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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대림 제 1 주간 목요일. 2006. 12. 7. 토평동.
이사 26, 1-6. 마태 7, 21.24-27.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똑같은 모습일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다를 것입니다. 주임신부님께서 지금 가정 방문을 하고 계십니다만, 같은 평수 같은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라고 말씀하십니다. 각자의 삶은 자신이 꾸며가는 것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죠.
‘이렇다’라고 명확하게 규정을 짓지는 못해도 그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면 주님을 따르는 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주님’을 외쳤느냐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으로 따진다면 우리 시대에 신부나 목사가 제일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혹시라도 우리가 그런 생각을 가질까봐 엄하게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마태 7, 21)
즉 입이 아니라 삶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역시 우리는 주님의 뜻을 왜곡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하루 종일 봉사했다고 해서, 내가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 온 시간을 투자했다고 해서, 사제가 하느님의 제단에서 하루 종일 미사했다고 해서, 수도공동체가 환자들을 돕는 영성을 가져서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생략이 되어 있지만, 주님께서는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한 사람과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낸 사람,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 꾸짖습니다. 그냥 꾸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러가라 하시며 범법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호통을 치십니다.(마태 7, 22-23)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하게 되어 있고,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게 되어 있지만, 거꾸로 그렇게 일을 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구역장으로 봉사를 하던, 교사로 봉사하던, 단체 안에서 봉사하던, 어느 기관에서 봉사하던) 하루 종일 봉사를 하면서도, 하루 종일 제대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도, 하루 종일 어려운 이를 도와주면서도, 그 안에 주님의 말씀이 없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없다면, 주님의 이름은 일하되 주님은 빠져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수께서는 집을 짓는 사람들을 예로 들어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잘 읽어야 하는 것은 이 사람들이 모두 집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누구는 집을 짓는데 누구는 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 삶을 살아가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바탕을 두고 집을 짓느냐는 것이죠.
평소에야 어디에 집을 짓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평화롭기만 한 것을. 그러나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 그 집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이것이 바로 시련이고, 멀리는 주님의 심판입니다. 우리가 지금 나무를 바라볼 때 겉으로 드러난 가지가 많다면 감탄할지 모릅니다. 집을 보면서 드러난 화려함에 놀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분명 화려한 성전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한 수 가르쳐주신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뿌리이고, 어디에 집을 지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부지런하다 해도, 똑같이 삶을 살면서 분주하다 해도, 그 바탕에 예수가 없다면 그 삶은 사라져버릴 것에 심겨진 나무, 무너져버릴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예를 드신 두 사람, 이 사람들도 역시 같은 말을 듣습니다(결코 한 쪽이 듣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실행하고, 한 사람은 실행하지 않는 것이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일단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이야 거론의 가치도 없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말씀에 기초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듣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실상 삶에서는 주님이 아닌 다른 것에 집을 짓고 있는지. 그리고 외관상 주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습관에서 오는 타성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평생을 사제로 산다 하더라도, 평생을 환자들을 돌보고, 봉사를 했다고 하는 사람도 타성에 젖은 습관 속에서는 참 하느님을 만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구 속에서 어느새 주님은 저쪽 구석으로 몰려버렸을 수 있습니다.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마태 7, 27)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 제 가슴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주님, 제 집이 당신 위에서 굳건하게 서게 하소서. 무너지지 않는 집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아멘. |
무너지지 않는 집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8. 오후 5: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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