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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제 1독서 : 신명 10,8-9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제 2독서 : 1코린 9,16-19.22-23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복 음 : 마르 16,15-20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 주님! 마지막까지, 오로지 당신의 사랑, 당신의 방법으로 비록 천국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도록 저를 이끌어주시고, 비록 지옥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당신께서 제게 사랑을 주셔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제가 기다린다 하더라도 오지 않을 수 있고, 이처럼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저는 사랑합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기도 중에서)
오늘은 가톨릭 선교 활동의 수호성인이며 인도 및 일본의 사도로도 불리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입니다. 성인은 스페인 출신으로 본래 이름은 하비에르이고 한자 이름은 방제각 사물(方劑各 沙勿)입니다. 1534년 성 이냐시오 등과 함께 예수회를 창설한 분입니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1506년 스페인 북부 나바라주에 위치한 하비에르 성의 성주인 야수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볼로냐 대학의 법학박사로 추밀원(樞密院) 의장을 역임하였고, 어머니는 그 지방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유복했던 집안은 하비에르가 6세 되던 해 아버지가 전쟁에 휘말리면서 몰락하게 되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등한시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노력 덕분으로 하비에르는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파리 생트 바르브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그는 1530년에 철학박사 및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 대학 교수로 임명되어 철학을 강의합니다. 그 당시 24세이던 프란치스코는 그곳에서 이냐시오 로욜라와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는데 “사람이 온 세상을 얻을지라도 영혼을 잃는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느냐?”는 이냐시오의 끈질긴 설득은 결국 프란치스코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했습니다. 그 후 이냐시오의 지도 아래 영적 훈련을 받은 프란치스코는 1534년 8월 15일에 예수회의 초창기 회원인 이냐시오를 비롯하여 파브르, 라이네스, 살메온, 보바디야, 시몬 로드리게스 등과 함께 파리 근교에 있는 치명자의 언덕인 몽마르트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평생 헌신할 것을 허원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회가 창설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영신 생활을 스스로 체험한 성인은 신학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537년에는 동료들과 함께 로마에 도착하여 6월 24일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539년 9월 3일에는 교황 바오로 3세(1534~1549)에 의해 구두로 예수회가 인가되었습니다.
그 무렵 동인도 제국을 식민지로 다스리던 포르투갈 왕 주앙3세는 교황에게 예수회 회원들을 인도에 파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교황은 이 제의를 받아들여 예수회에 요청하게 되었고, 1540년 교황 특사의 자격으로 하비에르 신부가 동양의 선교사로 선정됩니다. 1542년 동인도의 수도 고아에 도착한 하비에르는 사목 활동을 시작합니다. 교황은 그에게 네 번에 걸쳐 친서를 보내 그곳의 상황과 영성적인 현황을 보고하도록 합니다. 고아에 도착한 후 7개월이 되었을 때 이냐시오 총장은 하비에르 신부를 인도 남부 파라바스로 파견합니다. 그곳에서 성인은 헐벗은 이들과 함께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특히 어린아이, 젊은이, 하인들, 어부들에게 많은 사목적 관심을 보였습니다. 포르투갈의 원조를 위해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은 2만 명에게 진정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온종일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을 하였고, 트라방코레에서는 한 달 동안에 만 명이 넘는 원주민에게 세례를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말라카, 몰루카 제도로 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이러한 하비에르의 선교 결과에 고무되어 많은 예수회 회원들이 인도 선교를 위해 몰려듭니다.
