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과 말
-박동진 신부-
이따금 글을 쓰게 되면서, 말로 표현하는 것을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함을 느낍니다. 또 말은 하면서도, 그것을 삶으로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글에 힘이 있는 것은 말을 잘 담아낸 덕분일 것이며,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은 삶이 온전히 배어 있는 덕택일 것입니다. 옥수수 농사를 짓다가 수확을 얼마 앞둔 때의 일입니다.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큰 수확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태풍으로 옥수수들이 다 쓰러졌습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옥수수를 따고 돌아오는데, 온통 흙투성이가 된 모습을 주교님이 보시고 “뭘 했기에 옷이 그러냐”고 하시기에 저도 모르게 “옥수수를 캐고 왔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주교님은 웃으시며 “옥수수도 캐는 거냐”고 하셨습니다. 땅에 쓰러진 옥수수를 따서 그렇게 답했던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주일, 도시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는데 미사 중 보편지향기도에서 신자들이 <매일미사>에 나오는 기도만 달랑 하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바로 옆에서 이웃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시름하는데, 말로만 포장되고 글로만 길들여진 우리네 속내를 그대로 보는 듯했습니다. 옥수수 농사라는 것이 내 삶에 없었더라면, 저 역시도 과연 ‘수해로 아파하는 농민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를 드렸을지 의문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글만 잘 쓰는 이’나 ‘말만 그럴듯한 이’를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들의 ‘주님’이라는 고백이 삶으로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삶이 바탕이 되면 절로 입이 열려 말도 나오고 글로도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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