는 특별한 방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과 결합되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대성을 갖기 때문이다.

보편 지향 기도의 구성은 사제가 인도하는 초대문과 종합하는 맺음기도를 바치도록 규정하며 공동체는 공동의 환호로 응답하든지 침묵으로 기도지향에 동의한다. 기도 지향은 보통으로 ‘1. 교회의 관심사를 위하며, 2. 위정자와 세상 구원을 위하여, 3.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 4. 지역 공동체를 위하여’ 의 순으로 이루어지며 특별한 전례 때의 보편 지향 기도 순서는 그 계기에 더 상응하게끔 고려할 수 있다.

4. 성찬 전례

말씀 전례가 끝나면 성찬례가 시작되는데 이는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예시되었다.
1) 예물 준비 때에 빵과 포도주와 물을 제단에 갖다 바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손에 드셨던 재료들이다.
2) 감사 기도 안에서 구원의 업적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물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
3) 하나의 빵을 나눔으로 신자들의 일치가 드러나고, 영성체로써 신자들은 그때의 사도들처럼 그리스도의 손에서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신다.

4.1 예물 준비

빵과 포도주를 바치는 것은 단순한 준비 내지 예물을 바치기 위해 가져오는 것이었으나 점차 신자들은 이것을 성직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성당을 위해 바치는 희사와 결부시켰다.
이 예물들은 신약의 전례 안에서는 원래 의미의 제사로서는 표현될 수 없다. 구약의 예물을 드리던 제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 죽음으로 그 의미가 사라지고 옛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봉헌시기에 많은 기도문들과 예식들이 행해져서 예물들이 준비되는 그 자리에서 이미 변화된 제물이 된 것 같은 인상을 주었었지만 이러한 양식문들은 감사기도 영역 안에서 예물을 두고 이루어지는 변화와 제사 행위에 관념상의 선취로써의 의미를 갖게 할 뿐이다.

오늘날의 예물기도에의 초대로서 바치는 기도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 기도합시다” 이러한 오해를 없애고 내용을 올바르게 나타내는 예물 준비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4.1.1 제대 준비

제대는 성찬례 사건의 중심 장소로, “주님의 식탁”으로 준비된다. 제대는 이미 그리스도교 초세기에 공경되었으며 성찬례의 신비를 통해 “그리스도의 옥좌”가 된다. 제대는 성찬례 안에서 완성되는 감사의 중심이다.

성찬에 대한 공경의 표지로 제대는 적어도 한 개의 흰 보로 덮어야 하며 공경과 다른 전례 거행의 축제 성격을 강조하는 표지인 촛불들을 제대 위나 주위에 세울 수 있다. 제대 위나 제대 가까이에 십자가도 있어야 하며 십자가는 교우들이 잘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십자가는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가 현존한다는 분명한 표지인 것이다.

제대는 본질적으로 하느님 한 분에게 봉헌되기에 성상이나 성화를 설치하는 것은 금하며 제대를 꽃으로 장식하는 것은 그 꽃장식이 제대를 보는 눈길을 방해하지 않는 한 허용된다.
예물 준비 시작 때의 직접적인 제대 준비는 성체포, 성작 수건, 미사 전례서와 성작을 제대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말씀 전례가 끝난 후에야 거룩한 식탁에 보가 씌워짐으로 성찬례 시작을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4.1.2 예물 행렬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 그리고 자선을 위한 예물을 행렬 예식을 갖추어 제대 난간으로 가져가 그것을 부제나 사제에게 건네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때 시편을 노래했다고 전해준다.

예물행렬의 영신적 의의는 신자들이 예물과 함께 신앙과 우리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신 주님의 자기 희생과 조화를 이루는 내적 희생을 통해 스스로를 성찬례 신비에로 일치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이 내적 희생은 통상적인 헌금과 같은 자선을 위한 예물이 바쳐질 때에도 상징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 물질적 희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관련시키는 적극적 사랑의 표현이자 세상과 교회를 위한 책임을 나타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금 바구니나 다른 희사금들은 제대 아닌 다른 적당한 자리에 놓여야 하며 이 자리가 제대 가까이에 있다면 미사 전례와의 영신적 관련성은 분명해 진다.

예물 행렬시에는 적당한 성가를 노래하거나 오르간 반주를 할 수 있고 침묵으로 대신할 수 있으며 적당한 성가로는 라틴어 봉헌송을 권고하지만 전례시기나 축일에 알맞은 모국어 성가도 권고한다. 말씀 전례와 뒤따르는 감사기도가 혼동되지 않도록 예물 준비 동안에 “거룩한 침묵”의 여유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4.1.3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기도

빵과 포도주를 들어 올릴 때 바치는 기도는 유다인의 감사기도 형태를 따랐다. 이 두 개의 준비기도는 창조주께 대한 찬미로 시작된다. 빵과 포도주는 창조주의 선물로 표현된다.
빵은 많은 민족들에게 기본 식량이며 생명의 양식이다. 그러므로 빵이란 선물 안에서 하느님을 창조주로, 생명의 보존자요 벗으로 암시한다. 옛 이스라엘에서는 자양분뿐 아니라 기쁨과 구원의 매개체로 간주되었던 포도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여겼다. 이같은 음식물이라는 선물의 특성을 생각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감사는 기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식사는 공동체성과 우정, 평화와 기쁨을 불러일으킨다. 식사는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서로에게 선사하고 그리스도 자신이 영원한 혼인잔치의 담보를 주는 음식이 됨으로써 최후만찬의 볼 수 있는 표지가 될 수 있었다.

준비기도들은 인간의 수고로운 부분들도 언급한다. 인간의 노동이라는 인간 실존의 한 부분이 빵과 포도주에 내포되어 있기에 그런 의미에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제사에 제물과 함께 자신을 봉헌하는 인간 자신을 상징하는 표징이 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승인 『디다케』는 수많은 낱알과 포도송이가 새로운 모습이 된 빵과 포도주 안에서 변화된 예물을 받아 모시는 사람들이 변화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함께 자라나는 하나됨의 표징을 이미 보았다.

성찬례 거행을 위한 빵은 순수한 밀가루로 새로 만든 것이라야 하고, 누룩 없는 것이어야 하며, 포도주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순 자연물이어야 한다. 빵과 포도주는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야 한다. 준비기도들은 그 목적을 암시하는 말로 끝맺는데 그것은 빵과 포도주는 바로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4.1.4 물 섞음

사제는 예물 준비 기도를 바치기 위해 성작을 들어올리기 전에 포도주에 약간의 물을 섞는데 이 의식은 순수한 포도주를 그냥 마시지 않는 옛 풍습과 마찬가지로 최후만찬때 그리스도의 행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를 넘어 이 안에서 여러 가지의 상징성을 본다.
1) 그리스도의 뚫어진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을 암시한다. 여기서 교회와 성사들의 탄생시간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2) 포도주와 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적 본성과 인간적 본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고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의 한 몫으로서 여겨지는 그리스도와 우리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다.
3) 옛 에티오피아 전례문 중 “마리아 공경 감사기도”에는 “거룩한 잔 안에서 물이 포도주에서 분리될 수 없듯이 그렇게 우리를 당신과 구원의 어린양이신 당신 아들에게서 분리되지 않게 하소서”하고 기도한다.