1546년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는 말라카에서 일본인 고아 야지로를 만나 교리를 가르치고 ‘성부의 바오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 1549년 야지로의 고향인 규슈 남쪽 가고시마에 도착하여 일본 선교의 닻을 올립니다. 그 후 일본어를 배운 뒤 야지로와 함께 전교에 노력하였으며, 일본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게 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그곳의 영주들이 장차 있게 될 유럽과의 교역에서 상권을 얻고자 그를 환대한 것에 있었습니다. 1551년까지 약 2년 반 동안 일본에서 활동하며 하비에르는 야마구치를 비롯해 교토, 분고, 혼슈의 서부지역까지 진출합니다. 그동안 일본인들이 그를 천축승(天竺僧) 또는 천축의 성주로 이해하게 되자 그는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교리를 가르치고, 서양의 문물을 소개하면서 영주와 무사들로부터 많은 환심을 얻게 됩니다. 하비에르 신부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과 일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일본 천주교회의 정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549년 일본에서 쓴 첫 번째 편지에서 성인은 일본인들을 가리켜 ‘지금까지 발견한 민족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격찬합니다. 1551년 말 일본에서 입교한 베르나르도와 마태오와 함께 인도로 건너가게 되는데 베르나르도는 유럽 땅을 밟은 최초의 일본인이었다고 합니다.
하비에르 신부는 일본 전교를 토레스 신부와 페르난데스 신부에게 위임하고 그곳을 떠나게 되는데, 그가 탄 배가 인도로 가던 중에 심한 풍랑을 만나 중국 광동 산첸 섬에 표착하게 됩니다. 이 섬에서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중국의 사정과 그 곳에 억류되어 있는 포르투갈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인은 중국 선교를 결심하게 됩니다. 인도 고아로 돌아온 후 하비에르 신부는 예수회 초대 인도 관구장으로 임명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마음먹은 대로 1552년 4월 17일 중국 선교를 위해 세 명의 수행원과 함께 길을 떠나지만 합법적인 입국이 좌절되고 맙니다. 성인은 중국 내에 진출을 계획하고 노력하였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고 점점 기력이 쇠진하여 정신을 잃고 고통 속에 지내다가 1552년 12월 46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그의 시신은 임시로 산첸 섬에 묻혔다가 1553년 봄에 말라카로, 그 해 겨울에 고아로 옮겨져 안장됩니다.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1621~1623)에 의해 자신의 사부이자 동료인 이냐시오와 함께 시성되었고, 1748년에는‘희망봉에서부터 인도, 중국, 일본에 이르는 수호성인’으로, 1927년에는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성녀 리지외의 데레사와 함께 ‘가톨릭 선교활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됩니다. 그가 선교한 인도와 인근 지역들은 여전히 가톨릭 지역으로 남아있으며, 몰루카 제도에 세운 교회들은 이후의 박해로 순교자를 낸 뒤 무너진 반면, 일본의 교회는 얼만 안 되어 재생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비에르 성인이 사셨던 시기는 종교개혁으로 유럽 가톨릭교회가 혼란과 진통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이 혼란한 시기에 하비에르 성인은 예수님께서 주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16,15)는 말씀에 충실하였고, 그 씨앗과 열매를 동방에 뿌리며 당시 유럽의 신앙적으로 혼란스러운 젊은이들에게 복음 선포에 몸 바치도록 길을 여셨던 분이셨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을 지내면서 ‘선교는 교회의 생명’이라는 말을 되새겨 봅 니다. 변방에서 남모르게 고생하고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과 실천으로 선교에 동참하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성인이 성 이냐시오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 내용입니다. “여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맙니다. 유럽의 대학 특히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가서 사랑보다는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지식으로 열매를 맺도록, 미친 사람처럼 큰소리로 외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꾸짖을 마음을 자주 먹었습니다. ‘여러분의 게으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학문에 대해 쏟는 열성만큼만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과 자신이 얻은 지식에 대해 결산서를 제출해야 하는 데 관심을 쏟았다면,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영적 수련과 다른 방법으로 자기 마음속에 하느님의 뜻을 알고 느끼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욕망을 떠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저는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가 성 이냐시오에게 보낸 편지에서(e vita francisci xaverii, auctore h. tursellini, romae, 1596, lib. 4,epist. 4[1542] et 5[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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