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조성호 신부님

2006. 12. 4. 오전 9:45:57

글자

다해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2006. 12. 4.

토평동.

신명 10, 8-9.

1코린 9, 16-19.22-23.

마르 16, 15-20.

‘아무 것도 받을 몫이 없다’ 모세는 레위지파에게 말합니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신명 10, 8) 주님을 섬기면서도 받을 몫이 없다는 것이 어이가 없을 법도 하지만,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는 것은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된다”(신명 10, 9)는 것입니다. 이보다 큰 몫이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큰 유산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과연 그 상속 재산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가가 문제이겠습니다. 우리는 세속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나누며 살 수 있다면, 주님께 받은 것임을 알 수 있다면, 그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련을 겪는 때도 있고, 주님을 충실히 섬기는 이들에게 이런 시련이 닥치기도 합니다. 자신의 탓이나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야 할 말이 없지만, 주님을 믿는 이들, 그것도 충실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있어 시련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주님을 충실히 믿는 이들은 이 시련에 스러지지 않습니다. 특히 주님을 위해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인 이들은 더더욱 굳건히 헤쳐나갑니다. 주님께서 나의 상속 재산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삶 속에서 시련이 날 잡아먹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내가 시련을 잡아먹는(이겨내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사탄이나, 뱀이나, 독은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것이 믿음을 가진 이들과 믿음이 없는 이들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다른 것이죠.

《나이 들고 현명한 큰 스님이 젊은 스님을 제자로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제자는 모든 일에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지 늘 투덜거렸습니다.

어느 날 아침, 큰 스님은 제자를 불러 소금을 한 줌 가져오라 일렀습니다. 그리고는 소금을 물 컵에 털어 넣게 하더니 그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제자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그 물을 마셨습니다.

큰 스님이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짭니다.”

제자가 조금 성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큰 스님은 다시 소금 한 줌을 가져오라 하더니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는 소금을 쥔 제자의 손을 호수물에 넣고 휘휘 저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큰 스님은 호수의 물을 한 컵 떠서 제자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맛이 어떠냐?”

“시원합니다.”

“소금 맛이 느껴지느냐?”

“아니요.”

그러자 큰 스님이 말했습니다.

“인생의 고통은 순수한 소금과 같다네. 하지만 짠맛의 정도는 고통을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지. 만약 자네가 고통 속에 있다면, 컵이 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스스로 호수가 되게나.”》

우리가 넓은 호수, 주님의 바다에 나를 담글 수 있다면, 나 스스로 주님의 바다에 잠겨 바다가 될 수 있다면, 나에게 닥쳐오는 시련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지켜주실 것이니, 나는 못할 것이 없는 것이죠.

오늘 기억하는 선교의 수호자 하비에르 성인 또한 그런 분이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안주하는 삶이 아닌 시련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선교하는 노하우를 가지고 보여준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감화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준 것이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죠. 시련이 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다가 되어 시련을 “따위”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주님을 섬기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 주님을 믿으며 주님 사랑과 평화의 호수(바다)가 되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길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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