4.1.5 그 밖의 준비 예식

빵과 포도주에 대한 감사기도에 이어지는 기도 안에서도 우리는 자기봉헌의 표현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제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참석자들을 위해서 이 기도를 바친다. 이어서 예물, 제대, 사제와 공동체를 향해 향을 피울 수 있다. 분향은 희생제사와 기도의 상징으로서 그리고 간구와 교회를 통한 공경의 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신자들의 내적 자기 준비와 관련지어 보아야 하는 예물 준비의 마지막 의식은 바로 사제의 손씻음이다. 옛날에 물품 예물을 받고 난 뒤에 했던 손 씻음은 실제적인 당위성을 지니지만 오늘날은 허물을 씻는다는 상징적인 성격을 지닌다.

4.1.6 예물기도

예물준비의 종결은 예물기도이다. 과거에는 낮은 소리로 말하였지만 이제 큰 소리로 그리고 팔을 벌리고 바친다. 이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예물과 기도들, 그리고 이와 함께 우리 자신의 제사도 받아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축일에는 그날의 신비를 암시하기도 한다.

4.2 감사기도

감사기도로 미사 전례의 핵심에 들어선다. 감사기도의 본문과 예식을 살펴보기 전에 몇몇 문제들을 다루려 한다.

4.2.1 감사기도의 의미

감사기도는 파스카 신비 안에서 역사적인 실재가 된 하느님의 모든 구원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감사를 담고 있다. 이같은 구원행위는 필립비서 2,6-11에서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이 찬가에서 예수는 단순한 스승이나 불의에 맞서는 투사, 사회혁명가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분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사랑으로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이었으며 아버지의 구원의지와 온전히 하나되어 인류의 죄를 위해 스스로 희생양이 되신 분이라는 것이 잘 드러난다.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 안에서 스스로를 바친 예수의 희생은 인간을 하느님과 새롭게 결합시키는 구원의 제사가 된다. 하느님은 인간의 피로써 자시의 복수심을 만족시키시지 않고 오히려 죄에 직면해서도 끊임없는 사랑을 나타내 보이신다. 천상 아버지께 내적으로 희생을 바침으로 예수의 이 사랑의 희생에 동참하는 사람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통해서만 하느님과 화해될 수 있으며 하느님의 아들은 자기희생으로 벗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적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하느님과의 사랑의 일치 안에서 이 화해를 일으키셨다.

이 핵심 되는 구원행위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수많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라고 부른다. 여기서 신비는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인간에게 향하는 은총 가득한 하느님의 활동을 뜻한다. 이 신비는 전례적인 의미에서 측량할 수 없는 하느님의 구원행위를 의미한다.

파스카라는 말은 히브리말에 어원이 있는 그리스-라틴어로서 건너감, 지나감을 의미한다. 예수의 자기 비움과 수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부활에로 건너감, 지나감을 의미한다. 예수는 인류에게 암흑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의 종살이에서 하느님 자녀의 자유에로 건너가도록 길을 열어놓으셨다. 이 파스카의 가장 큰 구약성서 표상은 이집트 종살이에서의 해방이었다.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일회적이며 역사적 사건이었다. 역사적 사건들은 때때로 오랫동안 지속하는 영향을 끼치지만 현재에 뿌리를 갖지 못하는 과거사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는 이와 달리 성사적 표지의 너울 아래 실제적인 현재가 되어 현양된 그리스도는 자신의 희생적인 사랑과 수난의 순종, 구원의지와 모든 인간을 위한 전구와 더불어 현존한다. 그분은 새로운 계약의 대사제로서 우리를 위해 바치신 몸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와 함께 빵과 포도주의 볼 수 있는 표지 아래 현존하신다.

감사기도는 관념상의 회상이나 지나간 구원행위에 대한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구원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와의 실제적 만남이다. 태양이 모든 시대와 대륙에 자신의 충만한 빛을 끊임없이 비추듯 그리스도는 파스카 신비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구원의 태양이 되신다.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그분의 희생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모이고 신앙과 사랑 안에서 자신을 여는 그 어디서나 이 구원의 태양은 빛을 밝게 비추는 것이다.

그리스도 희생제사의 성사적 현존은 “신앙의 신비”이기에 신앙인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다. 신앙의 눈으로 이 구원의 사건을 깊이 생각한다면 지난날의 신앙인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이 감추어진 신비를 특별한 표지로 강조하고 중히 여기려 했다는데 놀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공경의 형태들은 그 시대와 결부된 신심의 표현이며 따라서 바뀔 수 있다. 일부는 성찬례 신비에 대한 불완전하고 역점을 잘못 둔 이해에 기인하기에 이들을 모든 시대에 유효한 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모든 시대에 유효한 신앙의 척도와 성부께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헌신에 자신을 동참시키려 하는 준비성이다.

4.2.2 교회의 제사로서의 성찬례

인간과 하느님의 새 계약 안에서는 구약의 경신례적 제사 규정은 폐기되고 세상의 죄를 없애는 단 한 번의 제사, 곧 그리스도의 제사가 있을 뿐이다. 성찬례는 빵과 포도주의 예물로서는 제사가 될 수 없다. 그것들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찬례는 빵과 포도주의 식사 형태 아래에서 성사적 현존이 되는 단 한 번의 그리스도 제사와 하나됨으로써만 제사가 될 수 있다. 교회는 성찬례 안에서 자신을 바치신 그리스도의 내적 희생에 동참하여, 그분과 내적으로 연대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교회는 그분과 함께 성부께 자신을 봉헌한다.

참된 제관은 그리스도이시며, 교회와 하나된 가운데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신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성사적으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제사를 교회의 제사라고 부를 수 있다.

4.2.3 감사기도의 여러 양식

감사와 성화의 기도인 감사기도 안에서 전 성찬례는 그 중심이자 정점에 이른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감사기도는 히뽈리뚜스에게서 찾을 수 있으며, 이 양식에 변형과 첨가를 가져왔으며 그레고리오 1세 교종에서 이런 발전 과정에 종결을 가져왔다. 이 때의 양식의 골자가 아직까지 유지되어 온다.

8세기 이후 성찬기도는 감사송과 거룩하시도다가 경계지어지며 감사기도 안에서의 감사하는 찬미, 찬송이 최소로 축소되었다. 이 부분에 한 페이지 전체가 십자가 그림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 이 감사기도문이 너무 축소된 찬미와 감사라는 점을 들어 새로운 세 개의 감사기도를 만들었고 그래서 기존의 것과 함께 네 개의 감사기도를 갖게 되었다.

1) 감사기도 제 1 양식(로마전문)
성찬 축성문과 이어오는 기념환호가 도입되었고 과거 25번에 걸쳐 했던 십자성호를 한 번으로 축소시켰으며 감사기도 도중 하였던 두 번의 제대 친구도 생략했다.

2) 감사기도 제 2 양식
히뽈리뚜스의 감사기도를 수정, 변형시킨 것으로 원문에 빠져 있는 “거룩하시도다”와 성령께 간구하는 축성기원을 도입하고 원문의 순서를 바꾸었다.

3) 감사기도 제 3 양식
새로운 창작품으로 전례적이고 신학적인 전통에서 사상과 본문을 계승하여 구조적으로,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접합시켰다는데 특징이 있다.

4) 감사기도 제 4 양식
동방의 전통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감사기도는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감사송을 갖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찬미와 감사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성령의 파견까지 감사를 계속하는 이 감사기도의 포괄적 찬미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찬양 형태의 신앙고백과 같다.

공식적인 감사기도들 외에도 1967년 이후부터 수많은 개인적인 출처의 감사기도가 네덜란드에서 시작하여 폭넓게 퍼져나갔는데 주교들은 이를 여러 번 금지시켰으며 다른 한 편 새 감사기도를 위한 로마의 인준을 간청하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나 살아 있는 신앙의식과 자기들의 언어로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를 선포하는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그리스도교 전례의 “중심이자 정점”이 시대조건에 따른 일방성과 주관적 성향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 교회의 지도를 통한 인준은 필요한 도움이 된다.

4.2.4 감사기도의 중요 요소

감사기도의 본질과 역사적인 구체화 과정에서 이 기도의 중요한 요소들이 드러나는데 이들은 “감사송”, “거룩하시도다”, “축성기도(성령 간청기도)”, “성찬축성문”, “기념”, “봉헌”, “전구”와 “마침영광송”이다.

4.2.5 감사송

모든 감사기도는 사제와 공동체 사이에 나누는 세 단계의 기도 대화로 시작하며 이 대화는 감사송뿐만이 아닌 감사기도 전체와 관련되어 있다.

먼저 하느님의 도움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기에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기도원의가 올려지면 공동체는 자신의 응답으로 “또한 사제와 함께”를 간청한다.

성찬 전례의 중심인 성체께 나아가기 위해 신적 신비에 대한 내적인 개방과 준비가 요구되며 또한 우리를 붙잡는 모든 사슬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여 “마음을 드높이”라는 말을 외친다.

공동체의 환호인 “주님께 올립니다”는 마지막 교송기도인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에로 이끈다. 창조와 구원에서의 하느님의 크신 업적에 대한 기념은 감사에로 인도한다.

이러한 감사 권고에 공동체는 초세기에 자주 사용했던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라는 환호로써 동의한다. 세 단계의 기도 대화에 이어서 첫 번째의 찬미와 감사 기도인 감사송이 따라온다. 감사송은 하느님과 공동체 앞에서 “사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구원의 업적 전체나 또는 그날과 축일 또는 전례시기에 적합한 구원활동의 특별한 신비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한다.” 그러므로 감사송은 감사기도의 중심 요소인 감사를 담고 있으며, 그것은 선행하는 대화의 마지막 말인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에서 정당성을 가진다.

모든 감사송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도입, 그때마다의 미사에서 특별히 감사하는 구원업적에 대한 찬양 표현, 그리고 공동체 노래인 “거룩하시도다”에로의 인도이다. 모든 감사송의 중간 부분들을 종합해본다면 비록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완전한 개관이 밝혀지고 그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적 삶을 비추는 신앙 자산 전체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선포이다.

감사기도 제4양식은 교체될 수 없는 고유의 감사송이 있으며, 제1양식과 제3양식은 고유감사송이 없어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고, 감사기도 제2양식은 고유감사송이 있지만 다른 감사송을 자유로이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다.

4.2.6 거룩하시도다

감사송의 마지막 부분은 성찬 전례 공동체가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주의 영광을 찬송하는 거룩하시도다로 인도한다. “거룩하시도다”는 두 군데 성서 구절에 긴밀히 의존하는 두 가지 본문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이사야 예언자의 부르심과 연결되어 있다.

예언자 이사야는 환시를 통해 어좌에 앉아 계신 하느님과 그 주의에 여섯 날개를 가진 세라핌 천사가 시립하여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야훼 그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시다(이사 6,2-3)”하고 서로 주고받으며 외치는 것을 본다. 둘째 부분은 마태오 복음이 제공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때에 군중이 외쳤던 환호를 인용한다.(마태 21,9)

첫째 부분은 그 영광이 하늘과 땅에 가득한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올리는 경배이다. 둘째 부분에 나오는 “호산나”라는 히브리말은 원래 의미로는 “도와주소서”를 의미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하느님께 올리는 환호성과 찬양의 외침이 되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라는 말과 결합하면 이는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을 분명히 상기시킨다.

이 경배의 외침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인 하느님의 아들에게도 적용된다. 그분의 오심은 성찬례 안에서 구원을 가져오는 현재가 된다. 그분은 오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미구에 오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에도 오신다.

공동체 전체는 천상 천사들과 성인들과 결합되어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든지 읽어야 한다. 이 환호는 감사기도의 일부로 모든 교우들이 사제와 함께 바치는 것이다. ‘거룩하시도다’는 세 번에 걸친 ‘거룩하시도다’ 환호로 시작하고 내용이 ‘거룩하시도다’에 상응하는 성가를 통해서만 대체될 수 있다. 중세 말엽에 상당히 긴 다성부 곡들이 생겨났을 때 사제는 ‘거룩하시도다’가 노래 불리는 동안 감사기도를 낮은 목소리로 계속했고, 성찬축성문과 거양성체까지 노래에 묻히는 경우도 있었는데 1600년 주교예식서는 이를 분리하도록 규정하였다.

감사기도 제1양식과 달리 새 감사기도들은 ‘거룩하시도다’가 그 다음기도에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2양식에서는 짧게 한 문장으로 이어받으나 3양식에서는 생명과 은총으로 채워진 창조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모임을 관련시키고 있으며 4양식에서는 하느님 찬미가 계속 소상하게 이어진다.

4.2.7 축성기원

축성기원은 사물이나 사람 위에 하느님, 특별히 성령이 임하심으로써 거룩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감사기도 안에서 이 기원은 빵과 포도주의 변화를 간구하는 간청으로 감사기도 2, 3양식은 거룩하시도다 이후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1양식은 비록 성령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성찬 축성문 앞에서 이 기원을 알아차릴 수 있다. 4양식에서는 구원사에 대한 긴 찬양과 성령의 파견에 대한 언급이 있고 나서야 이어진다. 하느님은 성령을 통하여 변화의 기적을 완성하시는 분이시다.

이렇게 이해된 축성 기원은 인간의 행위나 능력이 성찬의 예물을 만들어 낼 듯한 주술적인 혐의를 없애준다. 즉 사제는 교회의 파견 안에서 말하는 감사기도를 통해서 신적 권능의 일을 위한 전제조건만을 행하는 것이다.
서방교회의 축성 기원문의 마지막 말들은 예물 위에 두 손을 펼치고 축복 표지의 십자표를 긋는 축복의 손짓을 요구한다.

4.2.8 성찬 제정 및 축성문

성찬 제정 및 축성문은 예수의 최후만찬 때 성체성사의 기원과 가장 밀접히 관련되어 있는 감사기도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 부분이 성서와 일치하지 않는 것은 1세기의 전례 문헌들이 유동적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와서야 상이한 성서의 성찬 제정 및 축성문과 부분적으로 일치했으며 초세기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고정된 문장 구조나 용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상의 일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종 바오로 6세는 성찬 축성문들이 동일하기를 특별히 원하셨다. 서방 교회 전통과 상응하여 미사경본 총지침도 성찬 축성문은 고유한 축성 요소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해석을 확고히 한다. “그리스도께서 최후만찬 때에 제정하신 제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로써 이루어진다(55항 d)

가장 오래된 축성된 예물의 거양은 로마 예식에서는 오늘날에도 통상적으로 하는 마침 영광송을 바칠 때 이루어졌다. 오늘날 통상적으로 하는 성찬 축성문이 끝난 후 바로 성체를 거양하는 관습은 1200년경에야 비로소 생겨났는데, 이 예식의 동기는 축성된 성체를 바라보는 데서 특별한 축복을 기대했던 중세기 신앙인들의 강렬한 현시 욕구에 있었다.

성작 거행은 훨씬 후에 생겨났고 비오 5세 미사경본(1570)이 나옴으로써 일반적 규정이 되었다. 성찬 제정 및 축성문 직전과 성체와 성혈의 거양 동안에 종을 울리는 관습은 의무규정은 아니지만 허용된다. 거양전과 후에 사제의 경배의 몸짓은 1500년경에 와서 시행되었고 현재는 거양 후의 경배만을 알고 있다.

라틴어 미사경본에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너희와 많은 이들을 위하여” 흘린다고 표현된다. 하지만 성서의 정언과 교회의 신앙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보편적이며 자신의 피가 모든 이를 위해 흘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의도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볼 때, 그리고 히브리어와 아라메아어의 언어적 특성상 ‘모든’이란 단어가 없고 ‘많은’이라는 단어를 ‘거대한 무리’, ‘전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을 볼 때,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담은 ‘모든’이란 말로서 ‘많은’을 해석하여도 정통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 로마 미사경본이 “많은”이라는 단어를 보존했다면 이 제한적 표현은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의도보다는 그리스도 제사의 드러나는 효과를 더 주시한다는 점에서 정통신앙에 충실한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 최후 만찬 때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히브리-아라메아 언어 사용관습에서는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치는 바로 나다”라는 뜻이 된다. 즉 피와 몸이 곧 인간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는 당신의 사랑과 헌신을 통하여 식사 예물이 빵과 포도주 안에 현존하신다. 그러한 방법으로 그분은 제자들을 자신의 사랑과 희생에로 받아들이고자 하시며 자신도 그들로부터 받아들여지기를 원하신다. 성사적인 식탁에서 그분은 제자들과 그리고 우리와 하나가 되고자 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빵과 포도주 안에 그분이 현존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가파르나움에서 하신 설교에서 드러났던 오해처럼 예수님 육신의 한 조각을 먹고 육신의 고동치는 피 한 모금을 마신다고 생각하여 신앙의 어려움에 봉착했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중세기에는 이를 실체 변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다 .즉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 모든 속성과 더불어 보존되고 변화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체 즉 빵과 포도주의 본질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성찬의 신비를 의미변화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하려 하는 새로운 신학의 흐름이 있다. 빵과 포도주는 자연적 의미로는 인간을 위한 음식물이며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목적을 가진다.

성찬의 변화에서 빵과 포도주는 지금까지의 관계 구조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한 매개물이 되며 그럼으로 이 자연적 음식물은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가진다. 결국 이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로 인해 표지가 바뀌며 우리는 신앙 안에서 이를 알아보고 받아들인다.

의미변화는 단지 음식의 본질변화가 아니라 성찬례 공동체를 표지하는 신앙적 사건 전체의 본질변화를 의미한다. 성찬은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친교를 드러내는 효과적 표지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해결 시도들로 모든 의문에 만족하는 답은 되지 못할 것이다. 성체성사는 인간의 이성으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신앙의 신비”로 남아 있다.

4.2.9 기념환호

과거에는 거룩하시도다 후부터 주의기도 전까지 모든 문장이 사제에게 유보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성찬 제정 및 축성문 후에 사제는 “신앙의 신비”라는 말로 기념환호를 인도하고 공동체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응답한다.

이 본문은 고린토 전서 11,26에 의존하는 것으로 공동체는 감사를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위대한 구원 업적 곧 파스카 신비를 찬양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신비의 잔치는 공동체 전체의 일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진다. 즉 그리스도 구원활동 잔치가 공동체 전체의 일이라는 것이다.

4.2.10 기념

모든 감사 기도문 안에는 주님의 몸과 피의 만찬을 앞으로도 “그를 기억하기 위해”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반복된다. 공동체의 기념 환호가 파스카 신비와 재림을 찬양한다면 이것은 아남네시스라는 그리스어로 표현되는 이어지는 기도 안에서 다시 한 번 이루어진다. 우리가 이 구체화된 기념을 믿는 마음으로 함께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감사와 희망을 새로이 단단하게 하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현존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사랑을 언제나 새롭게 만나게 된다.

4.2.11 봉헌기도

봉헌기도는 감사기도 안에서 기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이어지는데 부분적으로는 제사를 받아들이시기를 간청하는 간구가 결합되어 있고 이 부분은 감사기도 제1양식 안에서 가장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봉헌기도가 가장 간략하게 축약된 것은 감사기도 제2양식으로 기념이 한 문장 안에 결합되어 있으며 3양식은 무엇보다 그 안에 성찬례의 “거룩하고 살아있는 제사”가 현존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제4양식은 봉헌기도 및 기념과 관련하여 참여자 모두가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와 그 지체로서의 모든 그리스도인은 말로서가 아니라 천상 아버지의 뜻을 따른 희생 안에서 그리스도의 바침과 일치되어야 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 각자의 자기 희생, 곧 “그리스도 안에서의 산 제물”은 그러므로 봉헌기도 안에서 특별히 그 자리를 차지한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자기희생을 요구하였는데 “이것이 곧 여러분의 정신적 예배입니다” 이것이 성찬례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성찬례의 본질적 요소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적지 않는 공동체 지체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아주 엄하게 질책하면서 성찬례에 참여하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자신을 “거룩하고 산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신을 남김없이 하느님 뜻에 맡기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안에서 성장하며, 자기 삶의 십자가를 그리스도와 함께 지고 가며, 자기의 영혼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이 모든 것은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자기헌신을 닮는 것이다.

이 내적 변형을 성찬례와 관련시켜 빵과 포도주의 변화에 뒤따라야 하는 참여자의 내적 변화라고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4.2.12 일치기원

일치 기원은 변화된 예물, 곧 성체를 받아 모신 참여자들이 그리스도와 더 밀접히 결합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4.2.13 전구

감사기도는 첫째로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감사드리는 찬양기도이다. 그래서 미사 개혁 준비 과정에서 감사기도 안에 있는 보편 지향 기도들을 완전히 생략하려는 원의가 여러 번 표명되었던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말씀의 전례 안에도 보편지향기도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승된 감사기도(제1양식: 로마전문)에서 전구로 일관되었기에 감사드리는 찬양이 최소로 축소되었던 것에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옛 전례들 안에 세워진 전승은 이러한 삭제 원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 간청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보편 지향 기도의 중복 의도가 아니라, 일치의 표현이다. 이들은 보편 지향 기도에서 규정한 것처럼 “위정자와 세상 구원”이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첫째로 전체 공동체와 성찬 공동체로서의 교회를 위하여 특별히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 이유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교 기도의 일반 규정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한 것처럼 즉시 의식적으로 깊이 신뢰하는 간청을 하느님께 향하지도 않으면서 긴 감사의 기도를 하느님께 올릴 수 없으며 간청이 없는 감사기도는 단지 하나의 의무를 해치운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생기게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구원은 인간이 이 땅위에서 감사드려야 하는 동안 결코 완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우리의 전구자로서 성부 곁에 현존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감사기도 안에 있는 전구들은 자신의 제사로 말미암아 현양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전구에 교회가 참여하는 것이다. 감사기도 제2양식의 전구들은 여기서 다른 감사기도들 안에 있는 형태들을 살펴보기 위한 간청하는 사상의 본보기로 불려진다.

첫 번째 전구는 하느님 백성 전체를 위한 간청이다. 특히 교회의 감독자들과 교회 안에서 직무에 불림을 받은 모든 이들을 위한 간청이다 .특정한 날들과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경우에는 특별 호명자들의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다. 감사기도 제1양식은 이 간청을 “거룩하시도다” 후의 첫 번째 기도에서 바치고 있으며 제3양식은 이 간청을 사방에 흩어져 있는 모든 이에게로 확장시키고 제4양식은 원천적으로 “진심으로 주님을 찾는 이도 모두” 포함시킨다.

두 번째 전구는 “부활의 희망 속에 고이 잠든” 죽은 형제 자매들에게 적용된다. 특정한 고인을 위한 미사에서는 고유기도에서 그 이름을 첨가시킬 수 있다. 제1양식에서는 죽은 이를 기억하는 부분에서 사제는 그날 특별히 생각하고자 하는 죽은 이들을 위해 침묵기도 시간을 짧게 가질 수 있다고 분명히 말하며 이 침묵의 기억은 다른 감사기도에서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제4양식은 “주님만이 그 믿음을 아시는 죽은 이들도 모두” 생각하는 것으로 확장시킨다.

하느님의 보편 구원의지는 우리가 직무상 기록할 수 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다. 죽은 이들을 생각하는 부분에서의 기도 원의는 “행복과 광명과 평화의 나라로”(1양식) 인도하고,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뵙는 나라로(2양식) 받아들여주시기를 “당신 나라에서 식탁에 앉아 주님의 영광에 받아들여지는”(3양식) 것이다. 위령미사인 경우 위로기도 본문이 따라온다.

계속되는 전구는 성찬례 참여자들에게 적용되며 제3양식과 제4양식에서는 이 간구가 짧고 포괄적인데 비해 제1양식에서는 매우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여기서는 첫째 단락에서 “여기 모인 모든 이”를 특별히 언급하며 죄를 지었음에 대한 고백과 용서의 간청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감사하는 찬미의 감사기도의 틀 안에서는 잘된 것으로 여길 수 없다.

성인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특별한 형태의 전구는 우리가 성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성인들은 바로 이 성찬례 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는 공동기도자요 전구자들이라는 신앙적 의식에서 나온다.

4.2.14 마침 영광송

모든 감사기도는 삼위일체 찬송, 곧 장엄 영송으로 끝맺는다 .이 때 사제는 성반과 성작을 약간 들어올리고 노래하든지 말한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교 기도의 전형적인 기본형태”인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드리는 찬미 양식을 보게 된다.

예수님의 지상 생에는 성부를 들어 높이는 것이 전부였으며 이것은 감사기도를 통하여 성사적으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희생제사 안에서 그 정점을 이룬다. 그리스도와 맺는 긴밀한 일치 안에서 우리 또한 성부께 찬미와 영예를 바칠 수 있으며 이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동체의 응답인 “아멘”은 단지 마침 영광송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감사기도 전체와 그 안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제사 및 그와 연결된 교회의 자기 제사까지도 관련된다. 그러므로 이 “아멘”은 감사기도에 대한 공동체측으로부터의 중요한 기여이다.

4.3 영성체 예식

그리스도의 성사적 현존과 이에 결부된 교회의 자기제사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의 기념에 이어 그분의 몸과 피의 기념 잔치인 영성체가 따라온다. 영성체 안에서 성찬례 거행과 실제적인 성찬례 참여가 완성된다. 영성체는 잔치 전체의 본질적 부분이자 두 번째 정점이며 원래의 목표이다. 성찬제정 및 축성문 정점에 받아 ‘먹어라’라는 명령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성찬례의 목적과 의미는 그리스도와 서로간에 이루는 일치에 있기에 성체와 성혈로 바뀌는 것에만 만족한다면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목적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한때 사람들이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만 성체를 모셨던 과도한 공경이 있었고 그 두려움이 증대하여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도록 규정하기에 이르렀었다. 비오 10세의 사목적이며 전례적인 노력들은 성체 신심을 건전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영성체라는 단어는 원래 상호 염려, 공동 소유를 의미한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교회의 공동체를 위해서 사용하였으며, 거룩한 잔치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와 친교로서 성서 말씀의 중심 의미에 이르렀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이는 내 안에 머물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뭅니다”(요한 6,56) 가장 오래된 성찬례에 대한 기술들 안에는 거룩해진 제물을 받아 모시는 것은 마침 영광송에 바로 연결되었으나 일찍부터 몇몇 준비 예식들이 생겨났다.

4.3.1 주의 기도

주의 기도는 이미 4세기에 수많은 전례 안에서 나타나는데 그 신학적인 역할은 “제사 신비의 완성으로서 뿐 아니라 영성체를 위한 준비로서”, “제사행위와 그를 통해서 가능해진 그리스도와의 식사 공동체 사이의 고리로서” 설명한다.

주의 기도를 인도하는 초대문은 아빠를 신뢰하는 아이 같은 믿음으로 한없이 크고 전능하신 하느님을 부른다는 것이 자명한 일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주의 기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하느님과의 관계를 선사하시고 이 기도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신적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이에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감히 부를 수 있다.

주의 기도의 처음 세 가지 간청은 내용상 앞의 감사기도와 관련시켜 볼 수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이름, 곧 하느님의 본질이 그분의 거룩함 안에서 인정되고 찬양 받았으며 그리스도의 제사를 통해 하느님께 “모든 영광과 영예가 표해진” 것이다. 여기서 파스카 신비의 현재화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준비된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는 순종으로 아버지 뜻에 따르는 최고의 순종이 바쳐진 것이다

주의 기도가 미사전례에 받아들여지는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 것은 빵과 용서를 비는 간청이다. 일용할 양식을 비는 간청 안에는 인간이 생명에 이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음식과 그 밖의 많은 것들이 삶의 가능성과 활동의 토대로서 이에 속한다. 죄의 용서를 비는 간청 안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체를 영하는 하나의 준비를 보았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있어 이 간청은 영성체 전에 필요한 얼굴 씻음과 같다.

뒤따라오는 평화 예식에서도 나타나는 것처럼 형제와 화해하라는 것은 미사를 위한 하나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이웃과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용서와 화해를 통해 평화를 심는 것은 분명 쉬운 과업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은 조금의 예외도 허락하지 않는다. 적어도 화해를 위한 진심 어린 시도는 해야 한다.
주의 기도는 신자들이 주례자와 함께 자국어로 기도하거나 라틴어로 노래하거나 또는 지역의 교회 권위가 결정하면 자국어로 교회 권위가 인준한 곡에 맞추어 노래부를 수 있다. 주의 기도는 공동체로 하여금 특별한 신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여기서 미사 전례의 적극적 참여는 그 정점에 이른다.

4.3.2 부속기도 및 환호

부속기도는 주의 기도의 마지막 청원을 다시 끄집어내어 계속한다. 사제는 평화와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혼란과 죄에서 보호해 주시기를 기도하는데 이것은 세상살이와 동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지상 어디선가 “평화”는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으며 가치와 이념의 홍수 속에서 혼란이 일고 진리와 정의로부터 등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이 청원들은 폭넓은 현실을 담고 있다. 이 청원들은 모든 사람과 관계된다.

종말론적 종결 문장으로 인해 개혁전의 부속기도보다 분량은 줄었지만 내용적으로는 풍요로워졌다.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구세사 전체가 완성되기에 이 마지막 그리스도 사건을 깨어 기다리는 것은 신약성서 안에서 항상 되풀이하여 요구되며 그리스도교적 삶의 근본 태도이다.

사제가 바치는 부속기도에 연결된 공동체의 환호는 그리스도교의 “원기도”이다. 역대기 29장 11절에 그 뿌리를 갖고 있으며 1세기 말경의 작품인 『디다케』 안에 벌써 자리하고 있다. 옛 로마 경본은 이 찬사를 갖고 있지 못했지만 미사 전례 개혁이 이 찬사를 로마 경본에 받아들임으로써 미사경본은 가장 오래된 그리스도교 기도 자산을 다시 갖게 되었다. 아울러 이 찬사는 마틴 루터가 사용한 신약성서 그리스어본에 근거하여 개혁교회들이 이 기도를 항상 주의 기도와 연결시키기에 교회일치 방향에 작은 한 걸음이 된다.

4.3.3 평화 예식

평화예식도 성체를 모시기 위한 직접적인 준비 예식에 속한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 제단에 예물을 바치는 것보다 앞서야 한다고 분명히 요구하시기에 말씀 전례와 보편 지향 기도 이후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그레고리오 1세 교종이 이 예식을 오늘날의 자리로 옮겼다.

평화예식은 평화의 기도, 공동체를 위한 평화의 기원, 평화의 표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a) 평화의 기도로 이끄는 기도 초대문은 요한 14,27에 나오는 예수의 평화의 약속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평화는 전쟁이나 싸움이 없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로 예언자들에게는 메시아의 구원을 뜻하며 육체적, 정신적 형태의 포괄적 평안, 인간과 하느님 사이, 그리고 사람들 서로간의 완전한 조화도 뜻한다.
평화의 기도 자체는 성부께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향한다.
b) 공동체를 위한 평화의 기원 때에 사제가 두 팔을 벌리는 것은 집합적인 포옹으로 기도 초대 때의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c) 평화의 인사를 하는 방법은 지역의 풍습이나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 주교회의가 결정하게 되어 있다. 사제 자신은 제대에서 봉사하는 사람들과 평화의 표지를 나눈다.

4.3.4 빵 나눔

평화 예식후 사제는 큰 성체를 여럿으로 쪼갠다. 보통의 큰 빵을 신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작은 조각으로 쪼개야만 했던 초세기에서는 실제적인 필요에 의해서였고 또한 예수님 역시 최후만찬 때 그렇게 하셨다. 빵을 쪼개는 것은 사도들 시대 그 자체로 미사성제를 지칭하였던 만큼 하나인 빵을 나누어 먹는 모든 사람의 일치가 효과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난다.

12세기 제병이 동전 크기로 일반화되었을 때 빵 나눔은 폐지되었으며 오직 사제만이 사제용 대제병을 세 조각으로 나누어 가장 작은 조각을 성작에 넣었고 다른 두 조각은 영성체 때 사제가 모두 영함으로 빵 나눔의 깊은 상징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바오로 6세 교종 하에서의 미사 개혁은 사제가 하나 또는 여러 개의 큰 제병을 작은 조각으로 나누고, 적어도 그 조각들을 신자들에게 건네줌으로써 빵 나눔을 복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영성체자가 많거나 다른 사목적 이유에서 작은 제병을 써야 한다면 그것도 허용된다.

교회가 모든 영성체자들이 그때그때의 미사에서 축성되었던 성체를 영하는 것을 크게 중요시한다. 원래 축성된 성체를 감실 안에 보관하는 것은 중환자에게 항상 노자성체를 수여할 수 있는데에만 그 의미를 갖고 있다.

4.3.5 섞음 예식

섞음 예식은 이 예식이 교종이나 주교들이 특정한 축일들에 가까운 성당의 사제들에게 “누룩”이라고 불리는 축성된 성체 한 조각을 보냈던 옛 로마 풍습에 기인한다고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한다. 사제들은 자기들의 다음 미사 때 교종과의 형제적 일치의 표지로 그리고 같은 그리스도 제사임을 나타내기 위해 이 조각을 성혈 안에 넣었다.

이외에 많은 설명들이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이 예식을 현양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교리 교육적 설교학적 설명에는 일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성찬례 안에서 피와 육신이 서로 분리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으로서 우리를 만나신다.

4.3.6 하느님의 어린 양

빵을 나누어 성작에 담긴 성혈에 섞는 예절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이들의 참여하에 ‘하느님의 어린양’을 원칙적으로 노래부르거나 아니면 분명하게 말한다. 이 노래는 빵 나눔이 끝날 때까지 자주 반복할 수 있고 마지막 외침은 ‘주님, 평화를 주소서’라는 말로 마친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그리스도의 명칭은 신약성서에서 나타나며 이것은 이사야 예언자에 의존한 것이다.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부활절 어린양에 비유한다.
이 공동체 노래는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으며 현양되신 주님으로서 자신의 희생제물과 함께 제대 위에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드리는 찬미노래다. 그분은 우리에게 자비와 평화를 선사하는 신적 힘을 가지고 계시다.

4.3.7 준비기도와 초대문

사제가 하는 두 개의 침묵 준비기도가 따라오는데 첫째 기도는 다시 한 번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기시키고 다른 청원들을 연결시킨다. 둘째 기도는 부당하게 성체를 모시는 것에 대한 바오로의 경고와 결부되어 있다. 신자들도 침묵하는 가운데 이 준비기도에 함께 해야 한다.

장궤를 한 후 사제는 나뉘어진 성체를 성반 위에 약간 들어올리면서 요한 1,29에 나오는 말을 하며 사제와 공동체는 미사 전례 상황에 어울리는 가파르나움의 백부장의 말을 한다. 이것은 겸손과 온전한 신비로 뭉쳐진 말이다.

4.3.8 사제의 영성체

사제는 첫 번째로 성체와 성혈을 영하나 공동집전자들이나 부제 혹은 성체 분배자가 제대에 있으면 그들에게 먼저 성체를 나누어주고 동시에 성체를 영한다. 일부 사람들은 선한 주인은 마지막에 영성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런 실천은 역사적이고 교회일치적인 관점에 반대되며 신학적 숙고와는 모순된다.

신학적 숙고는 사제의 상위가 구별되는 특권으로 보지 않고 공동체 지도자로, “모든 이들의 봉사자”로서 그 직책에 맞추어져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

영성체는 그 내적 의미로 보아 그리스도 제사에 한몫을 차지하는 것으로 그 제사는 성부께 향한 그리스도 자신의 희생 안에서 받아들여진다. 영성체자도 자신의 고유한 희생으로 그리스도의 제사가 바쳐진 성부와 결합되어야 한다.

성체를 영하는데 있어서 사제의 상위는 그가 제사를 준비하는데 있어 그리스도의 초대를 첫 번째로 따르고 자신이 모범을 보임으로써 공동체에 솔선 수범한다는 표현이다.

4.3.9 신자들의 영성체

영성체송의 의미는 영성체자들의 영신적 일치를 함께 노래하는 가운데 표현하며 성체를 모시기 위해 나아갈 때 마음의 기쁨을 드러내고 형제적 결속감을 심화시키는 데 있다. 이는 로마 성가집의 응송이나 시편을 사용할 수도 있고 주교단에서 인준한 다른 성가를 사용할 수도 있다.
영성체 분배시에 사제는 영성체자들에게마다 성체를 약간 들어올려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고 그들은 “아멘”으로 응답한다. 과거보다 크게 축약되었으면서도 본질적인 성찬례 신앙고백을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성찬 축성문인 “이는 내 몸이다”의 전수인 것이다.
신자들의 “아멘”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주님의 현존을 믿는 신앙의 긍정이자 이 희생에 자신을 결합시키려는 준비의 긍정이다. 이 “아멘”은 또렷하고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긍정이 되어야 한다.

4.3.10 손으로냐 입으로냐?

9세기까지 거룩한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성체를 신자들의 손바닥에 놓아주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한때 받아 모시는 손을 미리 흰 천으로 덮기를 요구하기도 했다. 공경심과 거룩한 두려움이 점점 더해 가서 마침내 9세기에 와서 성체를 혀에 놓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나라에서는 다시 손으로 받아 모시는 영성체를 허락하도록 노력했으며 결국 혀로 받는 양식과 손으로 하는 영성체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양식으로 인정되었다.
두 가지 영성체 양식에 마땅한 경외심이 수반되어야 한다. 영성체하는 사람의 태도와 몸짓을 보고 미사 전례에 함께 한 비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깊은 신비가 여기서 이루어진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두 양식이 똑같이 적합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므로 주교들은 이로 인해 논쟁문제를 만들어 내는 것을 금한다. 이것은 바로 지금 성체를 영함으로써 심화되어야 하는 일치와 사랑의 정신을 위반하는 것이다.

4.3.11 신자들의 성혈 배령

성찬 제정 및 축성문과 성찬례의 약속 말씀에서 성작의 성혈을 마시는 것은 축성된 빵을 먹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하다. 처음에는 평신도의 성혈 배령도 그리스도교의 일반적인 관례였으며 13세기까지 로마-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통상적이었다.

이 관례가 사라진데는 거룩한 피를 흘림으로써 중대한 과실을 범할 수 있다는 불안의 지나친 염려와 변화된 빵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당신 피와 더불어 계시다는 중세 신학의 인식이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후스파의 양형 영성체가 구원에 필요하다는 교리에 대한 반발로서 1415년 콘스탄틴 공의회 때에 “평신도 성혈 배령”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부터 다시 원래 관례에로의 접근이 이루어 졌으며 1970년에 나온 훈령에서는 주교회의에 전권을 주어서 몸과 피의 배령을 결정하게 하였다. 이러한 두려움을 해제시킨 이유를 “양형 영성체는 표지라는 이유에서 가장 완전한 영성체 형태이다. 양형 영성체로써 성찬의 표시가 나타나고 주님의 피로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 주님의 뜻이 더욱 명백히 표현되고, 성찬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종말론적 만찬의 관계도 명백히 표현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성혈배령의 방법에 관한 「총지침」은 네 가지 가능 형태를 보고 있다.
a) 성혈을 성작에서 직접 마시는 방법 b) 성체를 성혈에 적셔서 영하는 방법
c) 흡입기를 사용해서 영하는 방법 d) 작은 숟가락을 사용하는 방법
첫 천 년 동안에는 동방과 서방 교회에서 영성체를 서서 하는 것이 상례였다. 12세기가 흐르는 동안 장궤하여 영성체하기 시작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다시 서서 영성체하는 풍습이 생겼으며 1967년의 훈령은 무릎을 꿇거나 서서 영성체하는 것을 신자들의 자유에 맡겼다.

4.3.12 같은 날 두 번의 영성체

하루에 한번만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 수백년 동안 내려온 풍습이었으나 1967년 「성찬례 신비」라는 훈령을 통해 신자들에게 하루에 두 번 영성체할 수 있는 세 가지 경우가 허용되었다.
a) 토요 특전미사 내지는 의무 대축일 전날 저녁에 미사 참여 의무를 채우고자 할 경우에는 그날 아침에 이미 영성체했더라도 다시 영성체할 수 있다.
b) 부활 성야 또는 성탄 밤미사에서 영성체했더라도 부활 낮미사와 성탄 낮미사에서 다시 영성체할 수 있다.
c) 성 목요일의 성유 축성미사에서 영성체했더라도 저녁에 거행하는 주의 만찬미사에서도 영성체할 수 있다.
하루에 두 번 영성체할 수 있는 규정은 1973년의 「헤아릴 길 없는 사랑」이라는 훈령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신자들이 영성체를 했거나 미사를 지낸 사제가 다음의 미사를 참여하면 그들에게 다시 한번 영성체가 주어진다.

1. 세례, 견진, 병자, 서품, 혼인 성사 수여와 결부된 미사와 첫영성체 미사
2. 성당이나 제단 축성과 결부된 미사, 수도서원미사, 선교사 파견미사
3. 죽은 이를 위한 사망일 미사, 부고 받은 후 첫미사, 장례미사, 사망 일주년 미사
4. 성체성혈 대축일의 중심미사 및 같은 날 사목적 공식 방문일에 주교좌나 본당에서 집전되는 중심미사, 또 수도회 최고장상이 수도원이나 참사회를 공식 방문시 장상 자신이 집전하는 미사
5. 국제 및 전구, 또는 지역 및 교구 차원의 성체대회나 마리아 대회의 중심미사
6. 회합이나 성지순례를 위한 중심미사
7. 노자성체 수여 미사 및 이 미사에 함께 하는 병자의 가족 및 친지
8. 위에 언급한 경우 외에도 추가로 교구장들은 이 훈령에 따라 재차 영성체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그때마다 같은 날 두 번 영성체할 수 있도록 허락할 수 있다.

4.3.13 성찬례 공심재

초기 그리스도교는 이미 “아무 음식도 먹기 전에” 성체를 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세 후기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다음날 아침에 영성체하기를 원하면 전날 자정부터 음식이나 음료를 멀리하는 규정이 생겨났다.

공의회 이후는 다음의 규정들이 적용된다.
건강한 사람은 성체를 배령하기 한 시간 전에 물을 제외한 어떤 음식이나 음료도 먹거나 마셔서는 안 된다. 비록 침대에 누워 있지는 않더라도 병원이나 집에 있는 병자들과 고령으로 인해 집을 떠날 수 없거나 양로원에 사는 노인들, 누워 있지 않더라도 미사를 지내거나 성체를 영하는 고령의 사제나 환자 사제들, 한 시간의 공심재를 지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환자나 노인들을 간호하는 사람들, 마찬가지로 그들과 함께 성체를 모시고 싶어하는 가족들에게는 이 규정이 15분으로 축소된다.

공심재를 지키는 이유는 “성사의 품위를 알고, 오시는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도록 일깨우기 위해서 가능한 한 성체를 배령하기 전에 침묵과 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의 위험에 처해서 노자성체를 모시는 사람에게는 공심재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4.3.14 성체 분배 협조자

교회 초창기에는 신자들이 성찬례가 없는 날 집에서 성체를 영하거나 병자들과 갇힌 이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성찬례 빵을 주어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 풍습이었으며 후세기에도 위급한 경우에는 언제나 평신도에게 성체를 병자들과 갇힌 이들에게 전해주도록 위임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절박한 사제 부족 현상을 고려하여 많은 나라에서 특별한 성체 분배자 임명이 점차 확대되었다.
1969년 이후부터는 여자들에게도 허용되었다. 교구장들은 적합한 평신도에게 개별적인 경우나 제한된 시간뿐 아니라 항구적으로도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 허락을 주는 권한을 갖는데 이 전권은 병자에게 성체를 노자성체로서도 모셔가고 자신에게 수여하는 것도 포함한다.

또한 1976년부터 성체 분배자들은 성체 분배가 있는 말씀 전례를 인도하고 성체를 성체함이나 성광 안에 모셔 공경하기 위해 제대 위로 옮길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전제조건으로는 사제, 부제, 시종자들이 없거나 또는 영성체자가 너무 많아서 미사집전이나 미사 외의 성체 분배가 너무 오래 계속되어야 하는 경우들이다. 어떤 사람의 위임으로 다른 사람에게 놀라움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결정되지 않기 위해 이 위임식은 신자들에게 알려져야 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집전하는 사제 자신이 적합한 사람을 성체 분배자로 위임할 수 있다.

이 위임에 앞서 타당한 준비가 교구나 지역 차원에서 선행되어야 한다. 이 준비는 실천적인 안내 뿐 아니라 성사신학 및 공통 사제직 신학에까지 미친다. 그리고 신학의 계속적인 교육 및 영적 심화가 이루어지는 많은 교구들이 있다.

4.3.15 성체용기 닦음

성체분배후 남아있는 성체는 감실로 옮기는데 몇 개만 남아 있으면 성체 분배자가 영할 수 있다. 성반을 먼저 닦고 포도주와 물, 또는 물만으로 성작을 깨끗하게 하고 사제는 그 씻어낸 물을 마신다. 그리고 성작 수건으로 성작을 닦는다. 이 작업은 제대 옆에서나 주수상에서 하며 사제는 받아 모신 성체와 관계되는 침묵기도를 바친다. 닦아야할 그릇이 많은 경우 미사 후에 닦을 수도 있다.

4.3.16 침묵기도, 감사 노래, 영성체후 기도

그릇을 씻고 나면 사제는 사제석으로 가고 신자들은 얼마동안 침묵 기도를 바치거나 찬미가와 감사 시편을 노래하기를 권고한다. 묵상과 감사기도의 시간은 받아 모신 성체신비의 의미에 잘 어울린다.

영성체 부분과 좁은 의미에서의 성찬례는 영성체 후 기도로써 끝난다. 영성체후 기도는 다른 주도자 기도 형식과 마찬가지로 크게 말하거나 노래한다. 이 기도는 받아 모신 선물에 대해 감사드리고 대개는 이 감사와 더불어 거행했던 신비의 영속적인 결실을 이 세상의 삶과 영원한 완성의 나라에서 간청하는 청원을 연결시킨다.

5. 마침 예식

5.1 사목적 훈화

영성체후 기도가 끝나면 본당의 공지사항이나 사목상의 훈화가 따라올 수 있다. 장황한 설명은 성찬례의 생생한 느낌을 깨뜨리는 심리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공지사항이 많으면 주보나 게시판을 이용해야 한다. 사제는 “성찬례 전체를 종결짓는 마침 말”을 하고 개인적인 작별인사도 연결시킨다.

5.2 강복

사제는 두 팔을 벌리고 공동체에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성서적인 강복 축원을 상기시키고 공동체는 이에 응답한다. 강복은 말로 하거나 노래로 할 수 있다.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기회에 장엄강복 양식 내지 ‘백성을 위한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장엄 강복 때 부제나 사제는 강복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도록 권유한다. ‘백성을 위한 기도’ 때 처음에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자는 권유가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강복 양식으로 끝맺는 기도가 따라오고 공동체는 “아멘”으로 응답함으로 이를 뒷받침한다. 백성을 위한 축복기도들은 사순시기의 평일미사에 연결되어 있던 것이지만 이제는 한 해 전체에 걸쳐 “미사나 말씀의 전례, 시간기도의 일시 끝 부분에 또는 성사 수여의 종결에” 사용할 수 있다.
강복 때 신자들의 십자성호는 미사경본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몸짓으로 보존되어야 한다. 십자가는 하느님 나라에서 온갖 축복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5.3 파견외침

이어지는 외침은 로마 미사경본에서 “Ite missa est(이떼 미사 에스트)”로서 부제 혹은 사제에 의해서 말해지며 글자 그대로는 “가시오 파견입니다”라는 뜻이다. 고대 이교도 시대에는 이 말로써 모임의 종결을 가리켰다.

“미사”라는 우리의 표현은 라틴어 파견 외침에서 기원한다. 파견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강복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은 “미사”를 성찬례에 참석한 사람에게 선사되는 강복으로 알아들었다.
“이떼 미사 에스트”를 라틴어 “missio(미씨오)”에 의거하여 파견으로 이해했는데 이 해석에서도 성체성사의 의미지향이 자리하고 있다. 하느님의 선물은 언제나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고자 하며 그러한 과업이 되기 때문에 하느님 은총의 총체적 개념으로 평화를 전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미사 전례의 마지막 말은 공동체의 “하느님 감사합니다”로서 이 말은 놀라우신 구원업적에 대한 크나큰 감사인 성찬례를 감사하는 가운데 회상하는 것과 같다.

5.4 제대 친구와 퇴장

사제와 부제는 미사 전례 시작때 인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작별의 인사인 친구를 하고 복사들과 함께 제대 앞에서 깊이 절하고 제의실로 돌아간다. 만일 감실이 제대 가까이에 있으면 장궤한다.(한국 주교회의는 장궤를 깊은 절로 대체하였다) 미사에 이어 다른 전례행위가 이어지면 모든 마침 예식은 생략된다.

파견외침을 종결로 보아 다른 행위를 금지하는 곳도 있지만, 사제의 퇴장 때 성찬례와 축제시기에 즐거운 여운을 주는 성가가 불리워 지거나 오르간 또는 다른 악기를 통한 음악적 종결을 하는 곳도 있다. 이 경우 일반적 규칙이 정립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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